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춘구 언론인]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초인데도 광주, 대전에서 타운홀미팅(Townhall Meeting)을 통해 국민과 직접 대화를 하며 소통하고, 지역의 장기 민원사업 해결에 나서고 있다. 국정 최고 책임자가 타운홀미팅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을 상징하는 것이어서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타운홀미팅은 12.3.비상계엄 이후 4.4. 탄핵과 6.3. 대통령 선출 과정 등을 통해 6월 4일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 명칭을 국민주권정부로 명명했다. 이 같은 관점에서 광주, 대전에서 열린 타운홀미팅을 여러 각도에서 살펴본다. 또한 미국 타운홀 미팅의 본래 역사와 핵심 내용, 미국 민주주의 발달에 기여한 점 등을 알아보고, 우리식 민주주의 전통과도 비교하고자 한다.
이재명 대통령, 광주·대전에서 타운홀미팅
최고통치자로서 국민주권 이념을 실행
이재명 대통령은 6월 25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광주시민·전남도민 타운홀 미팅-호남의 마음을 듣다’라는 제목으로 현장 소통행정을 벌였다. 여기에는 강기정 광주시장, 김영록 전남도지사, 김산 무안군수, 지역민 등 백여 명이 참석했다. 취임한 지 3주 만에 직접 지역으로 찾아가 현안 해결을 위해 주민과 소통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서는 ‘광주·무안 공항이전 문제’ 등을 두고 여러 의견이 개진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페이스북을 통해 “군 공항 이전 문제는 국가가 나서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광주시, 전라남도, 무안군, 그리고 기재부와 국토부가 참여하는 6자 TF를 구성해 이 사안을 주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타운홀미팅을 통해 지방자치단체 간의 갈등을 대통령이 직접 해결하겠다고 한 점에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발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
이재명 대통령은 7월 4일 대전 컨벤션센터에서 ‘충청의 마음을 듣다’라는 제목의 타운홀미팅 두 번째 행사를 가졌다. 행사장에는 대통령 연단을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 책상 하나만 두고서 선착순으로 입장한 3백여 명의 시민과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 앉았다. 행사 중에 민원성 발언이 계속되자 이재명 대통령은 비교적 단호한 어조로 “개인 민원을 여기서 해야지' 이래 버리면 끝이 없다.”며 “빨리 진행하자.”고 당부하기도 했다. 여기에서는 소상공인 등의 악성 채무 해소 방안과 과학기술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들이 개진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할 말은 해 보고 공통의 과제에 대해서 의견을 내고 상대방 얘기를 듣고 타당한 면엔 양보하고 후퇴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말로 행사를 마쳤다. 이 같은 탈권위주의적 태도가 유지된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크게 발전할 것이다.
타운홀미팅,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유래
주민이 마을공동체 주요 사항 직접 결정
타운홀미팅은 17세기 식민지 시대 미국 대륙의 뉴잉글랜드에서 시작됐다. 식민지 주민이 마을공회당에 모여 토론하고 합의해서 마을공동체의 주요 사항을 결정하는 데서 유래했다. 타운홀미팅은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직접 민주주의 방식에 따라 운영하는 것이다. 이 모형은 1830년대 잭슨 민주주의(반엘리트, 반기득권주의) 이후 더 확산되며, 대표민주주의 내 시민참여를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의 정치철학가이자 역사학자인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1830년대 초 미국을 여행하고 관찰한 뒤 쓴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에서 타운홀미팅을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 기반으로 매우 높게 평가했다.
