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어서 오세요. 기사(記事)식당입니다. 얼굴 모르는 이들이 흘리는 땀 냄새와 사람 사는 구수한 냄새가 담긴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
짠테크로만 2억원을 모은 사람이 있다.
짠테크는 짜다와 재테크의 합성어로, 주식과 부동산 투자 없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오로지 월급을 저축하는 방식이다. 유튜브 채널 '강과장'을 운영하는 강상규씨(36)는 이같은 짠테크로 10년간 2억4000만원 정도를 모았다. 10년 전 그의 첫 월급은 세후 103만원. 연봉은 1320만원이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가 지난 3월 JTBC 예능 프로그램 '돈길만 걸어요-정산회담'에 출연해 공개한 지출명세를 보면 이해가 간다. 그의 한 달 휴대전화 요금은 1만4000원. 이를 본 한 게스트는 "편지나 봉화를 사용하는 것이냐"고 했다. 그는 '알뜰폰'으로 휴대전화 요금에 허리띠를 졸라맸다. 알뜰폰은 통신 3사의 통신망을 빌려 일반 통신망보다 저렴한 요금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그렇게 그는 월급의 70~80%를 저축하는 습관을 들였다고 말했다.
통장 잔액 앞자리가 바뀌지 않은 게 몇 달째. 지출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특히 지출 비율이 가장 높았던 외식을 줄이기로 했다. 자발적 '만원의 행복'이다. 만원의 행복은 지난 2003년 MBC에서 방영된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원 지폐 한 장으로 일주일을 버티는 내용이다(이 방송을 안다면 당신은 최소 30대). 2003년 방송 당시, 최저임금은 2510원. 올해 최저임금은 8590원. 최저임금이 약 세 배 이상 뛴 비율을 고려해 2만원으로 1주일을 버티기로 했다.
◆편의점만 안 가도 지출 ○○% 아낄 수 있었다
짠테크에 임하기 전 '작전 타임'이 필요했다.
지난 4월 앱에 있는 소비 리포트를 보면(5~6월은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생활했다) 전체 소비 65만원(65만1410원) 중 외식은 27만원(27만850원)을 차지했다. 외식만 줄여도 전체 소비의 절반을 절약할 수 있던 셈이다. 만원의 행복 첫날인 16일. 이날은 '커피' 대신 '빈손'으로 점심 산책을 했다. 점심은 4000원이 넘지 않는 토스트(3900원)로 '퉁'쳤다.
식사한 지 세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출출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이는 '가짜 배고픔'일 확률이 높다. 실제 열량이 부족해 배고픔을 느끼는 '생리적 배고픔'과 달리, 체내 수분 부족과 스트레스가 원인이 돼 '심리적 배고픔', 즉 가짜 배고픔을 느낄 수 있다. 뇌가 목마름을 배고픔으로 착각하거나, 스트레스로 인해 줄어든 체내 '세로토닌' 호르몬이 식욕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이 가짜 배고픔에 속아 편의점에서 초콜릿·탄산음료 등에 쓴 지출이 4월 기준 약 12만원. 이 가짜 배고픔에만 속지 않았다면, 4월 지출의 약 18%를 아낄 수 있었다.
지출 다이어트는 내 발걸음도 돌려놓았다. 퇴근 후에는 패스트푸드점과 식당에서 저녁밥을 먹고 집으로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집에서 식사 준비를 하기보다 밖에서 한 끼를 해결하는 게 시간을 아끼는 것이라고 '정신승리'했다. 하지만 돈을 아낄 줄은 몰랐나 보다. 이렇게 쓴 외식 지출이 4월 기준 27만원으로, 총지출에서 41%를 차지했다. 만원의 행복 첫날. 이 날은 패스트푸드점 대신 오랜만에 집에서 흰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7000원을 아꼈다는 생각에 쌀 씻는 손은 경쾌했다.
