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정관헌, 원래 모습 본다

  • 1930년대 공원화되면서, 벽 제거

  • 특별전 '대한제국 황궁에서 양관-만나고, 간직하다'

정관헌 현장 연출 사진국가유산청
정관헌 현장 연출 [사진=국가유산청]


‘고종의 카페’로 알려진 덕수궁 정관헌. 하지만 정관헌은 본래 왕실의 보물을 간직하던 공간이었다. 지금은 벽이 뻥 뚫린 개방 구조지만, 1900년경 건립 당시에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국가유산청은 오는 22일부터 정관헌의 원형 모습을 연출해 공개한다.
 
정관헌은 정자가 아닌, 왕의 초상화인 어진을 비롯해 왕실 보물을 봉안했던 수장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정면 계단까지는 황제만이 다닐 수 있는 어도가 있었고, 정면 중앙 복도 좌우 방에는 왕실 보물들이 보관됐다.
 
1902년 정관헌에서 고종과 순종의 어진을 그렸는데, 당시 순종은 1년 동안 약 90번 정관헌을 방문했다고 한다. 또 1910년에는 황실의 국새를 비롯해 북한산성에 있던 어보 등을, 1915년에는 고종과 순종의 어진을 봉안했다.
 
고종이 정관헌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국유청 관계자는 “고종이 정관헌 안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며 “1930년대 덕수궁이 공원화가 되면서 내부에 휴게실을 만들고 광복 후에는 그 안에 카페가 들어서면서 오해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영화에서는 기둥 사이에 창문을 달아서 카페로 사용된 모습 등이 담겨 있다”며 “정관헌 내부에 언제 카페가 들어서게 됐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덕수궁 돈덕전에서 오는 22일부터 7월 13일까지 ‘대한제국 황궁에서 양관-만나고, 간직하다’ 특별전이 열린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대한제국 황궁인 경운궁이자 현재의 덕수궁에 개항 이후 건립된 양관들(구성헌, 정관헌, 중명전, 돈덕전, 석조전 등)에 간직되었던 국새와 어보, 금책, 인장 등과 외국공사가 황제를 만나는 의식인 폐현례 관련 유물 110여 점을 볼 수 있다.
 
아울러 관람객들은 서양식으로 지은 건물인 양관이 서구 문물의 수용을 넘어,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스스로 길을 모색하려 했던 대한제국의 노력이 담긴 중요한 문화유산임을 살펴볼 수 있다. 구성헌, 돈덕전, 석조전 등 양관은 개항 이후 외교 의례용 건물로 사용됐다.

이와 관련해 1901년 한 해 동안 구성헌에서의 외국사절 접견 기록이 남아 있는 <공사청일기>와 돈덕전에서 거행된 순종 즉위식장 배치도가 실려있는 <대황제폐하즉예식의주> 등도 전시된다. 또한 1904년 경운궁 대화재 이전, 외국사절이 황제를 폐현(만나 뵘)하기 전 대기 공간인 휴게실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이번 전시에 처음으로 나왔다.
 
덕수궁__대한제국 황궁에 선 양관 - 만나고 간직하다_ 특별전 사진국가유산청
덕수궁__대한제국 황궁에 선 양관 - 만나고, 간직하다_ 특별전 [사진=국가유산청]

온돌을 바탕으로 한 전통 생활공간과 양관의 입식 공간을 비교하여 만나 볼 수도 있다. 온돌을 활용한 좌식 생활공간을 무형유산 작품으로 연출하고, 양관의 입식 생활공간은 1910년 건립 당시 석조전에 사용된 영국 메이플 회사(Maple & Co.)의 가구를 활용하여 비교 연출했다.
 
이재필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본부장은 “대한제국 이후 덕수궁에는 양관이 10개 정도가 설치됐다가 돈덕전, 정관헌, 중명전, 석조전 등만 잔존해 있다”라며 “전통과 근대가 만나 서로 가치를 포용하는 모습을 이번 전시에 담아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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