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중국학]
다시 점화한 트럼프 발 관세 공세에 전 세계가 휘청이고 있다. 지난 4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와 제조업 부활을 위해 세계 각국에 기존의 국제무역 관례와 비교 우위를 무시하는 폭력적인 상호관세 부과를 발표했었다. 이미 전 세계를 대상으로 10%의 보편관세가 부과된 가운데 ‘상호’라는 단어가 무색한 일방적 관세 부과였다. 그러나 세계적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 시장이 불안해지고 주식시장이 요동치자 7월 9일을 시한으로 한 90일간 유예 조치에 나섰고, 많은 관세 협상이 체결될 것이라고 공언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무역 협상을 타결한 나라는 영국과 베트남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과의 협상 기한도 8월 12일로 연장됐다.
더욱이 압박을 최대화해 상대방을 굴복시키려는 트럼프식 ‘거래의 기술’은 오히려 국내외적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장 혼란을 우려해 관세를 철회하거나 연기하는 패턴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항상 뒤로 물러난다는 트럼프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으며, 동시에 과연 제대로 된 관세 정책이 있기는 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이 틈에 중국과 유럽연합(EU)은 물론 일본까지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한 반발을 노골화하고 있으며, 국제적 지도국 미국의 국가 신뢰도마저 흔들리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지난 7일 한국에 25%, 일본 등 14개국에 25∼40%의 국가별 상호관세율을 적시한 관세 서한을 발송했다. 9일에는 필리핀 브라질 등 7개국에 서한을 보냈고, 12일에는 유럽연합과 멕시코를 대상으로 각각 30%의 상호관세를 통보했다. 상호관세 발효 시점을 모두 8월 1일로 못 박으면서, 더이상 연장은 없을 것임도 강조했다. 여기에 대부분의 무역 상대국에 15% 또는 20%의 관세를 일괄적으로 부과할 계획임도 밝혔다. 자신의 감세 및 복지 삭감 공약을 담은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이 의회 문턱을 넘자 관세 밀어붙이기가 더욱 힘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미국의 6월 관세 수입이 작년 동기 대비 4배 가까이 증가한 총액 기준 272억 달러를 기록했고 미국은 270억 달러의 월간 재정 흑자를 기록했다. 물론 이는 본격적인 관세 발효 이전에 원자재 및 재고를 확보하려는 미국 기업의 수입이 늘어나면서 일시적으로 생긴 현상일 가능성이 크지만, 이는 트럼프 관세 정책의 성과로 포장됐다. 여기에 이미 불확실성에 내성이 생긴 국채 시장이나 주식시장도 크게 동요하지 않자, 트럼프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국가별 관세 불확실성의 극대화를 통해 관세 효과의 확실성을 전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 상호관세가 국가별로 부과한 품목별 관세와는 별개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한국은 상당한 위기를 맞고 있다. 새 정부 출범 후 양국 정상회담 일정도 잡히고 있지 않은 가운데, '미국 우선주의'라는 대외정책 기조는 미국의 경제적, 안보적 이익 추구에 초점이 있으며, 한국에 대한 배려보다는 부담 전가 또는 협상 압박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한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관세·무역과 무관한 사안인 방위비 분담금과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사업 등을 올려놓고 ‘원스톱 쇼핑(one-stop shopping)’을 강조한다. 또 이를 '아름답고 효율적'이라면서 미군 방위비 분담금과 무역 협상을 ‘패키지’로 연계해 일괄적으로 논의하는 ‘한 개의 패키지’(one package)가 합리적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한국이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는 무기로 강조하는 미국의 전략이익이 가미된 주한 미군 역할이나 한국이 미국의 제조업 부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제조업 협력 국가라는 주장도 통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미국 안보 싱크탱크인 ‘국방 우선순위’(Defense Priorities) 보고서가 언급한 동아시아에서의 미군 역할은 중국 견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계획적인지는 모르겠지만 2만 8천 명 수준의 주한미군 규모를 계속 4만 5천 명이라고 얘기하고 있으며, 주한 미군 주둔비 분담금도 100억 불을 요구하고 있다. 급기야 한국의 전체 방위비도 GDP의 5%까지 늘려야 한다는 무리한 요구까지 하고 있다.
이는 한국 새 정부의 대미 협상을 더욱 어렵게 한다. 한·미 관계에서 관세나 주한 미군 문제까지 파열음이 생기면 국가 전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후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 핵심은 미국이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며, 이는 경제·금융뿐 아니라 안보 등 모든 교류·협력 분야를 포괄하는 종합적인 손익관계를 의미한다. 더욱이 미국은 필요에 따라 최혜국 대우(MFN) 원칙을 적용하기도 하고,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의한 특혜 관세율 및 미국 무역법 232조에 따른 특정 품목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와 함께 상호관세까지 매우 다층적인 방법으로 관세를 부과하므로 사안별로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안보가 문제다. 이 대통령이 정치·외교에선 ‘감정’을 배제해야 하며 대북 관계 개선도 한·미 공조가 우선이라고 했지만, 미국의 의구심은 여전히 큰 것으로 보인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내 대표적 대중국 강경파인 콜비 차관은 한국이 북한 위협에 스스로 대응하고 주한미군을 중국 견제에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면서 주한 미군 감축설도 흘리고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 병력 감축을 제한한 내년도 미 국방수권법(NDAA)이 9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했듯이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한 미군이 한반도 고정 병력이 아닌, 미국의 글로벌 안보 전략에 따른 유연한 '전략자산'으로 기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은 안보·통상 전반에 걸친 복합 협상이다. 특히 미국은 아·태지역 동맹국인 한국 및 일본과의 협상을 타국 협상의 기준점으로 삼으려 한다. 물론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도 꼭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점화한 관세 폭탄에 일본과 캐나다, 멕시코 등 동맹국들도 반발하고, 브라질은 ‘결사 항전’을 외치고 나섰다. 베트남도 11%대 협상 타결을 20%로 일방적으로 뒤집었다면서 미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입장과 ‘상호주의’에 기반한 관세 부과 방침의 완화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도 미국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끌려갈 수는 없지만 ‘전시작전권’ 회수나 중국의 전승절 참석 요청을 지렛대로 쓰려는 대응은 불필요한 오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더 크다. 향후 북·미 관계 상황도 고려해야 하는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는 단순한 한·미 동맹 유지 여부를 넘어 동맹의 조건과 미래에 관한 질문을 동반하며, 한국의 미래 생존에 대한 합리적 구도 구축을 전제로 한다.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이성적인 판단이 절대 필요한 때다.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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