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50년 이상 된 작품 중 6만 5000 파운드(약 1억 원) 이하의 가격평가를 받은 경우, 수출이 가능하다. 단 50년 이상 된 고고학 유물과 문서, 필사본, 그리고 18만 파운드(약 3억 원) 이상의 가격평가를 받은 유화나 템페라 등은 ‘중요 문화재’로 취급되어 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예술 작품 및 문화적 관심 대상 수출 검토 위원회'가 해외로 팔려나가 반출될 위기에 놓인 많은 작품을 '긴급수출정지명령'을 통해 '우선 구입권'을 발동해 영국 내에 남겨놓는 마지막 수비대로 활약 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늘 모금 등을 통해 우선 구입자금모금에 성공해 중요한 문화유산이자 인류의 보물을 영국 내에 소장할 수는 없는 노룻이었다. 2023년 영국은 위원회의 조언에 따라 조슈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 1723~92)의 <오마이의 초상>(Portrait of Mai, 1776)에 대한 수출을 금지했다. 그리고 예술가, 재단 및 공공 기부자들의 지원을 받은 다각적인 캠페인을 통해 런던 국립 초상화미술관(NPG)은 구매에 필요한 5000만 파운드(약 900억원)를 모금하려 노력해 약 2000 명의 아트펀드 회원의 참여와 많은 재단의 기부에도 불구하고 워낙 거금인 탓에 기간 안에 2500만 파운드를 모금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미국의 게티미술관(J. Paul Getty Museum)과 공동으로 이 작품을 인수하기로 했다. 따라서 이 두 기관은 작품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대중이 영구적으로 작품을 볼 수 있도록 하는 혁신적인 국제 협력 모델을 만들었다. 이후 두 기관은 대중 전시, 연구 및 보존 관리를 위해 그림을 공유하기로 했다.
영국 내에서 두 미술관이 공동으로 작품을 수장하는 공동구매는 이미 2009년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과 런던 국립미술관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들 두 미술관은 티치아노(Titian, 1487?~1576)의 <디아나와 악테이온>(Diana and Actaeon,1556~59)을 5000만 파운드 (약 900억원)을 모금해 2009년 공동으로 소장했다. 3년 후 영국을 대표하는 양대 미술관 간의 공동구매는 다시 이루어졌다. 티치아노의 <다이애나와 칼리스토>(Diana and Callisto, 1556~59)라는 작품을 4500만 파운드(약 810억 원)에 공동으로 구입 소장한 것이다. 이 작품은 런던과 애딘버러에 6:4 비율로 전시되는데 이는 런던 국립 미술관이 구입 당시 더 많은 금액을 기여했기 때문이다.
2015년 로스차일드가(Rothschild family)에서 소장하던 약 1억 6000만 유로(약 2415억 원) 상당의 렘브란트(Rembrandt, 1606~69)가 그린 17세기 회화 작품 마르텐 솔만스(Maerten Soolmans)와 그의 아내가 된 오프옌 코피트(Oopjen Coppit)의 초상화(1634년)가 크리스티를 통해 1억 6000만 유로(약 2418억원)에 시장에 나왔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의 결혼을 기념해 그린 것으로 각각 그려졌지만, 처음부터 함께 보관되었던 작품이다. 루브르는 렘브란트의 걸작을 소장할 절호의 기회로 여겨 문화부에 문화유산수출통제를 요청했으나 기간 내에 작품 구입에 필요한 금액을 모금하지 못하면서 프랑스는 더는 렘브란트를 붙잡아 둘 수 없게 되었다.
한편 렘브란트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 네덜란드의 국립미술관(Rijksmuseum)에는 렘브란트의 대표작을 자국으로 환수할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작품을 두고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외교적으로 동맹국 간의 관계가 훼손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양국 정부는 렘브란트의 초상화 두 점을 각각 8000만 유로씩 분담해 소장하기로 합의하고 미술관 간 경쟁하지 않기로 했다.
