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일본 니가타현(新潟県)에서 사도(佐渡)광산 추도식이 진행됐다. ‘사적(史跡) 사도금산’은 미쓰비시머티리얼(三菱マテリアル)의 자회사 골든사도(ゴールデン佐渡)가 운영하는 시설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산업유산이다. 일본 근대화 이전부터 금을 중심으로 개발된 광산이지만 ‘군함도’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나가사키현(長崎県)의 하시마(端島)와 마찬가지로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배하던 시대에 적지 않은 조선인들이 노동을 강요당한 현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식민지배 유산을 두고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자 한국 정부는 당초 반대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윤석열 현 정부가 들어서며 한반도 출신 근로자를 둘러싼 역사를 제대로 설명하는 전시를 마련하는 조건으로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고, 올해 7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됐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에서 일한 모든 노동자를 위한 추도행사를 매년 열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이번에 첫 추도행사를 앞두고 한국 측이 개최 하루 전에 갑자기 불참을 결정했다. 그 이유를 둘러싸고, 일본 정부 대표로 참석 예정이던 이쿠이나 아키코(生稲晃子) 외무 정무관이 2022년에 제2차 세계대전 A급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靖国) 신사를 참배한 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보도가 있었다(이쿠이나 정무관이 2022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정보는 오보였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결국 한국 정부는 일본 측 행사 다음 날에 유가족과 함께 다른 장소에서 추도식을 열었다. 한국 측의 불참이 결정된 후 행해진 일본 측의 추도행사 식순에는 '추도사'가 단순히 '인사'로 바뀌었고, 이쿠이나 정무관의 인사에도 내빈들의 말에도 '강제노동'에 대한 언급이나 반성, 사죄의 내용은 없었다고 한다. 이에 추도행사로 충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내년부터 성실한 대응을 요구했다고 하지만, 오랜 세월 사도광산의 조선인 강제노동 피해 조사 등을 해온 일본 시민들 사이에서는 일본의 행사가 주최 측 초청자만 참가할 수 있는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추도보다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고 관계자들에게 감사하기 위한 행사처럼 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들려왔다.
하지만 2022년에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제3자변제라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한일관계는 회복된 것처럼 됐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당시 일본 총리는 이후 12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졌으니 한일관계가 좋아진 것은 틀림없고, 아무리 갈등이 깊더라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외교라고 생각한다면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을 정치인으로서 매우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런데, 제3자변제라는 방안은 피해자들에게 새로운 내적 갈등을 초래하고 말아 현안 해결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에서 “반컵을 채우지 못했다”며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를 '굴욕 외교'라고 혹평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왜 역사인식의 문제가 되면 그렇게까지 한일 간에 상이한 시각이 생기는 것일까. 그 문제의 근원을 살피려면 역시 196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5년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60년이 되는 해다. 최근 10년 동안 한일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된 이후 한일관계를 규정해온 ‘65년체제’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65년체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로 맺어진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따른 국제질서 속에서 형성됐다. 따라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제가 안고 있는 냉전 구조의 영향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는 1990년을 전후하여 동서 냉전체제가 붕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분단이 계속되며 한반도에서는 냉전구조가 그대로인 것처럼, ‘65년체제’ 또한 동아시아에서 냉전구조를 그대로 떠안은 체제로 지금에 이르렀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당시 일본에 의해 직접 식민지배를 받은 한반도와 타이완은 서명국으로 초대받지 못했고, 식민지배 책임 문제는 당사자인 양국 간의 협의에 맡겨졌다. 즉, 한일 간의 식민지배 책임 문제는 본래 1965년의 기본조약에서 해결되었어야 했지만 최종적으로 충분한 결론이 도출되지 않은 채 한일 양국이 국교정상화를 결정한 것이다. 그때, 한국과 일본에 의해 '한국병합'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한 “already null and void(이미 무효)”라는 모호한 문구가 채택되면서 식민지배 불법성에 대한 논의는 결국 보류되었다.
한국은 ‘병합조약’을 “원천 무효”였다고 주장했고, 일본은 “1965년 시점으로 무효가 되었다”고 해석한 것이다. 그 결과 일본이 한국에 대한 '독립 축하금'이라고 부른 경제협력 지원을 한국이 받아들였고, 일본은 지금까지 식민지배 책임을 외면해온 것이다. 그러한 애매함을 남긴 채, 한일관계는 오늘날까지 발전해왔다.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동아시아 냉전구조를 내포한 ‘65년체제’였다.
