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목 칼럼] '카공족' '대화족' …미래 카페의 풍경은

  • 카페의 진화와 공간 갈등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영어학과 교수]

요즘 전국 곳곳에 들어선 카페에 들어서면, 대체로 과거와는 달리 정적이 느껴지는 곳이 많다. 대학가나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곳은 그런 분위기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카페는 본래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공간인데, 테이블마다 노트북과 책들이 펼쳐져 있다. 손님들은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낀 채, 한마디 말도 없이 화면을 응시한다. 마치 도서관과 같은 분위기이다. 이른바 ‘카공족’의 풍경이다. 이들은 조용하고 무료 와이파이가 제공되는 카페 공간을 개인의 공부방으로 활용하며, 커피 한잔으로 몇 시간이고 자리를 차지한다. 대화를 나누려고 카페에 들른 손님들은 소곤거리며 눈치를 본다. 웃음 한번, 전화 통화 한번에도 곁눈질이 따르는 경우도 있다. 융복합의 시대이다 보니, 카페, 도서관과 독서실의 조합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스타벅스나 다른 카페에서 공부하거나 업무를 보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베트남도 이제 카페에서 점차 이런 모습이 늘어나고 있다. 노트북과 책을 펼쳐놓고 몇 시간씩 검색하거나 공부하거나 책을 보는 사람들,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카페 분위기, 그리고 카페를 제3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문화가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소음이라면 누구나가 싫어하겠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음 하나가 있다. 바로 ‘백색소음’인데, 일반 소음과는 달리 불규칙한 청각 패턴이 없고 음폭이 넓어서 공해가 되지 않는 소음이다. ‘백색소음’을 백색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빛의 백색광과 소리의 주파수 특성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카페의 배경소음이 일종의 ‘백색소음’으로 오히려 집중력과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도 한다. 그래서 카페의 여기저기 테이블에서는 노트북과 책으로 공부하는 사람,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 요즘의 카페는 그 정체가 실로 다중적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공간 점유’라는 행위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의 일환이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말하지 않아도 몸짓, 표정, 거리 등을 통해 타인과 의사소통한다. 이 가운데 공간에 대한 인식은 비언어적 메시지의 핵심 요소이다. 이를 ‘공간학(proxemics)’이라고 부른다. 사회심리학자인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이 정의한 개념으로,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공간을 설정하고, 그 공간이 침범당하면 불편함이나 방어 반응을 보인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개는 배설물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 고양이는 특정 장소에 털과 냄새를 묻힌다. 새는 둥지를 중심으로 일정반경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고, 침입이 감지되면 소리를 내거나 날개를 퍼덕이면서 경고한다. 인간도 이와 유사하게, 테이블 위에 노트북과 책을 펼쳐놓음으로써 자신의 영역이라는 메시지를 비언어적으로 보낸다. 말로 요구하지 않아도 행동 자체가 영역의 표시임과 동시에 선언이 된다. 며칠 전 뉴스에서 들으니, 카페에 모니터 거치대와 키보드, 그리고 독서실에서 봄 직한, 얼굴이 가려질 만한 높이의 칸막이를 설치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이 역시 자신의 공간을 명확한 경계로 구분 지어 영역을 확보하려는 인간 본능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카페는 회전율과 공간 효율성에 민감한 구조이다. 점포 임대료와 인건비가 높은 현실 속에서 한 자리를 오래 점유하는 손님은 단순한 이용자가 아니라, 기회비용을 발생시키는 존재가 된다. 예를 들어, 커피 한 잔의 가격이 4000원이라고 하자. 이 매출을 위한 커피 원재료, 컵, 소모품 등 부대비용을 포함한 원가는 커피값의 3분의 1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커피 한 잔의 원가가 약 1300원이라고 가정하면, 한 잔당 이익은 약 2700원 정도이다. 그런데 카페를 운영하려면 임대료, 전기요금, 직원 월급과 같은 고정비도 들어간다. 이런 고정비를 월 영업일 수, 좌석 수, 일일 영업시간을 곱해서 나온 숫자로 나누면, 좌석 1개의 시간당 고정비가 나온다. 가령, 좌석 1개의 시간당 고정비가 1500원이라면, 한 잔당 이익 2700원을 1500원으로 나눈 값은 약 1.8시간이다. 물론 카페의 규모에 따라 이 수치는 달라질 수 있지만, 이 시간의 의미는 수익이 고정비를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이다. 쉽게 말해, 카페 주인이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손님이 커피 한 잔 주문하고 앉아 있을 수 있는 마지노선이 2시간이 조금 덜 되는 시간이다. 손님이 그 이상 머물면, 카페 주인은 손해를 본다. 손님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카페 주인의 입장도 한번 생각해 볼 만하다. 감정이 아니라 수치가 말해 준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하고 싶은 손님들을 위축시킨다는 점이다. 옛날식 다방이나 커피숍을 떠올려 보면, 이곳들은 분명 대화와 만남의 장소이다. 메모지에 신청곡을 적어 음악부스에 전하면 디제이(DJ)가 그 신청곡을 차례대로 들려주던 시절에는, 여기서 책을 보는 사람은 아마 소수가 아니었을까? 카페에 카공족이 늘어나다 보니, 카공족과 대화족의 균형이 깨진다. 그래서 때로는 카페 공간이 침묵을 강요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카공족과 대화족의 갈등(!)은 당분간이다.
 
다방에서 커피숍에서 카페로 변신한 오늘날의 카페는 이제 일상적 소통 공간, 학습공간, 그리고 개성과 취향을 표현하는 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빠른 트렌드 변화 속도와 디자인 감각, 첨단 기술 결합이 어우러져, 카페는 새로운 문화의 장이 되어 간다. 바로 지금의 카공족과 대화족의 갈등은 과도기적 현상이다. 앞서 나가는 일부 카페는 카공족 전용 좌석과 같은 공간의 분리, 시간제 과금제, 사전예약제, AI 좌석관리시스템 등을 도입하며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조용한 집중 공간과 소통 공간의 병행운영 등을 통해 ‘카공족’과 ‘대화족’의 갈등을 줄이고 모두가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도서관은 공부하는 곳, 카페는 커피와 음료를 마시는 곳, 업무는 사무실에서’ 라는 엄격한 공간의 구분이 더 이상 없다. 모든 것이 융복합이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의 카페는 전통적인 커피 소비공간을 넘어, 기술과 문화, 그리고 맞춤형 경험이 결합된 융복합 공간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제는 피시방도 카페 문을 두드린다. 피시방이 카페 형태로 진화하거나, 카페가 피시방 기능을 흡수한 형태의 공간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의 카페 문화는 피시방과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전통적 피시방의 기능인 게임, 영상 시청뿐 아니라 카페 특유의 편안함과 커피 문화가 결합하면서, ‘카페 & 피시방’이라는 융복합 공간이 등장했다. 이제 카페가 메타버스, AI 서비스와 결합한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될진대, 카공족과 대화족의 갈등, 역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고, 카페 주인들은 커피와 테이블 제공 이상의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힘쓰기도, 트렌드를 따라가기도 바쁠 듯하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한다.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 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 영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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