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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의 의뢰로 한양대박물관이 유물 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는 당성 조사지 전경[사진=화성시 제공]
화성시 의뢰로 발굴조사를 맡은 한양대학교 박물관은 11일 이번 발굴에서 여러 차례 증개축된 대형 건물지에서 명문와를 포함한 기와, 토기류, 도기류, 자기류, 금속류, 석제품 등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안신원 한양대학교 박물관장은 “이번 발굴에서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유물과 국제 교류관계를 알 수 있는 유물들이 대거 발굴됨에 따라 과거 당성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며 “당성은 행정적, 군사적 거점이자 대중국 교역의 중요기지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당성 초축과 관련된 1차성 내의 대형 건물지에 대한 정밀조사가 이뤄졌다.
여기에 출토된 유물들은 신라가 한강유역을 점유한 이후부터 고려시대 초중반까지의 것들로 행정기관에서 사찰로 변모하는 특성을 보이며 2차 축성의 이유를 파악하는 근거가 될 전망이다.
특히 주목되는 유물은 명문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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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성 유적지에서 발굴된 양모(梁謀)명 기와 명문 부분, 웅천주(熊川州)명 기와 명문 부분. 청동 초두 모습[사진=화성시 제공]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기와로 ‘임신(壬申)”, “무인(戊寅)”, “병오(丙午)”명 기와와 통일신라의 행정구역인 9주의 하나로 686년 설치돼 757년 웅주로 이름이 바뀌기 전까지 사용된 ‘웅천주(熊川州)’명 기와도 출토됐으며 이 밖에 청동 초두(鐎斗)가 발견됐다.
또한 중국의 형요(邢窯) 및 정요(定窯) 백자편과 월주요(越州窯) 청자편이 출토돼 국제교류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다.
서철모 화성시장은 “당성의 초축시기와 삼국시대 이후 당성의 기능을 확인하는 조사와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라며, “당성의 역사적 가치를 바탕으로 우리 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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