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혁 칼럼니스트]
범중엄(范仲淹·989~1052)은 우리에게는 소동파, 구양수, 사마광 등 엇비슷한 시대를 살다 간 북송(北宋)의 쟁쟁한 인물들에 비해 덜 알려졌으나 학자와 정치가로서 당대의 명망이 높았고 역사의 평가도 후하다. 한 세대 뒤에 태어나 피폐해진 나라를 뜯어고치고자 했던 신법당 리더 왕안석이 그를 롤모델로 삼았을 만큼 개혁가로서의 기질도 다분했다.
최고위직인 재상까지 역임했음에도 죽을 때 변변한 재산을 남기지 않을 만큼 범증엄은 평생을 청빈한 관리로 살았다. 그는 늘 백성들과 고락을 함께 하고자 했다. 악주(岳州, 후난성 악양의 옛 이름) 파릉현 성문의 서쪽 누대 악양루(岳陽樓)는 동정호를 굽어보는 명소다. 범중엄이 임지로 가던 중 그곳을 둘러보고 지은 '악양루기(岳陽樓記)'는 문장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악양루기 말미에 이런 구절이 있다. '先天下之憂而憂(선천하지우이우), 後天下之樂而樂(후천하지락이락)'. '천하의 근심거리를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을 나중에 즐거워하라'는 뜻이다. 그의 애민(愛民)사상이 농축되어 있는 명문으로 중국 공무원 시험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악양루기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산문으로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
범중엄은 사람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 주변에서 많은 인재를 발굴하여 재목으로 키우거나 적재적소에 기용하여 능력을 발휘하게 했고 관련 미담도 많이 전해진다. 소린(蘇鱗)과의 일화도 그중 하나다.
범중엄이 항저우에서 지부(知府)란 벼슬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도 그의 천거로 발탁된 인재들이 적지 않아 관내에 칭송이 자자했다. 외현(外縣)의 순찰직으로 있던 소린은 내심 억울했다. 자신이 외지에서 근무하느라 범중엄의 눈에 띄지 못해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요즘 2030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정성'에 대한 불만이다. 그러던 차에 항저우 관아에 들어갈 일이 생겼다. 다시 없는 기회라 여기고 소린이 짧은 시 한 수를 지어 범중엄에게 바쳤다.
近水樓臺先得月 근수누대선득월
向陽花木易為春 향양화목이위춘
"물가의 정자가 달빛을 먼저 받고, 햇빛을 향한 꽃나무에 봄이 쉽게 깃드는구나."
자신은 능력이 충분함에도 단지 윗사람의 눈에 띄지 않아 발탁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을 자작시에 담아 전한 것이다. 시는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문학의 한 장르를 넘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속내를 은연중 드러내는 고품격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른바 시를 지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부시언지(賦詩言志)'다. 문장력이 곧 능력으로 통하던 시대다. 시를 본 범중엄은 이내 소린의 능력을 알아보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걸맞는 자리를 찾아주었다. 이후 '근수누대'는 '실력자의 눈에 들어야 출세할 수 있다'거나 '권력이나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덕을 본다'는 의미의 성어로 자리잡았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난 지 두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해방 직후 나라가 신탁통치를 두고 찬반으로 갈라졌듯 사회 곳곳이 탄핵 찬반으로 쪼개졌다. 편파 진행에 졸속 속도전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숨가쁘게 달리던 탄핵심판 열차가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온국민의 관심사인 만큼 TV에서는 연일 탄핵심판 변론 실황을 보여준다. 군 병력을 동원한 국회 진입과 요인 체포 지시 여부가 최대의 쟁점이다보니 계엄 사태에 연루된 고위 군장성들의 출연이 잦다. 비상계엄 사태로 떨어진 별이 20개라고 하던가. 우리 군의 핵심 부대 사령관들이 보직 해임된 채 왼쪽 상완에 부착했던 부대 마크를 떼고 법정에 앉아 있는 모습은 안쓰럽다. 무장의 의연함을 잃지 않는 증인이 있는가 하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증인도 있다. 진술과 증언이 오락가락하고 야당 국회의원들한테 회유당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탄핵 찬반 시위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정국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계엄 여파로 된서리를 맞은 이들이 꿰차고 있던 자리는 누구나 선망하는 요직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그 자리를 차지했을까? 개인적인 역량이야 다들 뛰어나겠지만 과연 그게 다일까?
