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호의 개념시선] 모르시나요?…청소년 스마트폰 사용의 비극적 아이러니

  • 외로움ㆍ스트레스ㆍ우울증 …청소년 뇌구조가 바뀐다

장준호 경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장준호 경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칸트(Immanuel Kant)는 <계몽이란 무엇인가>(1784)에서 이렇게 말했다.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숙은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는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다.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는 청소년의 스마트폰 소지·사용에도 적용된다. 부모와 교사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부모님,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을 용기를 가지기 바랍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쥐는 순간부터 자녀는 미성숙한 상태로 살아갑니다. 끝없는 알림과 AI의 지시에 사로잡혀 자신의 이성으로 판단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선생님, 학교를 스마트폰 없는 공간으로 만드는 용기를 가지기 바랍니다. 학생은 스마트폰으로 인해 학교에서 친구를 사귈 기회와 학습에 필요한 집중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자녀는 이렇게 우긴다. “스마트폰은 편리하고 유익해요. 다른 애들도 다 있어요. 스마트폰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왕따가 된단 말이에요.” 자녀가 왕따가 되길 바라는 부모가 있을까?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어린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사 주고 만다. 하지만 그로부터 가정의 풍경은 싹 바뀐다. 자녀는 스마트폰에 딱 붙어 살아가는 좀비가 된다. 딸은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살아가고, 아들은 유튜브와 게임에 빠져든다. 시력은 나빠지고, 독서는 언감생심이다. 자녀의 자아는 타자를 고려하지 않는 ‘나’로 캡슐화된다. 자신을 미화시키는 나르시시즘도 강화된다. 급기야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가 사라져버리고, 자녀의 SNS에서 새로운 왕따가 일어난다. 현실 세계에서 왕따가 되지 않도록 자녀에게 ‘고가’의 스마트폰을 사주었는데, 그 자녀가 스마트폰으로 매개된 사이버 공간에서 왕따를 당하는 ‘비극적 아이러니’가 생기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비극적 아이러니’는 사이버 폭력에 그치지 않는다. 자녀의 학업 성적과 정신 건강에서도 일어난다. 2024년 홍은경의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 시간에 따른 학업 성적과 정신건강상태 비교> 연구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중·고등학생은 주말 하루당 평균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6시간 43분이었고, 주중은 4시간 39분이었다. 조사 대상자는 2022년 제18차 청소년 건강형태 온라인 조사의 원자료에 포함된 5만1850명(남학생 51.6%, 여학생 48.4%, 중학생 51.6%, 고등학생 48.4%)이었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주중 5.85시간(521분) 이상이고 주말 8.68시간(351분) 이상인 스마트폰 과의존 그룹은 조사 대상자 중 25.8%(잠재적 위험군 22.8%, 고위험군 3%)로 나타났다. 이러한 과의존 그룹은 스마트폰 과잉 사용자로서 일반 사용자에 비해 학업 성적이 더 낮았으며, 불안 장애가 더 있었고 외로움, 스트레스, 우울감의 강도가 더 높았으며, 자살에 대해 생각하는 빈도도 더 높았다. 이는 스마트폰으로 인한 ‘비극적 아이러니’가 청소년의 학업 성적과 정신건강에서도 일어난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나아가 지난 5월 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24년에 정신건강의학과 관련 질환으로 의원을 찾은 18세 미만 아동 환자가 27만625명이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환자가 매년 19.4% 증가했다. 2020년과 비교하면 2024년에 7~12세 연령대에서는 남자 아동 환자는 2.3배, 여자 아동 환자는 2.4배 증가했고, 13~18세 연령대에서는 남자 환자가 1.9배, 여자 환자가 2.1배 증가했다. 특히 초등학생 연령대(7~12세)에서 우울증 환자가 급증한 것은 스마트폰 소지에 따른 과다 사용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초등학생 연령대에서 스마트폰 소지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예컨대 여성가족부가 2022년 5월에 발표한 <2022년 청소년 인터넷·스마트폰 이용습관 진단조사>에 따르면 2022년에 이미 초등학교 4학년 학생 중 96.5%가 스마트폰을 소지하고 있었고, 조사 대상이었던 초등학교 4학년 학생 44만6128명 중 16%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었다.
 