1990년대 이후 모호한 상태로 남겨둔 식민지배를 둘러싼 역사인식 문제가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거품경제 붕괴 이후 “잃어버린 10년, 20년, 그리고 30년”을 보낸 일본과 민주화 이후 더욱 발전하여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적 영향력까지 발휘하게 된 한국 사이의 관계에는 변화가 생겼다. 과거 “수직적 관계”라고 불렸던 한일관계는 이제 “수평적 관계”로 바뀐 것이다.
한편, 보편적 인권에 대한 인식의 발전, 전시 폭력에 의한 인권침해의 피해 회복을 요구하는 목소리, 그리고 과거 제국주의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가치인식이 국제사회에서 조금씩 확산되었다. 그것을 배경으로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 문제가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논의의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여전히 대세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런 일부 국제사회의 흐름에 따라 한국에서는 2011년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두고 한국 정부의 부작위를 지탄했고, 2018년에는 대법원이 강제노동 문제에 대해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규정함으로써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한국 사법부의 이러한 판단이 역사인식의 문제를 한일 외교 현안으로 만들었다. ‘65년체제’ 하에서 모호하게 다루어진 식민지배 문제를 한일 양국 정부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 역사인식의 문제는 일본 정부에게만 제기된 것이 아니라, 다른 인식을 보류함으로써 성립된 ‘65년체제’ 하에서 발전해온 한일 양국에게 던져진 과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주장해온 한국 정부도 개별 사법 판단이 내려질 때까지 ‘65년체제’ 아래서 일본 정부에게 구체적인 요구를 하지 않았다. 과거 역대 진보 정권에서조차 강제노동 문제에 대해 ‘65년체제’ 범위 내에서 대처하려고 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한국 사법부의 판단을 ‘65년체제’의 틀을 근본부터 뒤흔드는 것이라고 생각해 강하게 반발했다. 당시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국제법 위반”이라고 세게 비판한 것은, 즉 한국 정부가 사법부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65년체제’를 위배하는 것이라고 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당시 한국 정부는 “65년체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일본 측에 보내면서도 식민지하 희생자들의 존엄회복을 폄훼할 수 없고, 사법부의 판단 또한 무시할 수 없었던 결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한 한국 정부의 딜레마와 일본 정부 및 여론에 의한 “한국은 반일(反日)”이라는 인식이 2019년 한일관계 악화로 이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 한국 정부는 2023년 제3자변제라는 방안으로 한일관계 회복을 시도했다. 즉, 한일 간의 식민지배 책임 문제를 모호하게 해놓은 ‘65년체제’ 틀에 머물 것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번 사도광산 추도행사를 둘러싸고 일본 정부의 대응을 문제 삼으면서도 이탈리아에서 열린 G7 외교장관 회의 때는 한일 양국 외상이 이번 추도행사를 둘러싼 문제가 한일관계 발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국 정부의 갑작스러운 추도행사 불참에 대해 일본 내 여론 중에는 “약속을 어긴 부적절한 대처”라는 견해나 “이쿠이나 정무관이 비록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고 해서 무엇이 나쁜가?” 하는 주장들도 적지 않다. 물론 역사인식 문제만으로 한일관계가 좌우되거나 대화를 차단하는 사태는 양국 모두에게 유익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피해자나 그 유가족에게 한일관계를 떠넘기는 것과 같은 상황을 만드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어떤 현안이든 대화를 통해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한편, “일본이 스스로 나머지 반컵을 채울 것”이라는 현재 한국 사회의 기대는 배신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65년체제’ 틀을 넘어선 한일관계의 발전이 없다면 반복될 것이다. 식민지배 책임에 대해 엇갈린 인식을 그대로 두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해온 것이 ‘65년체제’이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이 이웃으로서 서로에게 중요한 동반자라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65년체제’ 하에서 발전해온 지금까지의 한일관계는 새로운 시대를 맞아 한계에 부딪치고 있다.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는 내년에는 ‘65년체제’를 어떻게 변화시켜나갈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있기를 기대해본다. 식민지배 책임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의 한일관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 또한 필요할 것이다. 2025년은 한반도 해방 80주년, 일본 제국주의 종식 80주년이 되는 한 해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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