고위공직자나 군 장성 인사의 내밀한 속사정을 일개 필부가 어찌 알 수 있겠냐만, 어떤 이유로든 대통령의 눈에 들었거나 이런저런 인맥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발탁됐던 건 아닐까? 국방부장관, 행안부장관, 방첩사령관만 해도 소위 '충암파'라 통칭될 정도로 대통령과 고등학교 동문이라는 학연으로 얽혀 있지 않던가. 그들은 물가에 있었던 덕분에 달빛을 먼저 받은 것이라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달빛 하니까 문재인 정권 때 이야기가 떠오른다. 소위 '문비어천가'가 권부에 메아리치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성씨 '문'이 영어로 '달(moon)'인 점에 착안해 문 대통령을 '달님'이라 칭하는 게 지지자들 사이에서 유행이었고, 대학교수 출신 어느 여성 정치인은 "moonlight, 달빛소나타가 대통령의 성정을 닮았다"는 낯간지러운 찬사를 늘어놓으며 베토벤의 '월광소나타'를 피아노로 직접 연주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대통령에게 헌정한다고 했다. 그같은 눈물겨운(?) 노력은 당연히 문 대통령의 눈에 들었을 테고, 그로부터 몇달 뒤 썩 괜찮은 보직을 하사받음으로써 성어 근수누대의 교훈이 허언이 아님을 보란듯이 입증했다.
허나 세상사가 어디 그렇게 단순하던가. 하루아침에 피의자가 되어 수감되고 법정에 불려다니는 윤석열 정권 인사들을 보라.
물가에 있던 덕분에 달빛을 먼저 받아 누구나 부러워할 자리를 꿰찬 그들은 그 꿀보직 탓에 계엄 사태에 연루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평생 일구어 온 경력에 오점을 남기고 불명예 퇴진의 위기에 놓였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듯 화가 복이 되기도 하고 복이 화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니 인생의 길흉화복을 섣불리 예단하지 말자. 물가의 정자에 서리가 먼저 내리고, 햇볕 잘 받는 꽃나무는 시들기 쉽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최고위직인 재상까지 역임했음에도 죽을 때 변변한 재산을 남기지 않을 만큼 범증엄은 평생을 청빈한 관리로 살았다. 그는 늘 백성들과 고락을 함께 하고자 했다. 악주(岳州, 후난성 악양의 옛 이름) 파릉현 성문의 서쪽 누대 악양루(岳陽樓)는 동정호를 굽어보는 명소다. 범중엄이 임지로 가던 중 그곳을 둘러보고 지은 '악양루기(岳陽樓記)'는 문장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악양루기 말미에 이런 구절이 있다. '先天下之憂而憂(선천하지우이우), 後天下之樂而樂(후천하지락이락)'. '천하의 근심거리를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을 나중에 즐거워하라'는 뜻이다. 그의 애민(愛民)사상이 농축되어 있는 명문으로 중국 공무원 시험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악양루기는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산문으로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
범중엄은 사람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 주변에서 많은 인재를 발굴하여 재목으로 키우거나 적재적소에 기용하여 능력을 발휘하게 했고 관련 미담도 많이 전해진다. 소린(蘇鱗)과의 일화도 그중 하나다.
범중엄이 항저우에서 지부(知府)란 벼슬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도 그의 천거로 발탁된 인재들이 적지 않아 관내에 칭송이 자자했다. 외현(外縣)의 순찰직으로 있던 소린은 내심 억울했다. 자신이 외지에서 근무하느라 범중엄의 눈에 띄지 못해 불이익을 당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요즘 2030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정성'에 대한 불만이다. 그러던 차에 항저우 관아에 들어갈 일이 생겼다. 다시 없는 기회라 여기고 소린이 짧은 시 한 수를 지어 범중엄에게 바쳤다.
