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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법원]
퇴사하며 직장 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회사 직원들에게 이메일로 알려 명예훼손으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에 대해 대법원이 원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혐의를 받은 A씨의 상고심을 열고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메일은 A씨의 직장 내 성희롱 피해 사례에 관한 것으로 회사 조직과 구성원들의 공적인 관심 사안"이라며 "B씨를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범죄의 증명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적 문화와 인식, 구조 등에 비춰볼 때 A씨로서는 '2차 피해'의 불안감을 가질 수 있다"며 "신고하지 않다가 퇴사를 계기로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정으로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고 추단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14년 10월 직원 몇 사람이 참석한 술자리에서 테이블 아래로 손을 잡는 등 팀장 B씨로부터 신체적인 접촉을 당했다.
유부남인 B씨는 그날 늦은 밤 3시간에 걸쳐 A씨에게 '오늘 같이 가요', '맥줏집 가면 옆에 앉아요. 싫음 반대편', '왜 전화 안 하니', '남친이랑 있어. 답 못 넣은거니' 등 12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1년여가 지난 2016년 4월 A씨는 회사를 퇴사했고, 그 다음날 전국 200여개 매장 대표와 본사 직원 80여명에게 '성희롱 피해 사례에 대한 공유 및 당부의 건'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냈다.
이메일에서 A씨는 "B씨에게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현재 절차상 성희롱 고충 상담 및 처리 담당자가 성희롱했던 팀장이므로 불이익이 갈까 싶어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를 떠나게 됐고 회사의 발전을 위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 메일을 보낸다"고 했다. 메일 안에는 피해 사실과 B씨가 보낸 문자메시지 사진도 첨부됐다.
이후 A씨는 B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과 2심은 A씨가 비방을 목적으로 이메일을 보낸 것이며 유죄라고 판단했다.
본사에서 일하다가 지역 매장으로 인사 발령을 받게 되자 돌연 B씨의 1년여 전 행동을 문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무죄 판단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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