불안은 현실 세계에서 살아가는 데 건강한 반응이지만 과도하면 장애가 된다. 불안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지각될 때 마음에서 울리는 경보 벨과 같다. 그 벨이 쉽게 자주 울리면 불안 장애가 된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스마트폰으로 인스타그램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아이는 수많은 피상적 친구를 사귄다. 그들에게서 ‘좋아요’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마다,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는 순간마다 아이의 삶은 초라해진다. 그들과 비교하면서 시기심으로 자신을 끝없이 미화하지만 ‘본래의 자기’와 ‘꾸며 낸 자기’의 커다란 간극 앞에서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소외되는 것이 두려워 인스타그램을 떠나지도 못한다. 그물에 걸린 물고기 신세와 같다. 결국 아이의 마음에 불안의 경보 벨이 자주 쉽게 울리는 장애가 생기고 슬픔과 공허함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일상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우울증까지 겪게 된다.

자신의 이성적 힘으로 “과감히 알려고 하라(Sapere aude)!”고 칸트가 말했듯이 부모는 스마트폰의 과다 사용으로 자녀가 겪게 되는 불안과 우울 외에도 ‘무엇이 근본적인 문제인지’ 알아봐야 한다. 작년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불안 세대> 저자인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 뉴욕대학교 교수는 우선 과거의 놀이 기반 아동기가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로 전환되었다고 진단한다. 그는 그러한 전환의 근본적인 배경으로 부모가 자초한 '현실 세계에서의 과잉 보호와 가상 세계에서의 과소 보호'를 들고 있다. 즉 부모가 1990년대 이후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자녀가 밖에서 놀지 못하도록 과보호하는 동시에 스마트폰를 사주고 그 해악으로부터는 보호하지 않음으로써 자녀의 삶에 ‘비극적 아이러니’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하이트 교수에 따르면 아이는 최소한 14세까지는 '자유롭게 놀면서(free playing)' 친구와 친밀하게 지내며 위험에 대처하는 힘을 길러야 하고, 다른 사람과 대면으로 상호작용하며 서로 일치시키는 '조율(attunement)'의 경험도 해야 하며, 건강한 롤 모델을 따라 배우며 성숙하게 되는 '사회적 학습(social learning)' 기회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부모의 안전지상주의와 스마트폰이 경험 차단제로 작용하며 이러한 것이 상실된다. 스마트폰에 딱 붙어 살아가는 아이는 자유로운 놀이, 조율, 사회적 학습이 결핍되고, 이는 사회적 관계의 박탈로 이어진다. 나아가 수면을 잃어버리고 주의(attention)가 분산되는 고통을 겪으며 도박 중독에서나 나타나는 도파민에 상시적으로 젖어 있는 상태에까지 처하게 된다. 청소년의 스마트폰 사용에는 사회적 박탈, 수면 박탈, 주의 분산, 중독이라는 ‘비극적 아이러니’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선 '사회적 박탈'에 대해 알아보자. 스마트폰을 과다하게 사용하는 아이는 현실에서 친밀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기 어렵다. 아이가 혼자 자기 방에서 타자의 콘텐츠를 끝없이 소비하거나, 낯선 사람과 계속해서 게임을 하거나, 자기가 올리는 게시물에 다른 이의 ‘좋아요’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낸다고 상상해보자. 아이는 현실에서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우정을 길러 낼 기회를 잃어버린다. 아이가 친구와 대화를 하더라도 스마트폰이 그의 주의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모든 알림 진동에 반응하며 대화가 중단된다. 친구는 자신의 존재가 알림 진동보다 못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고, 아이와 친구는 친밀한 상호 작용을 하지 못한다. 스마트폰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과 연결될 수도 있지만 주변 사람과의 친밀한 연결은 차단되고 만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수면 박탈'은 아이의 학업 능력과 정신 건강에 더 심각한 해악을 끼친다.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보며 잠을 적게 자는 청소년은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고, 이는 학업 능력과 성적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 반응 시간, 의사 결정, 운동 능력이 감소하여 사고 위험도 높아지고, 짜증과 불안 수준이 높아지면 대인 관계에도 문제가 생긴다. 스마트폰은 아이의 집중력에도 문제를 일으킨다. 아이의 스마트폰에서 알림 신호가 1분마다 진동한다고 상상해보자. 아이는 '주의 분산'을 겪을 수밖에 없다. 주의란 한 가지에 집중하는 정신적 힘이다. 자꾸 알림에 반응하며 옆길로 새면 아이는 산만해지고 멍해진다. 아이는 옆길로 새지 않고 자신을 통제하며 스스로 계획한 것을 실행하는 '집행 능력'을 길러야 하는데 스마트폰이 이를 방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스마트폰 없는 학교’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러한 사회적 박탈, 수면 박탈, 주의 분산은 '중독'에 의해 악화된다. 중독은 기업의 상업주의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예컨대 인스타그램은 광고 수입을 위해 사용자가 최대한 오래 머물도록 플랫폼을 설계한다. 여기에는 행동주의 심리학자 스키너(B. F. Skinner)의 조작적 조건 형성(자극, 행동, 보상)에 ‘투자’가 추가된 '훅 모형(Hooked Model)'이 사용된다. 외부 자극(알림)→행동(앱 확인)→가변적 보상(좋아요 칭찬)→투자(자기 게시물 업로드 및 다른 사용자와 연결)→내부 자극(자기 게시물에 대한 확인 충동)→행동(상시적 앱 확인)→가변적 보상 등으로 이어지는 훅 모델의 갈고리에 청소년은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보상은 조절되어 가끔씩 주어지기 때문에 청소년의 뇌는 도파민에 젖어 항상 보상을 갈망하게 된다. 하이트 교수는 “스마트폰은 인터넷에 연결된 세대에게 디지털 도파민을 하루 24시간씩 일주일 내내 공급하는 현대판 피하 주사기”라고 비유한 렘키(Anna Lemke)의 입장에 동의한다.
 
