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연합뉴스]
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내 금융지주사 산하 은행들과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일부 대형증권사가 제공하는 펀드 수탁 서비스의 최저 수수료가 사실상 1억원 까지 올랐다.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터지기 전 수탁 수수료가 0.02~0.04%(2~4bp) 수준이었음을 고려할 때 최대 30배까지 오른 셈이다. 한 벤처캐피탈 대표는 "아무리 협상을 해도 수탁 수수료를 1억원 이하로 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고, 수탁 업무 자체를 거부하는 사례도 많다"면서 "높은 가격과 함께 추가적으로 은행에 자산과 자본의 건전성 관련 자료를 제공해 부담을 덜어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펀드 수탁 업무는 운용사와 신탁 계약을 맺은 수탁자가 수탁자산을 보관하며 사무를 대신해주고 일정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만약 수탁사를 구하지 못하면 펀드를 출시할 수 없다. 현재 은행과 대형 증권사 6곳 등 총 20곳만 수탁 업무를 맡을 수 있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이 일련의 사모펀드 사태 이후 수탁사들에게 기존의 자산 관리 업무 외에도 관리 감독 의무를 부여하다 보니 금융기관이 관련 인력을 확충하는 과정 등에서 비용이 발생하고 이것이 수수료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자금 순환의 모세혈관이 막힌 셈이다. 대형 사모펀드는 모집금액이 많기에 수수료율 급등으로 어려움은 겪지만 사업 활동은 가능하다. 하지만 중소형 사모펀드는 수탁을 거부당하거나 높은 수수료율 탓에 사실상 '셧다운' 상태가 됐다. 실제로 국민의힘 이영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은행권 펀드 수탁계약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8개 은행의 사모펀드 수탁계약은 지난해 2168건으로 전년 4567건보다 52% 줄었다.
투자 활동은 기업의 자금 순환에 필수적이다. 기업들은 자금을 조달해 영업 활동의 발판을 마련하고, 투자 업계는 자금을 공급해 영업 활동을 위한 기반을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벤처캐피탈(VC), 중소형 사모펀드들은 목적성 있는 투자로 펀드의 정체성을 알리고, 실적을 통해 실력을 증명한다. 이 같은 순환이 펀드의 실적(트랙레코드)과 평판(레퓨테이션)이 되고, 더 큰 자금을 모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금융 당국의 내놓은 대책으로 인해 소규모 투자가 사실상 막혔다. 모험 자본으로 성장해야 할 스타트업 기업들은 자금 줄이 막히게 됐고, 고용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사모펀드 대표는 "수탁 행위를 본질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예를 들어 스위스 은행은 온갖 자금을 다 받아주지만 보관 그 자체이므로 누구도 스위스를 비난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어 "수탁 받은 자산의 내용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면서 "펀드 자체가 문제 있는지 여부는 금융당국이 검사·감독할 일이지 수탁사에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된다"라고 덧붙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