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가 세계 경제의 우울한 미래에 돈을 걸었다. 그레그 젠슨 최고투자책임자(CIO)는 8일(이하 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비롯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강력한 긴축이 세계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시각을 반영하듯 브리지워터는 최근 미국·유럽 회사채 하락에 베팅했다. FT는 "(브리지워터는) 지난 4월 바스켓 신용파생상품을 통해 미국과 유럽 회사채 하락에 투자했다"고 관계자 말을 인용해 전했다. 이어 "이 같은 전략은 최근 주요 금융시장의 약세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근본적 문제는 역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다.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최근 8% 수준까지 뛰어올랐다. 연준이 목표로 삼는 2%보다 무려 4배 높다. 일각에서는 3월에 이어 4월에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다소 둔화한 것을 근거로 인플레이션이 이제 '정점'을 찍고 내려갈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브리지워터 측 생각은 달라 보인다. 젠슨 CIO는 월가 이코노미스트들 예상보다 물가 상승이 길게 시장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FT는 "결국 브리지워터가 연준이 (월가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한 긴축 정책을 들고 나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기준금리가 시장의 예상보다 크게 뛸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의 자금 조달 부담은 단기간에 급등하게 된다.
연준의 긴축 기조가 명확해지면서 미국 국채 가격은 연초부터 크게 하락했다. 브리지워터는 이미 시장에서 23조 달러 규모로 미국 국채를 매각했다. 회사채 시장도 상황은 좋지 않다. 투자등급이 높은 미국 회사채 가격은 올해 들어 12% 하락했다. ICE 데이터 서비스지수에 따르면 우량한 유럽 회사채 가격도 10% 정도 떨어졌다. 문제는 이들 가격이 더욱 하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높은 이자는 소비자들의 소비를 압박하고, 기업들이 발행하는 신규 회사채 이자의 부담을 높인다. 결국 파산을 비롯한 금융 위험에 노출되는 기업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젠슨 CIO는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줄어드는 가운데 자산 선정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투자자들은) 유동성 구멍을 피하고 싶을 것이며, 유동성이 필요한 자산들로는 가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준금리는 연내 추가 인상을 앞두고 있으며, 연준은 대차대조표 축소에도 나섰다. 주요국들도 긴축에 나서면서 유동성 축소는 피할 수 없는 변수가 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젠슨 CIO는 생필품과 인플레이션 지수 채권을 선호하는 투자 자산으로 꼽았다. 저성장과 물가 상승이 결합된 스태그플레이션 환경에서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는 현재 연준의 매파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연준이 결국은 2% 넘는 인플레이션을 용인할 것으로 보았다. 인플레이션을 끌어내릴 만큼 충분히 높게 금리를 인상할 때 생길 수 있는 주식시장 급락과 높은 실업률을 용인할 수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가차 없이 밀어붙인다면 주가가 현재 수준에서 25% 더 폭락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젠슨 CIO는 현재 미국 증시 변동성이 연준의 양적 완화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중앙은행이 국고채의 대량 공급을 흡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투자자들이 개입해야 했고, 투자금 확보를 위해 이들은 보유 주식 매각에 나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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