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습지는 대한민국의 숨은 진주이자 자랑거리다. 갯벌과 내륙 논습지, 하천까지 포함한다. 해안선이 자연 그대로 보전돼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동천하구가 있고 갈대밭과 염습지, 갯벌이 있다. 그뿐인가. 코앞에 사람이 살지 않는 섬 2개가 있다. 널찍한 갯벌에 나지막한 산, 섬이 있어서 경관이 무척 아름답다. 순천만습지만의 멋이다. 이곳이 잘 보존된 것은 순천시민들과 순천시가 20여 년 동안 지혜를 모으고 정성을 기울인 덕분이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나 할까, 간척지 개발사업 손길이 미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남해안과 서해안 곳곳에서 갯벌이 사라지고 바다지형이 바뀌었으니 순천만의 가치는 더 빛난다.
순천만의 특징
동쪽으로 여수반도가 있고 서쪽엔 고흥반도가 있다. 순천만은 둘 사이에 항아리 모양을 띠고 있다. 입구가 좁고 안쪽은 넓어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와 잔잔하게 퍼지면서 호수같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썰물 때는 물길만 빼고 순천만 전체가 갯벌로 변한다. 밀물 때는 갈대밭 절반이 바닷물에 잠긴다. 서해안에서는 썰물 때 갯벌이 2㎞ 이상 드러나지만 그뿐이다. 순천만은 다르다. 산과 바다, 갈대와 농경지, 시골마을까지 나타나 포근함이 느껴진다. 이곳에는 순천 송치봉에서 시작된 동천과 이사천이 구불구불 순천만으로 유입된다. 뱀이 기어가는 듯 사행천이다. 하천기능은 잃었지만 농경지에 물을 대주고 배수로, 저류지 역할을 한다. 썰물 때는 만 하구에 넓은 갯벌이 드러나 철새들의 먹이터, 놀이터가 된다. 해안선은 별량면, 해룡면, 대대면까지 총 40.45㎞다. 갯벌 면적은 22.2㎢고 갈대밭은 총 5.4㎢다.
갯벌에 사는 생물
순천만에는 동천과 이사천, 벌교천을 통해 맑은 물이 공급된다. 갯벌생물들은 이들 하천에서 먹이를 얻는다. 강 하구가 막히지 않으니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 ‘절반짠물’이 된다. 그래서 실뱀장어들이 많다. 어민들은 봄이 되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실뱀장어를 잡으려고 그물을 내린다. 대대포구 근처에는 장어구이 식당이 많다. 이곳 갯벌은 ‘게판’이다. 표면이 울퉁불퉁하다. 수많은 칠게가 자기집을 드나들어 갯벌에 구멍이 났기 때문이다. 칠게는 통째로 익혀 먹거나 게장을 담아 먹어야 제맛이다. 하지만 뻘낙지와 맛이 사라졌다. 어민들이 ‘갯벌이 죽었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짱뚱어와 붉은발말똥게, 갯게, 농게, 방게도 많이 산다. 순천시는 곳곳의 논을 사들여 갯벌을 복원하고 있어서 사라진 어류들이 점차 되돌아올 것이다. 순천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칠면초다. 이름 그대로 7가지 색깔을 가진 풀이다. 새싹이 자줏빛을 띠다가 자라면서 초록으로 변하고 가을이 되면 다시 자줏빛으로 변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발이 붉은 농게의 은신처이기도 하다. 농게는 칠면초의 어린 씨앗을 갯벌에 심어주며 보답한다. 가을이 되면 붉은 칠면초 군락은 황금빛 갈대 물결, 검은 갯벌과 잘 어울려 보는 이들이 탄성을 짓게 만든다. 아쉬운 것은 갈대밭 면적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갯벌이 육지가 되고 있다는 증거다. 순천만 상류에 있는 상사댐 물이 방류되면서 찬물이 내려와 갈대 군락지가 넓어지고 있다. 이를 막는 것이 과제다. 갯벌에 비해 갈대밭은 생물다양성이 크게 떨어진다.
철새의 보금자리
순천만의 진객은 뭐니 뭐니해도 철새다. 희귀 철새들도 많다. 근처 몇몇 마을 이름이 새와 인연이 있다. 학산리, 선학리, 송학리, 황새골이다. 송학은 황새, 학은 두루미를 일컫는다. 순천만이 철새들의 주요 서식지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 새 종류가 540종인데 이곳에서 250여종이 관찰되고 있다. 대표선수는 역시 흑두루미다. 순천시의 상징새, 시조(市鳥)이기도 하다. 겨울이면 흑두루미와 검은목두루미,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혹부리오리 등 수천마리가 월동한다. 봄과 가을에는 민물도요, 중부리도요, 개꿩, 흰물떼새 같은 도요물떼새 1만 4000마리가 찾아온다. 흑두루미는 과거에 시베리아를 출발해 북한 낙동강을 거쳐 겨울을 나고 일본 이즈미로 날아갔는데 2013년부터 시베리아, 북한, 서산, 순천만을 거친다. 낙동강 대신 순천을 선택한 것이다. 낙동강에 보를 만드는 바람에 모래톱이 사라져 낙동강을 버린 셈이다. 흑두루미 특성 때문이다. 흑두루미는 낮에 농경지에서 먹이활동을 하다 밤이 되면 천적을 피해 갈대밭에서 15m 정도 떨어진 모래톱에서 잠을 잔다. 순천만에 점차 모래톱이 생겨나고 있어서 앞으로 대표적인 흑두루리 월동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 특이한 점은 큰고니들이 많이 왔다는 것이다. 이들이 주로 먹는 것은 식물 ‘새성매자기’인데 순천만에서 군락지가 사라졌다. 그 때문인지 지난해는 적었다. 올해 이들이 많이 찾아와서 벼뿌리를 파먹은 것으로 관찰됐다.
