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진경을 감상하는 특별석
황호택 이광표의 《왕들의길 다산의 꿈 조선진경 남양주》
임철순 전 한국일보 주필
남양주는 독립 지자체가 된 지 올해 40년이다. 1980년 4월 양주에서 분리된 뒤 15년이 지난 1995년 1월 남양주시로 승격해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의미 있는 해에 발간된 ‘조선 진경 남양주’(황호택·이광표 지음)는 ‘자연과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땅’ 남양주에 중요한 문화유산 한 가지를 보탠 것과 같다. ‘남양주학’이라는 지역학의 출범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 같기도 하다.
제목이 표방한 진경(眞景)이라는 말은 우리의 것을 우리의 눈으로 보고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널리 알리려는 독자적 발견과 성취의 의미를 담고 있다. 진경서사에 담을 것은 정(情)과 경(景)이다. 정이 인간의 삶과 문화에 관한 것이라면 경은 인간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그 조건을 결정짓는 산수자연과 환경이다. 저자들은 이 두 가지를 고루 다루고 잘 천착했다.
조선의 문인 서거정(1420~1488)의 시에 남양주와 관련된 것이 있다. ‘3월 8일 풍양 시냇가의 일’[三月初八日 豐壤溪邊卽事]이라는 작품이다.
。
날씨 화창하고 모래톱 따뜻한 삼월에 日暖沙暄三月天
홀로 술병 들고 이 강변에 와 노닐새 獨携樽酒此江邊
높은 데 올라 수천 리를 한번 바라보니 憑高一望數千里
꽃비 자욱이 내려 풀빛이 연기 같구나 花雨濛濛草似煙
풍양(豐壤)이 남양주의 옛 지명이다. 좋은 계절에 꽃과 물과 산과 술이 잘 어우러졌다. 풍양은 풍성한 땅, 풍요로운 땅이라는 뜻이다. 양(壤)은 농경에 적합한 부드러운 흙이라는 의미의 한자다. 그러니 남양주는 생명의 땅, 생산의 땅, 생육(生育)과 장양(長養)의 땅이다. 풍양은 풍양 조(趙)씨의 본향이기도 하다.
그런 땅의 문사철(文史哲)과 자연을 다루는 글은 핍진(逼眞)하고 박진(迫眞)하다. 모르던 것을 알게 해주고, 알던 것을 새로운 눈으로 깊이 있게 다루어 또 다른 길을 안내해주고 있다.
아쉬운 점도 있다. 지명의 유래에 대한 탐구가 더 있었으면 싶다. 남양주는 고구려 시대에 골의노현(骨衣奴縣), 통일신라 때 황양(荒壤), 고려 때 풍덕(豐德), 풍양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사학계에서는 광개토대왕비에 나오는 고리성(古利城)이 골의노현의 골의(骨衣)와 발음이 비슷하다 하여 남양주시의 진건, 진접 일대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골의-->고리(古利)-->고리(古離)로 음과 글자가 바뀐 것으로 보고 진건 일대에 마한의 고리국(古離國)이 있었다고 추정한다.
지명에는 역사가 담겨 있다. 진접(榛接)읍은 무슨 뜻이며 진건(眞乾)읍은 어떻게 생긴 이름일까? 榛은 개암나무이니 그곳에 개암나무가 많은 것일까. 그러나 실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합할 때 진벌면(榛伐面) 접동면(接洞面) 별비면(別非面)을 합쳐 진접면을 만들고, 진관면(眞官面)과 건천면(乾川面)을 합쳐 진건면을 만들었다. 일제는 우리 국토를 훼손하고 인명 지명을 멋대로 바꾸었다. 분통이 터지는 일이지만 그런 것도 역사의 한 부분이다.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이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의 권유로 쓴 여덟 편의 시(제목이 너무 길어 소개하지 않는다) 중 두 번째 작품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높이 드러누웠으니 적막한들 또 어떠리 高臥何妨落拓辰
거리를 치닫는 거마의 소리를 조용히 듣노라 靜聽車馬走街塵
심지 돋우며 시구 찾는 그 경지 오히려 진진한데 挑燈覓句猶佳境
달빛 타고 찾아온 손 또한 속인이 아니로세 乘月敲門不俗人
반평생 아양곡을 아는 이 지금 만났는데 半世峨洋今遇賞
어느 때나 산과 골의 진경을 함께 완상할꼬 幾時林壑共耽眞
볼 때마다 느끼나니 진정 멋진 벗님이여 相看每覺襟期好
그대 위해 의자를 자주 내려 보았으면 准擬寒齋下榻頻
제5행의 아양곡(峨洋曲)을 아는 이란 지음(知音), 즉 지기(知己)를 말한다. 맨 마지막 행에 나오는 의자는 최고의 손님으로 모실 테니 자주 찾아오라는 뜻이다. 후한(後漢)의 진번(陳蕃·?~168)이 특별한 의자를 준비해 두고 서치(徐穉, 97~168)가 찾아오면 그 의자를 내려서 앉게 하고, 그가 가면 다시 올려 두어 다른 사람은 앉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른바 진번하탑(陳蕃下榻)의 고사다.
이 책이 그런 의자라고 하면 과장일까. 귀한 손들에게 남양주의 진경을 편히 앉아서 보게 만들어 주는 특별석이다. 아니, 와유(臥遊)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안락한 평상일 수도 있겠다. 신문에 연재 중일 때부터 부러움과 찬탄의 눈으로 읽어온 독자로서, 남양주의 한 주민으로서 장한 일을 한 데 대해 축하와 찬사를 보내며 이러한 작업이 다른 지역으로 이어져나가기를 기대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