向陽花木易為春 향양화목이위춘
"물가의 정자가 달빛을 먼저 받고, 햇빛을 향한 꽃나무에 봄이 쉽게 깃드는구나."
자신은 능력이 충분함에도 단지 윗사람의 눈에 띄지 않아 발탁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을 자작시에 담아 전한 것이다. 시는 중국인들에게 있어서 문학의 한 장르를 넘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속내를 은연중 드러내는 고품격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른바 시를 지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부시언지(賦詩言志)'다. 문장력이 곧 능력으로 통하던 시대다. 시를 본 범중엄은 이내 소린의 능력을 알아보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걸맞는 자리를 찾아주었다. 이후 '근수누대'는 '실력자의 눈에 들어야 출세할 수 있다'거나 '권력이나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덕을 본다'는 의미의 성어로 자리잡았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난 지 두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해방 직후 나라가 신탁통치를 두고 찬반으로 갈라졌듯 사회 곳곳이 탄핵 찬반으로 쪼개졌다. 편파 진행에 졸속 속도전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숨가쁘게 달리던 탄핵심판 열차가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온국민의 관심사인 만큼 TV에서는 연일 탄핵심판 변론 실황을 보여준다. 군 병력을 동원한 국회 진입과 요인 체포 지시 여부가 최대의 쟁점이다보니 계엄 사태에 연루된 고위 군장성들의 출연이 잦다. 비상계엄 사태로 떨어진 별이 20개라고 하던가. 우리 군의 핵심 부대 사령관들이 보직 해임된 채 왼쪽 상완에 부착했던 부대 마크를 떼고 법정에 앉아 있는 모습은 안쓰럽다. 무장의 의연함을 잃지 않는 증인이 있는가 하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증인도 있다. 진술과 증언이 오락가락하고 야당 국회의원들한테 회유당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탄핵 찬반 시위는 갈수록 뜨거워지고 정국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계엄 여파로 된서리를 맞은 이들이 꿰차고 있던 자리는 누구나 선망하는 요직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그 자리를 차지했을까? 개인적인 역량이야 다들 뛰어나겠지만 과연 그게 다일까?
고위공직자나 군 장성 인사의 내밀한 속사정을 일개 필부가 어찌 알 수 있겠냐만, 어떤 이유로든 대통령의 눈에 들었거나 이런저런 인맥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에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발탁됐던 건 아닐까? 국방부장관, 행안부장관, 방첩사령관만 해도 소위 '충암파'라 통칭될 정도로 대통령과 고등학교 동문이라는 학연으로 얽혀 있지 않던가. 그들은 물가에 있었던 덕분에 달빛을 먼저 받은 것이라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달빛 하니까 문재인 정권 때 이야기가 떠오른다. 소위 '문비어천가'가 권부에 메아리치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성씨 '문'이 영어로 '달(moon)'인 점에 착안해 문 대통령을 '달님'이라 칭하는 게 지지자들 사이에서 유행이었고, 대학교수 출신 어느 여성 정치인은 "moonlight, 달빛소나타가 대통령의 성정을 닮았다"는 낯간지러운 찬사를 늘어놓으며 베토벤의 '월광소나타'를 피아노로 직접 연주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대통령에게 헌정한다고 했다. 그같은 눈물겨운(?) 노력은 당연히 문 대통령의 눈에 들었을 테고, 그로부터 몇달 뒤 썩 괜찮은 보직을 하사받음으로써 성어 근수누대의 교훈이 허언이 아님을 보란듯이 입증했다.
허나 세상사가 어디 그렇게 단순하던가. 하루아침에 피의자가 되어 수감되고 법정에 불려다니는 윤석열 정권 인사들을 보라.
물가에 있던 덕분에 달빛을 먼저 받아 누구나 부러워할 자리를 꿰찬 그들은 그 꿀보직 탓에 계엄 사태에 연루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평생 일구어 온 경력에 오점을 남기고 불명예 퇴진의 위기에 놓였다. 세상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듯 화가 복이 되기도 하고 복이 화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니 인생의 길흉화복을 섣불리 예단하지 말자. 물가의 정자에 서리가 먼저 내리고, 햇볕 잘 받는 꽃나무는 시들기 쉽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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