2024년에는 베를린과 드레스덴 그리고 바이마르 미술관이 공동으로 독일의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이 1804년 사용한 스케치북으로 빌라 그리세바흐(Villa Grisebach) 경매에 나온 것을 공동으로 구입했다. 소위 '칼스루에 스케치북'으로 알려진 스케치북에는 드레스덴 지역을 그린 그림이 있으며,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진 프리드리히의 스케치북 6권 중 하나로 이 중 4권은 노르웨이 오슬로의 국립미술관(Nasjonalmuseet)이, 나머지 1권은 드레스덴 판화, 드로잉, 사진 미술관(Dresden’s Kupferstich Kabinett)이 소장했는데 마지막 개인이 소장했던 스케치 북을 3개 미술관이 공동으로 수집하게 된 것이다. 가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약 100만~150만 유로(약 15억원~22억 6000만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고품질의 희귀한 미술품은 엄청나게 비싸 미술관이 소장할 엄두도 내지 못할 경우, 미술관 끼리 비용을 분담해 단독으로는 소장할 수 없는 작품을 공동으로 수집한다. 이 경우 더 많은 사람이 작품을 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유익한 방법이다. 또 시장의 변동으로 인해 위험부담을 나눌 수 있다는 점, 미술관은 전략적으로 컬렉션을 강화해 격차를 메우고 사명과 관객에게 부합하는 방식으로 소장품을 다양화할 수 있다는 점과 부족한 수장공간의 대안으로도 공동소장은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공동구매를 통해 향후 양 미술관의 관계와 협업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미술관 간의 공동구매는 미술품 가격이 급등한 근대나 동시대 미술로까지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2003년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의 관장 맥스웰 앤더슨(Maxwell L. Anderson, 1956~ )은 런던의 테이트(TATE), 파리의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를 설득해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Bill Viola, 1951~2024)의 3채널 비디오 설치작 <밀레니엄을 위한 다섯 천사>(Five Angels for the Millennium, 2001)을 공동으로 소장했다. 2011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과 게티미술관은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 1946~89)의 사진과 원판필름, 편지로 구성된 약 2000여 점의 방대한 컬렉션을 공동으로 인수했다. 이를 통해 LA는 20세기 사진의 주요 중심지로서의 입지를 더욱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2013년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Stedelijk Museum Amsterdam)과 드 할렘 미술관(De Hallen Haarlem)은 국제적으로 유명한 리네케 딕스트라(Rineke Dijkstra,1959~ )의 <크레이지하우스>(The Krazy House,2009), 터너상 수상작가 엘리자베스 프라이스 (Elizabeth Price,1966~ )의 <1979년 울워스 합창단>(Woolworths Choir of 1979), 휘도 판 데어 베르베(Guido van der Werve,1977~ )의 <14번 집>(Number Fourteen, Home) 등 세 명의 비디오 아티스트의 작품 3점를 공동으로 소장했다. 2014년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과 아인트호벤의 반 아베미술관(Van Abbemuseum)도 독일의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1966~ )의 비디오 설치작품 <아도르노스 그레이>(Adorno's Grey, 2012)와 비디오 3부작 <11월>(November, 2004), <사랑스런 안드레아>(Lovely Andrea, 2007) 그리고 <추상>(Abstract, 2012) 등 4 작품을 공동소장했다.
2019년 디아 비콘(Dia Bicon)은 천장에서 매달려 쏟아져 내려오는 듯한 샘 길리엄(Sam Gilliam, 1933~2022)의 회화 작품 <이중병합>(Double Merge, 1968)을 개인 소장가로부터 장기 대여받아 전시했다.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지만, 근래에 수백 배로 치솟은 작품가격은 예산이 없는 미술관으로서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2013년에는 뉴욕의 MET와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SF MOMA)는 윌리엄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 1955~ )의 멀티미디어 설치작품 <시간의 거부>(The Refusal of Time, 2012)을 공동으로 수집했고, 2016년 SF MOMA와 댈러스 미술관은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 1935~2013)의 1986년 작품 <대형 막대 시리즈: 원형/직사각형>(Large Rod Series: Circle/Rectangle, 5, 7, 9, 11, 13)을 공동으로 수집했다.
