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열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우리 정부 고위급 인사들이 잇따라 미국을 방문하는 등 물밑작업에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나 회담 일정 발표가 미뤄지면서 정작 대화 당사자인 북·미 간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어, 회담이 성사되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7일 외교부 당국자에 따르면 우리 측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오는 9일부터 12일간 미국 워싱턴을 방문, 수전 손턴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 등 미국 행정부내 한반도 관련 핵심 인사들을 면담할 예정이다.
앞서 이 본부장과 손턴 대행은 지난달 24일 서울에서 만나 협의를 진행한 바 있다.
이번 방미에서 한미 양국은 최근 성공적으로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위한 양국간 공조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아울러 한·미정상회담-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정착을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 협의와 함께, 한미간 고위급 협의계획도 조율할 전망이라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또한 최근 미국 핵심 인사들이 기존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 핵폐기'(CVID)보다 강도 높은 '영구적이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PVID)를 거론하는 상황에서, 양측은 북·미정상회담 계기에 북한에 요구할 비핵화의 원칙과 수준 등을 논의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 본부장의 미국 방문에 이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이르면 이번 주 후반 미국을 방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강 장관은 최근 부임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의 통화에서 조만간 첫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열기로 했다. 이에 두 장관은 현재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도 오는 22일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한미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하면서 적극적인 '중재자 행보'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 개최될 수 있도록 청와대 역시 물밑 중재와 함께 한미정상회담 준비에 매진할 전망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노력과는 별개로 북·미정상회담 일정 발표가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는 등 최근 북·미 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5일 양제츠(楊潔篪)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과의 통화에서 북한의 위협에 대처할 필요성에 뜻을 같이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북미정상회담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여가면서도, 북한으로부터 원하는 수준의 약속을 담보해내기 전까지는 최대 압박 작전으로 대변되는 대북 제재 등에서 느슨해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한 역시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6일 "북남 수뇌회담과 판문점 선언으로 조선반도 정세가 평화와 화해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이때, 상대방을 의도적으로 자극하는 행위는 모처럼 마련된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고 정세를 원점으로 되돌려 세우려는 위험한 시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청와대 내부에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중대 관문이 될 북·미정상회담의 일정이 빨리 발표돼야 대화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럼에도 정상회담 일정은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결정해야 하는 만큼, 결과가 나올 때까지 우리 정부는 '속앓이'를 하며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최근 미국의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고 귀국하면서 "북·미회담 시기와 장소는 미국과 북한이 결정하면 우리 정부는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최근 일부 언론이 싱가포르 개최 가능성을 거론한 데 대해서도 "그런 관측이 있기는 하지만, 최종적으로 북·미 간에 결정할 문제여서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북한과 미국이 이미 정상회담 일정과 장소에 최종 합의했지만, 극적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발표 '타이밍'을 재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상회담 유력 개최지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앞서 언급한 판문점과 중립지대인 싱가포르가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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