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수 전 대법관 "대법관 증원, '하급심 강화' 개혁 방향에 역행"

김선수 전 대법관 사진연합뉴스
김선수 전 대법관. [사진=연합뉴스]

참여정부 사법개혁 실무를 주도했던 김선수 전 대법관이 정치권의 대법관 증원 논의에 대해 “법원의 근본적 개혁 방향과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고 공개 비판했다. 특히 하급심 강화 없이 대법관 수만 늘리는 방안은 오히려 사법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현재 여당 주도의 사법개혁법안 추진에 제동을 걸었다.

김 전 대법관은 12일 법률신문에 기고한 장문의 칼럼 ‘법원 개혁 방안과 추진 체계·일정에 관한 관견(管見)’을 통해 이 같은 입장을 밝혔다. 최근 국회에서는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대법관 정원을 현행 14명에서 18명 이상으로 증원하고, 대법관 자격 요건에 비법조인도 포함하는 내용을 담은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민주당은 하반기 중 해당 법안을 법사위에서 본격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김 전 대법관은 “대법관 수 증원이 처음 제기된 것도 아니며, 이미 여러 차례 위상 추락이나 정책적 판단 기능 약화, 임명 지연 등 부작용이 지적돼 왔다”며 “법원이 스스로 선택한 개혁 방향인 하급심 강화와도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재판 결과에 대한 당사자의 승복 여부는 결국 법관이 각 사건에 들이는 시간과 비례한다”며, 1심 판사 증원이야말로 실질적인 개혁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대법관은 대법원의 업무 부담 완화를 위해서는 단순 증원보다 ‘상고심 실질 선별제도’ 도입이 우선돼야 한다고도 했다. 모든 상고사건을 기계적으로 수리하는 현 체계로는 중요 사건에 대한 심층 심리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대법관 정원에 대해서는 △현행 유지 △4명 증원(소부 1개 추가) △12명 증원(소부 3개 추가)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할 수 있지만, 이 중에서는 4명 증원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입장이다. 김 전 대법관은 “소부 1개 추가 시 전원합의체 구성(17인) 유지가 가능하고, 전문재판부로 운영하지 않아도 되는 점에서 무리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현재 민주당이 주장하는 비법조인 대법관 임명 확대에 대해서도 김 전 대법관은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비법조인 임명은 일본식 헌재·대법원 통합모델에 기반한 것으로, 헌재가 별도로 존재하는 한국의 이원적 체계와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독일 등 대륙법계에서도 연방헌법재판소 재판관 자격으로도 법관 자격을 요구하고 있다”며, 단순한 형식적 다양성보다 실질적 법조 경력의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대안으로는 △소부마다 최소 1인은 판검사 출신이 아닌 법조인을 포함시키는 인사 원칙 △대법관 임명 시 다양한 경력·가치관을 반영하도록 법원조직법에 규정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김 전 대법관은 또,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에 포함된 재판소원제 도입 추진에 대해서도 “현행 헌법 체계하에서는 위헌”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재판소원이 사실상 4심제 도입 효과를 가져오며, 이로 인한 소송 지연·비용 증가로 인해 강자에게 유리한 제도로 작동할 수 있다”며 헌법 개정 없이 입법만으로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대법관은 이러한 쟁점들을 두고도 사법개혁의 속도와 순서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기 개혁과제는 6개월 이내 입법 완료, 중장기 과제는 최대 1년 내 입법 마무리를 제안하며, “개혁은 전면 개편보다 계획된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 전 대법관(사법연수원 17기)은 사법시험 27회에 수석 합격하고도 법관이 아닌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고(故) 조영래 변호사의 시민공익법률사무소에서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창립 멤버이자 회장을 지냈다. 참여정부에서는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으로 일하며 국민참여재판·로스쿨 도입 등 사법제도 개혁 실무를 총괄했고, 문재인 정부 당시 대법관으로 임명돼 2018년부터 2024년까지 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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