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준호 경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 연설은 가슴이 탁 트이는 맑은 새벽 공기와 같았다. 성장, 통합, 평화를 위한 실용정부가 되겠다는 말이었다. ‘교육’에 대한 철학이 담겼다면 더욱더 대통령다운 연설이 되었을 것이다. 경제 위기 극복이 시급한 문제이지만 사람이 성장해야 경제도 성장하는 법이다. 좋은 교육 없이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은 어불성설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선거에서 “교육은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유아·초등교육의 국가 책임제' '기초학력과 시민교육 강화'와 같은 공약은 국민의 필요에 부응하는 것으로 실용적이었지만 재정 확보 없이 팬시한 작명으로 국민의 학벌 욕망을 부추기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같은 장식성 공약도 있었다.
공약도 실행되어야 하지만 대통령이 언급한 국민주권시대의 진짜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려면 국민이 교육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고 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 서 경인교대 ‘교육여론조사 연구팀’이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하여 2024년 9월 23일부터 10월 4일까지 전국 20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교육여론조사 데이터를 소개하고자 한다. 조사는 교육에 대해 국민이 지닌 근본적인 생각과 감정을 알아보고자 했다. 교육철학을 물어보았고, 교육과 학교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물어보았으며, 문제 인식과 변화에 대한 태도도 물어보았다. 정치적 정향 및 삶의 의미 발견·추구와 같은 가치정향(value-orientation)도 물어보았다.
교육여론조사는 교육관(A), 학교(B), 교육정책(C), 교육행정(D), 가치정향(E) 등 5개 영역으로 구분하여 실시되었다. 교육관(A)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교육에 대한 감정과 관련하여 교육을 떠올릴 때 국민의 53.7%가 '차분한, 자랑스러운, 즐거운'과 같은 긍정적 감정을, 46.3%가 '피곤한, 불안한, 짜증나는'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교육이 희망, 성장, 기회를 부여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일반적으로 긍정적 감정이 높게 나타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기대와 관련하여 자녀를 학교에 보낼 때 '성공'(49.51%)과 '인성'(50.49%)을 거의 동일하게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가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바라는 동시에 인격을 갖춘 시민이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 국민은 학교 교육 그 자체보다는 '학업성취도(성적)'가 개인의 미래에 더 영향을 준다고 보았으며 '개인의 노력'을 교육의 결과에 영향을 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보았다.
교육에 대한 국민의 ‘생각’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국민의 34.3%가 성장과 자아실현을 지향하는 인본주의를, 21.4%가 체험과 문제해결능력을 지향하는 진보주의를, 11%가 사회적 참여를 지향하는 사회변혁주의를 선호했다. 인본주의, 진보주의, 사회변혁주의의 합 을 구성주의로 본다면 국민 다수인 66.7%의 교육철학은 '활동과 경험을 통한 성장, 자기주도 적 학습, 문제해결능력, 사회적 참여를 지향하는 교육'인 구성주의인 것이다. 국민의 23.3%가 여전히 반복적 학습과 표준화된 지식 습득을 강조하는 행동주의(12.3%)와 본질주의(11%)를 선호하고 국민의 10%가 다섯 가지 철학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국민의 66.7%가 구성주의를 선호한다는 것은 교육에 대한 국민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은 교육목표, 학습방법, 학생 간 차이에서는 구성주의를 선호했지만 학습평가에서는 행동주의를 선호했다.
가치정향(E)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정치적 가치정향은 진보(40%), 보수(34%), 중도(26%) 로 나뉘었다. 플라톤의 <국가(Politeia)>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를 재구성해서 물어본 문제 인식과 변화에 대한 태도와 관련하여 국민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뉘었다. 즉 동굴의 비유를 우리의 교육 현실과 유사하지 않다고 보는 ‘순응형’, 동굴의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까지만 하는 ‘인식형’, 동굴의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하고 변화를 위해 온건하게 행동하는(말하는) ‘실천형’, 동굴의 상황을 문제라고 인식하고 변화를 이루어 내려고 강한 의지에 따라 실천하는 ‘변화형’으 로 분류되었다. 순응형이 24.2%, 인식형이 12.6%, 실천형이 20.2%, 변화형이 42.9%이었다. 현재의 문제 상황을 그대로 두는 순응형+인식형(36.8%)보다 문제를 해결하고 변화를 추구하는 실천형+변화형(63.1%)이 우세했다. 삶의 의미 발견·추구의 국민 평균은 4.84(7점 척도)로 비교적 높았고, 의미를 이미 발견한 강도(4.65)보다 새로운 의미를 추구하는 강도(5.03)가 높았다.