202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 사자상을 받은 오스트레일리아관의 아치 무어(Archie Moore, 1970~ )의 작품 <친척과 친지>(Kith and Kin, 2024)를 런던의 테이트 모던과 호주 브리즈번에 있는 퀸즈랜드미술관(Queensland Art Gallery)이 공동으로 소장했다. 작품은 '넓은 검은 벽에 분필로 쓰고 그린 6만5000년과 2400세대의 가족계보를 지도화 한 것'으로 아치 무어(Archie Moore)는 호주의 선주민인 카밀라로이(Kamilaroi)와 비감불(Bigambul) 출신의 호주 예술가로 식민지 시절 영국의 유산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은 친족의 활력에 대한 국제적 인식을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선주민이 직면한 과거와 현재의 불의에 대한 기념물 같은 역할을 하는 작품이다.
미국의 유명한 컬렉터인 얄(Jarl,1951~ )과 파멜라 몬(Pamela Mohn, 1954~ )은 로스앤젤레스의 해머미술관(Hammer Museum)과 라크마(LACMA) 그리고 모카(MOCA)에 LA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 260여 점을 기증하고 3개 미술관은 이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하기로 합의했다. LA에 거주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으로만 구성된 이 컬렉션은 지난 20년 동안 몬 부부가 수집해 온 작품으로 이들 기증작은 'Mohn Art Collective: Hammer, LACMA, MOCA' 또는 'MAC3'라고 명명되어 3개 미술관이 관리한다. 부부는 작품을 기부하면서 기금으로 1,500만~2000만 달러(약 221억원~294억원)를 출연해 향후 같은 유형의 컬렉션을 보강해, 충실한 컬렉션으로 완성하며 기증작품의 보관 및 관리에 드는 비용도 지출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일부 미술관들은 작품을 처분(Deaccession)해 그 자금으로 다른 작품을 구입, 소장품의 폭을 확장하는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샌프란시스코 근대미술관은 2019년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무제>(Untitled, 1960)를 판매한 대금으로 미칼렌 토마스(Mickalene Thomas,1971~ ), 프랭크 볼링(Frank Bowling, 1934~ ), 레오노라 캐링턴(Leonora Carrington, 1917~2011) 등의 여성과 유색인종 작가의 작품을 인수해 소장품을 다양화하고 있다.
SF MOMA는 과거에도 작품을 처분한 적이 있다. 미술관은 작품소장범위 밖에 있던 모네의 <아르장퇴유의 센 강>(The Seine at Argenteuil, 1875)을 2014년 처분해 SF MOMA를 상징하는 소장품이 된 로스코의 걸작 <무제 No.14>(Untitled No.14,1960)를 인수했다. 미술관은 2012년 피카소(Picasso,1881~1973)의 <실베트의 흉상(Bust of Sylvette, 1954)년과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굴레 길>(Bridle Path, 1939)을 처분해서 마련한 자금으로 도로시아 태닝(Dorothea Tanning, 1910~2012)의 <자화상(Self-Portrait, 1944)과 로마레 비어든(Romare Bearden,1911~1988)의 <세 남자>(Three Men,1966~67)을 소장했다.
미술관들은 소장품 수집 정책과 절차를 통해 처분 또는 폐기(Deaccession)의 기준을 마련해 두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근대미술관의 경우 해당 작품이 컬렉션 범위를 벗어나거나 중복되는 경우에 한하며, 처분하려는 작품이 생존작가가 아닌 작고 작가에 한정된다. 만약 생존작가의 경우 같은 작가의 더 우수한 작품을 획득하기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처분 즉 판매할 수 없으며, 만약 그런 경우라 허더라도 작가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미술관의 작품 수집방식은 기증, 기부, 유증을 포함한 구입과 대여 특히 중장기 대여를 통한 방법 외에 공동구매, 공동소장의 방식 그리고 물납제와 문화기부제도는 물론 주요미술품 문화재의 긴급수출금지명령을 통해 작품을 수집하는 등 수집방식을 다원화해서 이제 공동구매와 처분을 통한 방법에까지 이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주요 작품 1~2점 소장하면, 끝나는 쥐꼬리만 한 정부 또는 자치단체의 예산을 가지고 언제 번듯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가질 수 있을지. 건물만 미술관이라고 덩그러니 자리한 이 황량한 풍경을 언제까지 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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