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상공인 등 연체차주의 대출 상환 부담을 낮춰주겠다며 추진 중인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을 두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부의 빚 감면 지원책에 빚을 탕감받으려는 차주들이 고의로 채무를 연체하는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점증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손실을 부담해야 하는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직접 들고 나서면서 제도 시행 전부터 휘청이고 있는 양상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달 중 코로나19 피해 자영업자, 소상공인을 위한 30조원 규모의 새출발기금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는 새출발기금 시행을 앞두고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가 채무조정 지원을 위한 전산구축에 착수한 상태로, 당초 계획대로 진행될 경우 오는 9월 중에는 본격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발표한 '새출발기금' 지원대상은 기본적으로 대출을 갚지 못해 연체 중이거나 연체 위기에 몰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다. 지원대상은 크게 부실차주와 부실우려 차주로 나뉘는데 대출을 3개월 인상 연체할 경우 부실차주로 적용을 받게 되며, 대출을 10일 이상 단기연체(6개월 간 누적 연체 3회 이상)하거나 연체일이 30일이 넘어 기한이익이 상실된 차주, 6개월 이상 장기 휴폐업자 등이 부실우려 차주에 해당한다.
이번 지원안은 쉽게 말해 연체 위기에 몰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진 빚을 새출발기금이 사들이는 방식으로 부채를 조정해준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대출을 3개월 이상 연체한 차주에 대해 보증부·무담보 대출원금의 60~90%를 감면해주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한 아직 연체 전이나 연체가 우려되는 차주에 대해서는 대출금리를 연 3~5%대로 낮춰주고 빚을 갚는 기간도 최장 20년까지로 늘려 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정부는 앞서 지난달 중순 발표한 '금융부문 민생안정 과제'에서 새출발기금을 통해 부실 및 부실우려 채권을 매입하는 대신, 9월 말 종료될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를 업계가 자율적으로 연장해 줄 것을 주문한 바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최근 은행연합회 등 금융권 협회장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새출발기금'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김 위원장은 "고금리·고물가와 금융시장 불확실성 증대로 다양한 위험상황이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면서 "금융권에서 새출발기금 등 금융 지원정책이 현장에서 실효성있게 전달될 수 있도록 집행단계까지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이번 정책에 대한 우려는 이미 확산되고 있다. 빚 탕감 소식에 따른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논란이 대표적이다. 금융회사 채무를 10일 이상 연체한 경우 예비 부실 차주로 규정해 이자를 감면해주고, 3개월(90일) 이상 연체한 사람은 원금까지 감면을 해주겠다는 내용이어서 고의 연체 등 일부 차주의 도덕적 해이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거세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들도 난색을 표하고 나서고 있다.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 등이 대출을 받을 때 지자체 산하 지역 신용보증재단(신보)이 보증을 섰는데 이번에 조성된 기금이 이들의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손실을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중앙정부가 재정 부담과 정책 손실을 자신들에게 전가하는 것 아니냐며 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 서울시 산하의 서울신보는 채권 매입가율 12% 가정 시 연 손실액이 4000억원에 이른다는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이에 도지사협의회는 성명서를 준비하는 등 집단 대응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시도협 측은 “새출발기금 사업은 지방 재정에 직접 손실을 발생시킬 수 있는데도 지자체 입장은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며 새출발기금 지원 대상과 범위를 축소하고 지자체 재정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 국비로 보전해달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은행 등 금융권 역시 정부의 새출발기금 정책에 대해 갖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현재 새출발기금 구축 관련 태스크포스(TF)가 금융권 참여 하에 운영 중인 가운데 금융권 내에서는 이번 기금 지원 대상인 '부실우려 차주'에 대해서도 금융거래 제한 등 일종의 불이익을 부과해 도덕적 해이 우려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또한 부실채권의 기준과 감면율이 다소 과도한 만큼 이를 좁혀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금융당국은 앞서 새출발기금을 통한 취약계층의 채무조정 과정에서 금융회사가 과도하게 손실을 보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이에 대한 시선도 여전히 미심쩍은 분위기다. 김 위원장은 국회에서 진행된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새출발기금으로 넘기는 대상은 이미 연체가 90일 이상인 대출 채권인데, 금융회사로선 기금에 매각하든 그대로 보유하든 어느 정도 손실은 불가피하다"면서 "기금으로 넘겨 과도하게 손실이 난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어떠한 방안이 있는지 고민해보겠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커지자 당국자들은 새출발기금 정책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저마다 진화에 나서고 있는 상태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새출발기금을 둘러싼 도덕적 해이 논란에 대해 오해라고 언급했다.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도 “(일부 지자체장의 반발은) 오해가 있다”며 “대화를 통해서 서로 (오해를) 풀 수 있는 문제”라고 해명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역시 "처음 금융거래 할 땐 돈을 빌린 사람이나 빌려준 쪽이나 정상적인 거래가 이뤄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채무불이행 상황이 발생한다"며 "이 경우에 대비해 금융회사는 자체적으로 채무조정을 진행하고 신용회복위원회나 법원에서도 (채무조정을) 해주는데, 이번 제도도 그러한 정신에 맞춰서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해당사자 간 정책을 둘러싼 시각차가 쉽사리 접점을 찾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 이로 인해 새출발기금 시행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새출발기금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 등에 대한 논의가 여전히 진행 중이어서 업계 입장이나 시행 시기 등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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