미국의 타운홀미팅의 특징을 살피면 먼저 타운홀미팅은 시민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공개토론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전에 정해진 주제도 있으나, 자유로운 질의·응답이 가능하다. 또한 정당 소속이나 사회적 계급을 초월해 ‘평등한 발언의 장’으로 기능한다. 현대 미국에서는 정치인들이 선거 유세와 공약 점검의 수단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타운홀미팅은 주권형성의 제1차적 단계로서 마을공동체를 지속가능하게 하며, 주와 연방정부를 형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원동력이다. 특정 이익집단이 아닌 지역민의 직접적 의사 표현의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grassroots democracy)를 구현한다. 단순한 투표를 넘어선 정치적 숙의(deliberation)의 장으로서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한다. 특히 지도자(정치적 대리인)는 직접 국민의 질문에 답하며 설명할 책임(accountability)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적 책임성을 제고하고 민주주의 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
계·두레·향약·집강소, 한국 민주주의 DNA
공론·자치 전통, '우리 옷'의 민주주의 존재
타운홀미팅은 식민지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에서 비롯된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뉴잉글랜드에 타운홀미팅의 전통이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마을공동체를 지키고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계와 두레, 향약, 집강소 등 전통적 민주주의 DNA가 있다. 계는 오늘에도 살아서 기능을 하듯이 공동체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계는 경제생활적 측면, 두레는 노동생산적 측면, 향약은 대동세상의 구현, 그리고 집강소는 동학혁명의 이념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민회로서 전통을 이어 온 것이다. 향약의 경우 공동체 의사결정에 불참하거나 의사결정을 따르지 않을 경우 마을에서 추방령을 내리고, 회의 진행을 방해할 경우 곤장에 처하기도 했다.
우리의 전통은 공동체 유대와 조화, 윤리규범 준수를 중심가치로 내세운다. 타운홀미팅은 자유발언과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며, 공개적 정치참여를 지향한다. 우리의 전통은 연중 정기적으로 회의를 열어 상호부조와 비판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타운홀미팅은 비정기적이며, 공공정책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우리는 마을총회와 주민참여예산, 주민자치회 등으로 계승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고 본다. 타운홀미팅도 시민의회 형식으로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에는 공론과 자치의 전통이 살아있는 '우리 옷'의 민주주의가 이미 존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타운홀미팅은 이 전통을 현대적으로 살리는 시도로 평가할만하다. 좀 더 한국적 역사전통, 의식구조, 집단 문화를 살릴 여지가 크다고 본다.
국정 최고 책임자, 국민과 직접 대화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상징적 사건
이재명 대통령의 타운홀미팅은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 대화한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국민주권정부"라는 정부 슬로건과 형식의 일치성을 확보한다고 볼 수 있다. 지역불균형이나 지방자치단체간의 갈등 등 지역 현안 해결과 정책소통을 병행하는 실용적 접근이다. 많은 국민은 권위주의적 통치를 종식시키며 소외지역 시민과 만나거나 현장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실사구시, 실용주의를 "실감할 수 있는 정치"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일정의 비연속성, 사전 질문 유도 등으로 "진짜 소통이냐"는 비판도 존재한다. 따라서 질문 사전조율, ‘칭송형’ 진행자 배제의 필요성 제기 등 정치적 형식주의를 탈피하자는 비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타운홀미팅이 정권에 따라 사라지지 않도록, 국회·지자체 등도 참여하는 공론제도화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단순 민원 청취에서 정책 대안 토론으로 확장하고, 숙의 민주주의적 요소를 강화하면 본래 취지를 더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미국식 민주주의와 한국의 전통이 만나는 길목에서 한국형 타운홀미팅의 길을 찾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타운홀미팅은 형식적으로는 미국 민주주의의 수입이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국민참여와 민생 중심 행보라는 점에서 한국적 창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민주주의 교육을 실시하며, 민주주의를 보다 더 발전시키자는 염원도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주의는 우리의 옷을 입어야 한다.’ 한국형 민주주의로 진화시키기 위해서는 ‘계’와 ‘두레’ 등의 공동체적 정체성을 반영한 정기적 주민공론회를 도입하기를 바란다. 특히 타운홀미팅을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숙의적 플랫폼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대통령만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이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제도화하기를 제안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참여 구조를 마련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를 위해 한국주민자치학회(회장 전상직), 향약연구원(원장 박경하) 등 연구단체 기관과의 협업이 절실하다.
요컨대 타운홀미팅은 미국식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이지만, 그 핵심은 형식이 아닌 정신, 즉 주권자인 시민과의 직접 대화, 경청, 책임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그 정신을 담아 타운홀미팅을 전개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한국식 민주주의의 진보된 표현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것을 지속가능하게 만들고, 한국 고유의 공동체 전통과 결합하여, ‘우리 옷을 입는 한국적 민주주의’로 승화시키는 일이다.
이춘구 필자 주요 약력
△전 KBS 보도본부 기자△국민연금공단 감사△전 한국감사협회 부회장△전 한러대화(KRD) 언론사회분과위원회 위원△전 전라북도국제교류센터 전문 자문위원△전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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