◆코로나19가 부른 직장인들의 비자발적 '짠테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무급휴가와 급여삭감 등 악재가 속출하면서 짠테크 콘텐츠가 주목받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유튜브 채널 '강과장'에 올라온 '식비 0원으로 일주일 버티기' 영상은 지난달 30일 기준 110만 번 재생됐다.
코로나19 여파로 목돈 모으는 게 힘들어지자 비자발적 '짠테크'에 돌입한 직장인도 늘어나는 추세다. 실제로 성인 5명 중 4명은 '짠테크'를 실천 중이다. 지난 6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성인남녀 825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이후 소비심리'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9.1%가 '현재 짠테크 실천 중'이라고 답했다. 짠테크를 하게 된 계기로는 생활비 부족(25.1%)과 코로나19로 줄어든 수익(7.2%) 등 소득이 줄었다는 이유와 비상금 마련(22.7%), 내 집 마련(18.5%), 대출 상환(10.5%)과 같은 저축·상환 등의 이유가 있었다.
직장생활 2년 차인 이지영씨(27)는 "돈은 통장에만 넣어놓는 게 아니라 투자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투자할 만한 충분한 현금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대한 빨리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 짠테크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이씨는 "전세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전세금의 10%는 내야 하므로 짠테크를 통해 목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기업들도 짠테크족을 잡기 위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스타트업 미로가 운영하는 '라스트 오더'는 고객 위치 정보를 이용해 가까운 곳의 마감세일 상품을 알려주는 앱이다. 편의점 상품부터 치킨·피자·분식 등 품목도 다양하다. 이날 마감이 끝나는 토마토주스(190ml)를 정상가 2900원에서 41% 할인된 1725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GS25가 선보인 '나만의 냉장고'도 짠테크족이라면 '푼돈'을 아낄 수 있는 앱이다. 이 앱은 2+1과 같이 하나 더 주는 상품을 바로 가져가지 않고, 바코드 형태로 보관할 수 있다. 이를 활용하면 필요할 때 무료로 제품 하나를 가지고 갈 수 있어 절약하는 데 도움을 준다.
◆짠테크? 세 가지만 기억하세요
일주일간 체크카드 사용액 1만800원. 목표액이었던 2만원까지 9200원을 넉넉하게 남겼다(점심은 회사식당에서 해결). 퇴근 후 친구와 카페에서의 수다, 입안을 즐겁게 한 온갖 군것질거리와 맞바꾼 금액이다. 남은 돈으로는 빅이슈 잡지를 구매하는 '여유'까지 부렸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지출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짠테크를 시작하면서 극단적으로 '무조건 아껴야지'와 같은 생각은 오히려 실패로 이어지기 쉽다. 따라서 짠테크는 현실 가능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짠테크 만렙 유튜버 강과장은 돈이 모일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세 가지를 조언한다. 첫 번째로 신용카드와의 이별이다. 신용카드를 쓰면 자신이 한 달에 얼마나 소비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절약 습관이 몸에 밸 때까지 신용카드는 자제할 것을 강조했다.
두 번째는 고정비(휴대폰 요금, 관리비, 전기세 등) 통장 만들기다. 모든 고정비가 이 통장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자동이체를 걸어둘 것을 추천한다.
세 번째는 '현금' 사용이다. 그는 한달에 생활하는 데 필요한 돈(30대 초반 직장인 기준 30만원)을 인출해 현금으로만 생활할 것을 추천한다. 카드를 사용하기보다 현금을 사용하면, 돈을 쓸 때 더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또 교통카드는 티머니 카드를 구입해 필요할 때마다 충전해 사용할 것을 권한다. 불편하겠지만, 돈을 쓰는 데 불편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돈을 모으는 조건 중 하나라고 했다.
한 달 생활비 30만원과 티머니 카드. 이렇게 살면 연애는 포기하라는 것이냐고? 강과장은 이같은 '짠테크'에도 불구하고, 소개팅한 여성과 알콩달콩 연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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