학교(B)에 대한 인식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국민의 55%가 학교를 떠올릴 때 부정적 감정을 느끼고(긍정적 감정 45%), 특히 수업과 학습에서는 '지루함'의 감정을 가장 강하게 느끼고 '즐거움'의 감정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국민은 학교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와 가장 가까운 연관어로 '친구'(32.8%)를 가장 많이 언급했고, '배려'(15%)와 '인성'(13.4%)을 자녀가 학교에서 습득하길 바라는 최고의 가치로 기대했으며 '협동'(12.7%)과 '질서'(10.5%)를 학교의 운영에 투영되어야 할 최우선의 가치로 기대했다. 교육부와 교사의 의견과 다르게 국민의 84.5%는 학교에서 인성교육이 실시되지 않는다고 보았으며 국민의 81.9%는 학교의 교육 과정이 시대 변화와 미래 요구를 반영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미래의 학교는 '인성을 기르는 곳' 이어야 한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24.7%). 초등학교 3~6학년 교육과정에서 증가되어야 할 최 우선 과목은 '도덕'(42.2~39.2%)이었으며,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지만 살면서 필요하다고 생 각되어 학교 교육과정에 포함시켜야 할 과목은 경제, 도덕, 인성교육, 진로·직업교육이었다.
교육정책(C)에 대한 인식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조사지에 제시된 9개 교육 문제 중에서 ‘학력주의와 학벌주의’의 심각성 정도가 가장 강하게 표출되었고, 과도한 사교육비 부담〉고소득만 추구하는 편향된 교육열〉수능 대비 일률적 교육 방식〉교육 격차〉교육의 지향점 및 철학의 부재〉줄세우기식 대학 선발 방식〉공교육 불신〉학습과 실천의 부조화 순으로 심각성 강도가 나타났다. 9개 교육 문제에 대한 전체 평균 심각성 인식 강도는 3.20(4점 척도)으로 상당히 높았으며, 교육철학과 변화에 대한 태도의 맥락에서 행동주의(3.06)·본질주의(3.03) 그룹과 인식형(3.0)·순응형(2.99)에서보다 구성주의(인본주의 3.32/진보주의 3.21) 그룹과 실천형 (3.34)·변화형(3.31)에서 높게 나타났다. 이로써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행동주의·본질주의 그룹(국민의 23.3%)과 인식형·순응형(국민의 36.8%)에 비해 구성주의 그룹(국민의 66.7%)과 실천형·변화형(국민의 63.1%)이, 즉 국민의 과반 다수가 우리 현실인 교육 문제를 부정적 시 선으로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교육의 변화를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술형 수능 도입에 국민의 64.3%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고등학교 정책과 관련하여 학교 유형의 다양화와 학교 내 교육과정의 다양성 증가(고교학점제)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 44.2%였으며, 부모가 희망하는 자녀의 진학 고교 유형은 일반고(34%)〉자사 고(16.3%)〉과학고(15.1%)〉자공고(12.3%)〉국제고(7.8%) 등 순서로 나타났다. 사교육비 부 담이 부모의 삶의 질과 행복을 떨어뜨리고 비혼 증가와 출산 감소의 원인이 되며, 나아가 학생의 삶에 대한 자기 주도성을 약화하고 가족구성원 간 불화를 증가시킨다는 네 가지 현상에 대해 국민의 동의 강도 평균은 3.08(4점 척도)이었다. 이는 교육 문제에 대한 심각성 인식 강도와 유사한 경향성을 보였다. 행동주의(3.03)·본질주의(2.98) 그룹과 인식형(2.97)·순응형(2.87)에서보다 구성주의(인본주의 3.12/진보주의 3.12) 그룹과 실천형(3.2)·변화형(3.18)에서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경향성은 학교에서 디지털 기기 활용 여부에 대한 인식에서도 관찰되었다. 국민의 69.2%가 유치원·어린이집에서, 국민의 61.8%가 초등학교에서 디지털 기기 사용 제한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행동주의·본질주의 그룹에서보다 인본주의 그룹에서 확연히 높게 ‘제한’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아가 15세 이하 학교 내 스마트폰 소지·사용 금지법안 제정과 관련하여 국민의 67%가 찬성했다. 진보주의 그룹(69%), 변화형(74%), 보수(70.9%)에서는 국민 평균 67%보다 높은 찬성 비율이 관찰되었다. 