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금융당국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더불어민주당이 기획재정부 기능·역할 전면 재설계 과정에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기능 분리 및 재조직화를 위한 정치적 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당 정책위원회를 중심으로 기재부 분리 및 금융당국 재편안을 공약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새 정부 출범 이전에 관련 법안을 발의해 통과시키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부처 개편 논의는 대통령 선거 전후 활발하게 이뤄지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새 정부가 출범하는 현 상황에선 해당 안건이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현실적 문제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리 법적 기반을 다져 놓고 새 정부 출범 즉시 이를 실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인수위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도 대규모 정부조직 개편을 예고했지만 실제로는 중소벤처기업부 승격 등 소폭에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이미 군불 때기에 들어갔다. 진성준 정책위 의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부처 개편을 예고했으며, 28일엔 민주당 기재위원을 중심으로 '경제부처 개편 토론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5월 1일엔 '금융감독 체계 개혁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추가로 연다.
아직 구체적인 안이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실 또는 국무총리실 직속 기획예산처를 신설해 기재부의 예산 편성 기능을 담당하게 하고, 기재부 명칭을 재정경제부로 변경해 국고 수지를 총괄하게 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재경부 일부 기능은 금융위와 통합해 현 기재부의 국제금융, 금융정책 관련 업무를 맡도록 한다는 구상이 거론된다. 금감원 조직은 이원화되는 개편안이 유력하다. 감독 기능은 금융위로 옮겨 금융감독위원회로 재편하고 영업행위·자본시장 감독 기능은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가 맡는 방안 등이 논의 중이다.
분명 금융 선진화와 감독 기능의 강화를 위한 조직 개편은 필요한 작업이다. 특히 지금과 같이 금융 사고가 빈번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이 요원한 상황에서는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 그러나 당장 미국발(發) 관세 리스크에 미·중 무역갈등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데 대규모 조직 개편에 따른 혼란과 잡음은 불필요한 논쟁거리로 작용할 수 있다.
개편을 위한 개편은 금융정책의 일관화와 선진화를 훼손할 뿐이다. 기존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 확보가 어렵고 관료 조직 내부에서는 이해관계 충돌로 정책 추진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 특히 정책과 감독 기능은 민첩성과 일관성이 요구되는 영역이다. 잘못된 신호 하나가 시장 불안을 촉발할 수 있는 만큼 금융당국 개편은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정책적 필요성과 시장 안정이라는 대원칙 아래 신중히 추진돼야 한다.
조직 개편의 초점은 구조가 아닌 기능에 맞춰져야 한다. 금융시장 안정성 제고, 금융소비자 보호, 글로벌 경쟁력 강화라는 가장 근본적이면서 실질적 역할 강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당국 전반의 기능 평가와 문제 진단이 전제돼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설계도를 다듬고 이해 관계자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조직 개편은 속도전이 아닌 정밀전이다. 새 정부와 함께 시작되는 부처 개편은 정치권 입맛에 맞춘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안정적인 정책 운용을 위한 첫걸음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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