철새 보호 어떻게 하나
철새들은 먹을 것이 많아야 또 온다. 순천만 철새들의 주된 먹이는 벼다. 순천시가 철새들에게 안정적인 먹이를 공급하려고 2005년부터 생물다양성관리계약사업을 시작했다. 습지와 가까운 농경지 15㏊에서 벼농사를 짓은 농민들과 계약한 것이다. 순천시가 생산량과 상관없이 면적당 영농보상금을 주고 농민들은 친환경농법으로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짓는다는 조건이다. 볏짚은 따로 보상한다. 계약에 따라 이곳에서는 가을에 50톤 정도 벼를 생산, 비축해 두고 겨울부터 철새먹이로 뿌려주고 있다. 농민들은 또 농경지에 관광객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겨울에는 철새지킴이 활동을 한다. 누이 좋고 매부도 좋다. 추수 후 볏짚 일부는 논바닥에 깔아주고 절반은 보관했다가 겨울과 이듬해 봄, 여름에 수시로 깔아준다. 논생물들의 좋은 보금자리가 된다. 해마다 메뚜기나 우렁이, 미꾸라지 수가 늘어나고 있다. 덩달아 겨울새 먹거리도 풍부해진다. 순천시는 2009년 습지 근처를 경관농업지구로 지정하고 전봇대를 282개를 뽑아냈다. 흑두루미가 전깃줄에 걸려 다치기 때문이다. 이같은 습지보호정책으로 해마다 흑두루미떼가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멸종위기 1급이자 천연기념물 199호인 황새가 찾아왔다.
순천만 보전
순천시는 순천만을 영구히 잘 보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폈다. 2006년 1월 순천만 갯벌과 보성갯벌을 ‘Suncheon Bay’라는 이름으로 국제보호단체인 람사르 사이트에 등록했다. 국내 연안습지로는 처음이다. 특히 2003년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순천만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하려고 고민하던 끝에 국가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여름에 태풍이 불고 홍수가 나면 농사가 안되는 이 일대 농경지를 없애고 거대한 정원을 조성했다. 실은 아래쪽 순천만 습지에 편의시설이나 산업시설이 들어설 수 없게 멋진 방어막을 친 것이다. 내친김에 2013년 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했다. 순천만 습지라는 보물을 가진 생태도시 순천을 국내외에 널리 알려 도시발전을 이끌고 관광객을 끌어모을 수 있는 ‘신의 한 수’였다. 순천만 관광객이 계속 늘어나자 순천시는 국가정원에 무료 주차장을 늘리고 습지의 유료 주차장을 줄이고 있다. 그 성과일까, 참가치를 알게 된 것일까. 한국관광공사는 순천만을 국내 최우수 경관 감상형 관광지로 선정했다. 또 2008년 6월 13일 문화재청은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41호로 지정했다. 그러자 순천시는 2014년 순천만습지 보전 관리 및 지원사업 조례를 제정했다. 2016년 환경부는 동천하구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고 같은해 람사르사무국은 동천하구를 람사르습지로 등록했다. 이어 순천만자연생태연구소가 문열었다. 2018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되고 람사르 습지도시로 인증됐다. 순천시는 올해 순천만을 포함한 우리나라 서남해안, 즉 순천,보성,신안,고창,서천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도록 힘쓰고 있다. 또 오는 2023년 두번째 국제정원박람회를 열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순천만 국가정원 뿐 아니라 순천시 전체를 정원으로 만들어 습지와 연계해 국제적 생태도시라는 사실을 만방에 알리기 위한 야심찬 계획이다.
순천만 구경 잘하려면
순천만을 제대로 즐기려면 앵무산 정상과 용산전망대를 찾아가야 한다. 앵무산 꼭대기에 오르면 동남쪽에 여수화학산업단지가, 동동쪽에는 광양제철소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공장지대와 전원도시 순천이 대조를 이뤄 학생들 수학여행 코스로 손꼽힌다. 용산전망대는 어떤가. 갈대밭 데크가 끝나는 지점부터 전망대까지 1.3km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걸어서 왕복 40분 거리다. 일부 가파른 구간에서는 나무데크에 잠시 기댈 수 있고 바닥에는 왕골이 깔려 걷기가 수월하다. 높지 않지만 전망대에서 보는 순천만은 새롭게 보인다. 갈대밭과 습지를 휘감아도는 S자 물길과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자연 습지가 신비감을 준다. 순천만습지에서 와온해변은 멀지 않다. 모래사장 대신 드넓은 갯벌이 펼쳐진 뻘 해변이다. 이곳에선 느긋하게 해변 산책길을 거닐며 일몰을 감상할 수 있다. 해가 지면서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모습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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