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올해 중국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무대의 주인공은 '시진핑의 그림자'로 불리는 왕치산(王岐山)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국가부주석으로 복귀한 그는 통상·외교 분야의 컨트롤타워 역할은 물론 반부패 사정 작업을 측면 지원하는 임무도 수행할 전망이다.
시 주석은 왕치산의 엄호 속에서 안정적인 무역 환경 구축, 대국외교 역량 강화, 정치적 반대세력 숙청 등 장기 집권을 위한 과제들을 풀어나갈 방침이다.
◆왕치산 옛 전우들, 사정라인 요직 장악
시 주석은 18일 초대 국가감찰위원회 주임으로 양샤오두(楊曉渡)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부서기를 선택했다.
국가감찰위는 공산당원은 물론 비(非)당원 공직자까지 전방위로 감찰할 수 있는 거대 사정기구다.
양샤오두는 국가감찰위로 통합되는 국무원 내 감찰부 부장(장관)과 국가예방부패국 국장으로 재직 중이었다는 점에서 납득할 만한 인선이다.
당초 자오러지(趙樂際)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유력한 주임 후보로 꼽혔으나, 그가 서기직을 맡고 있는 중앙기율검사위 존속이 결정되면서 양샤오두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장쥔(張軍) 사법부 부장이 한국의 검찰총장 격인 최고인민검찰원 검찰장을 맡는다는 인선 결과도 전해졌다.
양샤오두(2014~2018년)와 장쥔(2012~2017년)은 중앙기율검사위 부서기로 왕치산 전 서기를 보좌한 바 있다.
시 주석이 집권한 뒤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앙정법위 서기 등 '부패 호랑이' 제거 작전을 함께 수행한 전우들이다.
왕치산의 옛 부하들이 사정 라인의 요직에 올랐다. 그의 복귀가 인선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양샤오두는 검찰의 기소 전 단계까지 조사를 진두지휘하고, 기소 이후에는 장쥔이 사법적 처단을 하는 구조다. 자오러지가 건재하지만, 왕치산이 막후에서 반부패 사정 작업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미·중 통상분쟁 격화, 구원투수 등판
왕치산의 활약이 더 기대되는 쪽은 통상·외교 분야다. 시 주석이 조장인 당 중앙외사영도소조의 부조장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경력을 살펴보면 짐작할 수 있다.
왕치산은 중국 건설은행장을 지낸 금융통이자 중국 대외 무역의 핵심 창구인 광둥성 부성장을 지낸 통상 전문가이기도 하다.
아시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1998~2000년에는 국무원 경제체제개혁 판공실 주임을 맡아 위기가 중국으로 옮겨붙는 것을 저지했다.
2002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가 터지자 이듬해인 2003년 베이징 시장으로 급파돼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전문성과 위기 돌파력을 겸비했다는 의미다. 시 주석이 그를 불러들이며 내린 첫 임무도 미국과의 통상 분쟁 해결이다.
안정적인 경제 발전은 시 주석의 권력 유지를 위한 핵심 기반이다. 미국과의 갈등 심화는 피해야 할 변수다.
왕치산은 2009~2012년 부총리로 미국과의 전략경제대화를 이끌며 협상력을 인정받았다. 현지 인맥도 대거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이불 덮고 잔 시진핑·왕치산
시 주석과 왕치산은 주종 관계라기보다는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동지다. 두 사람의 인연은 반세기가 넘도록 이어져 오고 있다.
문화혁명 당시인 1969년 베이징에 들른 시 주석이 하방(下放) 생활을 하던 산시성 옌촨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무 힘들어 인근 펑좡의 왕치산 숙소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일화는 유명하다.
두 사람은 한 이불을 덮고 잔 사이, 아끼던 책을 선물로 주고받는 사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중국 권력의 정점에 서 있다.
왕치산이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한 방패 역할을 자임하는 것은 권력욕에 기반한 처신이 아니라 본능적 대응에 가깝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가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 주석의 정적 제거와 양안(중국과 대만) 관계 조정, 국가 정책 조율 등 중국의 권력 지도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되는 이유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