아이의 뇌가 도파민에 젖어 사회적 박탈, 수면 박탈, 주의 분산이 악화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스마트폰에 붙어사는 아이의 영혼(의식과 태도)에 병이 드는 것이 더 심각하다. 스마트폰의 사이버 공간에서는 누구도 용서하지 않는다. 자기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자신이 심판받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남을 공격·심판한다. 나아가 ‘필터 버블(Filter Bubble)’로 인해, 즉 유튜브의 알고리즘으로 필터링된 정보만 반복적으로 보게 되면서 확증 편향이 생기기도 한다. 성인 유튜버는 극단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으로 돈 벌기 꼭두각시 놀음에 몰두하는데, 아이는 그러한 영상을 아무 생각 없이 소비하고, 그것으로 인해 아이의 의식과 가치에는 양극화가 생겨난다.
 
이러한 ‘비극적 아이러니’는 우리가 자초한 것이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면 되돌아갈 용기를 내야 한다. 모두가 함께할 사회운동도 요청된다. 각자는 힘이 없지만 집단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이트 교수도 학교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스마트폰 없는 학교'와 '중학교까지 스마트폰 사주지 않기(Wait Until 8th)' 운동을 지지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우리나라 청소년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스마트폰을 소지하며 그 사용도 과도하다. 정신질환의 증가는 물론 사회성, 문해력, 자기통제력의 결핍도 관찰된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4월에는 고3 학생이 스마트폰 게임을 제지하는 교사를 폭행한 사건까지 일어났다. 12일 발표된 한국교권단체총연합회 설문조사(전국 교원 5591명 대상)에 따르면 스마트폰으로 인해 상해와 폭행까지 당한 교사가 6.2%였고, 학생의 저항, 언쟁, 폭언을 당한 교원은 34.1%나 되었으며, 교육활동 중에 학생의 스마트폰 알림 등으로 방해를 겪은 교원은 66.5%에 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10일 ‘스마트폰 없는 학교’와 ‘자녀에게 스마트폰 사주기 않기’를 지향하는 <청소년 스마트폰 프리> "스프운동"이 경기도에서 시작되었다. 모두가 칸트가 말한 ‘용기’를 가질 시간이다.




필진 주요 이력

▶독일 뮌헨대학교(LMU) 정치학 박사 ▶미국 UC 샌디에이고/일본 오사카대학(OU) 객원연구원
 ▶경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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