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테이블 하나 없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며 남사장님과 건너편 꽃집 여사장님의 관계를 알게 됐습니다. 커피를 사면 꽃집 안에서 티타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정보도 얻었습니다. 반대편 음식점에선 도시를 떠나 귀농한 농부가 직접 채소를 길러 반찬을 만들고, 손님들에게 내놓는다고 했습니다. 각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수동이 궁금해졌습니다. 넓은 공간 속 작은 공간들, 그 한 곳 한 곳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성수동에 가게를 낸 자영업자, 세상을 향한 ‘임팩트’를 준비하는 소셜벤처 창업가, 본사 이전으로 성수동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수식이 불가능한 문화예술인, 그리고 성수동의 변화를 함께 한 평범한 사람들.
성수동이라는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수동을 이해해 보려 합니다. 이 과정은 ‘성수동을 기반으로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 성장을 지원하는’ 루트임팩트와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아주경제X루트임팩트의 ‘성수동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플랜테리어(Planterior)를 생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창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플랜테리어’는 식물을 인테리어의 한 요소로서 미적, 기능적, 정서적 측면을 숙지하고 이를 적재적소에 배치, 다양한 인테리어 효과를 높여주는 인테리어의 한 분야를 말해요.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방학 숙제로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과 꽃을 관찰해서 관찰일기를 썼던 기억이 나는데, 식물이 환경과 시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그 모습이 재미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이후 학부와 대학원에서 조경을 전공하게 됐죠.
전공 수업에서 했던 경험은 식물을 보고 만지는 것보다 그림을 그리고 설계와 시공을 하는 것에 편중돼 있었어요. 식물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욕심이 났죠. 그래서 국립수목원에서 인턴을 하는 것으로 처음 일을 시작했어요. 대학원에서 환경조경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그 이후에요. 나중에 취업한 곳이 관광컨설팅회사이었는데 그곳에서도 공원 컨설팅 업무 등을 담당했어요. 7년 전, 다시 온전히 식물 곁에서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서 ‘위드플랜츠(withPLANTS)’라는 플랜테리어 스튜디오를 창업해 운영해오고 있어요.”
-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던 일을 본인의 브랜드로 탄생시켰다.
“사실 ‘좋아하는 일 하며 살아서 너무 좋겠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내심 뿌듯하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당혹스러운 감정이 컸어요. 회사에 다닐 때와는 달리 모든 결정과 책임을 혼자 져야만 하고, 휴일 없이 일해도 티가 나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었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중압감을 경험했어요. 마치 세상에 혼자 발가벗겨진 채로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놓인 그런 기분이라고 할까요?”
- 창업 7년 차다. 일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일 년 365일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식물을 만지며 사는 일을 7년째 하다 보니 해가 갈수록 배우고 느끼는 것이 많죠. 식물에 대한 전문성은 당연하지만 그 외의 것들, 부지런해지는 습관, 인내하는 마음,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저만의 비결 같은 것들이 소소해 보여도 제 성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더라고요. 모두 식물과 함께하면서 얻은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지켜오고 있는 일이지만, 이제는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는 말을 예전보다는 자신 있게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곁에 있는 게 식물이었으니까요.”
-스튜디오가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에 있다. 왜 성수동이었나?
“성수동에서 창업을 한 건 아니에요. 근처이긴 하지만 뚝섬유원지 근처에 첫 작업실을 냈고, 성수동에 오게 된 건 5년 전이에요. 위드플랜츠를 운영하면서 작업실보다도 쇼룸과 수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거든요. 5년 전만 해도 성수동은 지금처럼 주목받던 곳은 아니었어요. 그때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공간을 찾아보았는데,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경제적인 형편에 맞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어요. 게다가 생각보다 교통이 편리한 편이라서 주저 없이 선택하게 됐던 것 같아요.
너무 만족스러운 매장이었지만 1층에서 꽤 큰 매장을 4년간 운영해보니, 힘에 부치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월세의 압박이 심해졌어요. 젠트리피케이션을 경험했죠. 그래서 과감하게 쇼룸의 면적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바로 옆에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이 생겼어요. 너무 좋은 기회에 좋은 곳에 자리 잡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성수동을 떠나지 않아도 되어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입니다. “
- 성수동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었다고 들었다.
“그렇죠. 성수동도 예전과 달리 점점 들고남이 많아지는 동네가 되고 있기는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고군분투하며 버텨내는 이웃들이 꾸준히 있어요. 초콜릿 연구소를 운영하는 형제, 사회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하는 여러 소셜벤처들, 끊임없이 해외출장을 다니며 커피를 연구하는 사람들, 서핑을 좋아하는 남편과 맛있는 빵을 만드는 아내가 차린 커피숍 등이요. 모두 다른 일과 배경에서 살아가지만 주말이면 같이 캠핑도 가고, 송년회도 하고, 일과 후에 모여서 술을 마시기도 해요. 헤이그라운드로 이사 오고 나서는 더 많은 이웃이 생겼어요. 매일 이 친구들과 인사 나누며 지내는 일상이 행복하죠.
말씀드린 여러 이웃 중에서, 길 건너편에서 커피 로스터리를 운영하는 사람이 제 남편이에요. 서울숲길을 사이에 두고 만나게 된 사이죠. 서울숲에서 처음으로 작게 야외결혼식을 했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역할을 나눠 가졌어요. 사회, 축가, 피로연 등등 너무 많은 역할을 동네 사람들이 맡아주고 또 만들어 줬죠. 성수동에 오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제 삶의 가장 큰 변화이자,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 요즘 코로나19로 위로가 필요한 시기다.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을 많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식물이 있다면?
“이렇게 답답한 시기에 추천해 드리는 식물은 우선 봄이니까 당연히 구근식물이죠. 튤립이나 수선화, 히아신스, 무스카리 같은 화사하고 향기로운 꽃이 피는 식물들이에요. 수경재배도 가능하고 실내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때문에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식물입니다. 실내에서 봄을 느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식물이기도 하고요.
제가 식물을 만지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모르던 7년 전, 무모하게 덤벼들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때도 그 모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게다가 그 좋아하는 일이 식물이라서, 식물이 주는 에너지를 언제나 받고 있었던 것이 바로 제가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마음속에서 한 번 더 참고, 한 번 더 견디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힘을 주는 각자의 ‘정원’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정원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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