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소재 서울창업허브에서 만난 이태훈 서울산업진흥원 창업본부장은 첫 질문부터 거침없이 답변을 쏟아냈다. 눈빛과 말투에는 자신감이 강하게 배어 있었다. 그는 서울시 소재 창업기업에 투자하고, 보육하면서 서울창업허브 운영까지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뒷단에서 보이지 않게 지원하는 일이지만, 인터뷰 내내 ‘남들이 안 하는 사업’을 강조하며 자부심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조직인 만큼 서울창업허브는 민간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에 뛰어들어 창업 기업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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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훈 서울산업진흥원 창업본부장. 창업본부에 몸 담은지 12년째다. 그동안 투자형 사업모델 기획, 서울창업포럼 기획 및 운영, 공공 벤처캐피탈 등 서울시의 창업 관련 업무를 수행해 왔다. 최근에는 창업DB플랫폼을 구축해 스타트업들의 정보를 지원을 위한 데이터로 활용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사진=서울창업허브)]
도시계획 업무를 맡으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설계 작업까지 주도한 이 본부장이 창업 생태계에 발을 들인 시기는 지난 2009년이다. 당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서울시 청년 실업률이 급격히 올라가자 가든파이브와 시 내 구청사를 활용한 청년 창업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매년 1000개 기업을 뽑아 투자하고, 당시에는 개념도 생소했던 액셀러레이팅까지 지원하자 창업 프로그램은 3~4년 만에 자리를 잡았다. 이후 정부 차원에서 청년창업사관학교, 예비창업패키지 등 지원사업이 생기자 그는 지원이 부족한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렸다.
이 본부장은 “당시 벤처 생태계를 분석해보니 100억원 이상 밸류에서 시리즈A 수준의 투자는 민간이 잘하고 있었고, 예비 창업 단계 지원은 정부가 막대한 예산으로 지원했다. 반면, 20~50억원 밸류의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투자자가 부족했고, 우리가 이 분야에 집중하기로 했다"며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행하면서 서울창업허브 공간을 기획했다. 처음 시작할 때는 170억원 규모로 투자했는데, 이제는 500억원 규모를 본계정으로 투자하고 있다. 지금까지 투자한 기업은 117개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테헤란로를 깨고 싶었다"
서울시 전역에는 47개 창업지원센터가 있다. 교육센터를 제외안 채 의미 있는 창업 지원 기능을 제공하는 공간만 따로 분류해도 24곳이나 된다.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창업허브는 지원센터 중 가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거점 센터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서울산업진흥원은 성수동, 창동에 서울창업허브처럼 지역 내 거점 센터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 중이다. 과거에는 지역 사회와 함께 어우러지지 못했지만, 향후에는 분명한 역할 설정과 함께 민간에서 필요한 공간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 본부장은 “지금까지 센터들은 자기 중심 브랜드였다. 예를 들어, 한 센터가 아스피린센터여서 이름을 바꾸라고 했더니 창업디딤터로 변경하더라. 고객 입장에서 그 공간이 어떤 기능을 하는 곳인지 알아야 찾아가는데, 그동안은 서울 시민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며 “이제는 성수 IT 센터를 서울창업허브 성수로 바꿔 소셜벤처 섹터를 지원하고, 내년 5월에는 서울창업허브 창동을 뉴미디어 마케팅 센터로 만들려고 한다. 산업 육성이 목표라면 이름에 바이오, AI 등을 넣어서 고객 중심의 워딩으로 변경할 예정이다”고 계획을 밝혔다.
이어 “과거에는 투자자를 만나려면 테헤란로에 가야 했다. 우리는 이 문제를 깨고 싶었고, 거점 지역에 좋은 기업들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며 “매달 스타트업을 선발해 1~2개 기업씩 투자하고 있는데, 기업설명회(IR)만으로 좋은 기업을 찾아 낼 수 없으니 서울창업허브 공간에서 함께 하면서 검증하고, 민간 투자자와 파트너십을 맺어 스타트업을 육성 중이다. 결국 투자자는 좋은 기업에 투자하길 원한다. 지역 거점으로 이런 활동을 하면 (마포, 성수, 창동에도 좋은 기업이 생기고) 테헤란로를 깰 수 있다. 벌써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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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서울창업허브. 서울시 소재 47개 창업지원센터 중 가장 규모가 커서 서울시 창업 공간의 거점으로 불린다. 서울창업허브에는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벤처캐피탈, 액셀러레이터, 엔젤투자자, 글로벌 투자자 등 창업 생태계 구성원들이 모여 있다.(사진=서울창업허브)]
"점점 일을 덜 해야 할 때"
창업 생태계에 발을 들인지도 십 수 년. 민간이 접근하기 힘든 영역에서 공공의 역할을 수행하는 이 본부장은 그동안의 창업 생태계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과거에는 창업하면 3대가 망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사회적 구조와 투자 지원 영역이 합리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신용 불량자가 되지 않고도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민간에서 투자받지 않고, 정부의 창업 지원 사업만 착실히 수행하더라도 최대 7년간, 10억원이 넘는 투자금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창업 생태계 발전을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공공의 역할을 점차 줄여나가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의 자금을 활용해 생태계 구축에 도움을 주었더라도, 앞으로는 민간 스스로의 힘으로 자생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관성에 의해 스스로 역할을 내려놓지 못하더라도, 민간이 본격적으로 생태계 주축으로 나선다면 공공은 경쟁우위를 점할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도 내놨다.
그는 “결국은 정부가 점점 일을 덜 해야 한다고 믿는다. 창업 생태계는 점점 더 좋은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창업 문화가 바뀌려면 20년은 지나야 한다. (공공이 창업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지) 10년이 지났고, 향후 10년은 공공의 포지션을 줄이면서 민간이 들어와야 창업 생태계가 성공할 수 있다”며 “이제는 민간에서도 밸류 50억원 이하 투자도 많이 들어온다. 민간과 공공이 경쟁하면 결국은 민간이 이기고, 공공은 자연스럽게 실적이 안 좋아질 거다"고 예측했다.
이 본부장은 "그때가 되면 서울창업허브도 건물 운영을 민간에 맡기거나, 창업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 역할을 하기 위해 사라질 수도 있다"며 "당장 내일은 아니겠지만, 서울시 경제 발전을 위해 남들이 안 하는 사업을 또 찾고 있지 않겠나. 그 때까지는 스타트업처럼 일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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