이는 국민 다수가 청소년의 스마트폰 과의존을 심각하게 인식하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행정(D)에 대한 인식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교육부의 정책에 대한 인지도와 만족도에서 부정은 각각 67.1%(알지 못함), 74.3%(만족하지 않음)로 나타났다. 시도 교육청의 정책에 대한 인지도와 만족도도 이와 유사하게 부정이 각각 73.2%(알지 못함), 70.9%(만족하지 않음)로 나타났다. 교육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만족도(4점 척도 2.15)에 비해 인지도(2.27)가 높았고, 시도 교육청의 정책에 대해서는 인지도(2.16)에 비해 만족도(2.23)가 높았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의 정책에 대한 만족도의 경우 행동주의 그룹/순응형·인식형/중도에서보다 구성주의 그룹(인본주의·진보주의)/실천형/진보에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의 66.7%인 구성주의 그룹의 낮은 정책 만족도는 앞서 학교(B)와 교육정책(C)에서 언급되었던 현재의 교육과 학교에 대한 높은 부정적 감정, 인성교육의 미실시와 시대 변화 및 미래 요구의 교육과정 미반영 에 대한 불만족, 9개 교육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강한 동의, 사교육 부담에 따른 4가지 현상에 대한 강한 동의, 학교에서 디지털 기기 사용의 ‘제한’ 입장 등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다.
시도 교육감 선거와 관련하여 국민의 71.2%는 정당 참여를 배제하는 현행 선거 방식을 선호했고, 국민의 63.4%는 선거의 개선(러닝메이트)보다는 현재의 직선제를 선호하고 있었다. 교육부의 부교육감 임명과 관련하여 찬성이 54.6%였고 반대가 45.4%였다. 제주, 전북, 대구, 부산에서는 교육부의 부교육감 임명에 대해 반대 비율이 더 높았다. 교사의 정당 가입 허용과 관련하여 찬성이 45.4%였고 반대가 54.6%였다. 광주, 제주, 인천, 세종에서는 찬성 비율이 더 높았고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반대 비율이 더 높았다. 교육철학 그룹에서는 사회혁신주의에서 찬성 비율(49.5%)이 가장 높았고 본질주의에서 반대 비율(57.4%)이 가장 높았다. 정치정향 그룹에서는 찬성 비율이 진보 48.8%, 중도 46.7%, 보수 40.6%로 나타났다. 변화태도 그 룹에서는 찬성 비율이 변화형 51%, 실천형 45.7%, 인식형 45.5%, 순응형 35.4%로 나타났다.
교육여론조사로 국민의 생각과 감정을 온전히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민의 의식에 '변화'와 '인성'이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나아가 국민은 행동주의와 본질주의가 아니라 구성주의라는 세련된 교육철학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인본주의, 진보주의, 사회변혁주의의 합(34.3+21.4+11=66.7%)으로서 구성주의가 현재 국민의 교육철학이다.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행동주의와 본질주의에 의해 작동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은 학교와 교육에 대해 부정적 감정과 비판적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변화에 대한 태도의 관점에서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교육을 변화시키고 싶은 변화형과 실천형의 합(42.9+20.2=63.2%)이 국민의 절반을 넘는다. 새 정부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버린 '교육기본법'부터 개정하여 학교 현장이 구성주의에 의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가 즐겁게 체험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좋은 인성을 지닌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필진 주요 이력
▷독일 뮌헨대학교(LMU) 정치학 박사 ▷미국 UC 샌디에이고/일본 오사카대학(OU) 객원연구원 ▷경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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