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볕더위가 이어지면서 택배업계가 배송기사 건강권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고 휴식시간을 의무화하는 한편 작업중지권을 부여해 기사들의 안전 확보를 우선에 두겠다는 방침이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CJ대한통운·한진·쿠팡로직스 등 주요 택배사는 혹서기 대응 차원에서 작업장 환경 개선과 근무시간 조정, 휴식시간 강화 등 조치를 내놓고 있다. 이는 이달 들어 폭염 속 택배기사와 대리점 소장 등 3명이 연이어 숨진 데 따른 대응이다.
실제 폭염은 기상청 수치로도 확인된다. 지난 8일 서울 기온은 37.8도까지 치솟아 7월 기준으로는 2018년(38.3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2018년은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만 48명이 나왔을 정도로 최악의 폭염이 이어졌던 해다. 아직 월말까지 절반 가까이 남아 있는 만큼 올해 더위가 당시 기온을 뛰어넘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같은 폭염에 대응해 CJ대한통운은 오는 8월 14~15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하고, 배송을 전면 중단해 기사들의 휴식을 보장하기로 했다. 모든 작업장에서 체감온도와 관계없이 '1시간 근무 후 10분 휴식' 또는 '2시간 근무 후 20분 휴식' 원칙을 적용한다. 택배기사에게는 자율적인 작업중지권을 부여하고, 이로 인한 배송 지연에는 책임을 묻지 않기로 했다. 고객사에는 배송 지연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공문을 발송할 예정이다.
쿠팡은 소속 배송기사들이 여름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물류자회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대체 인력을 투입해 주 4~5일 근무가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반기마다 최소 1회 이상 쉴 수 있는 의무 휴무제를 운영 중이다. 휴가 사용률이 높은 영업점에는 포상도 이뤄질 예정이다.
한진도 전국 단위의 폭염 대응 체계를 가동 중이다. 대전 메가허브터미널에는 냉방기를 증설하고, 작업장 온도가 33도를 초과할 경우 '50분 근무 후 10분 휴식' 기준을 적용한다. 추가 허브터미널도 가동해 오전 시간대 배송을 확대하고, 가장 더운 시간대를 피해 탄력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했다.
한진 측은 "전국적인 폭염으로 일부 지역에서 배송이 지연될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며 "택배기사와 관련 종사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면서 고객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같은 자율 조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지난 11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폭염 속 3명의 택배노동자가 사망했지만 정부와 택배사는 여전히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은 "택배노동자는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로 정부 규제개혁위원회의 폭염 대책에서 제외되고 있다"며 "체감온도 33도 이상 시 2시간 이내 20분 휴식 보장 조항도 적용받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서브터미널 내 냉방장치 설치와 인력 충원을 통해 주 7일 배송 참여를 자율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2020년 고용노동부와 택배업계는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지정해 기사들의 휴식을 보장하기로 한 바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