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교통공사가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피해자의 부모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항소심 판단이 나왔다.
1심에서 “예측 불가능한 범행”이라며 책임을 부인했던 법원이 항소심에서 “직장 내 안전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공사의 일부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사용자 책임의 경계와 스토킹 범죄 예방 의무에 대한 법원의 인식 변화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피해자 정보 유출과 직장 내 스토킹, 사용자 책임의 경계
2022년 9월, 서울교통공사 직원 전주환(34)은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같은 공사 직원이자 입사 동기였던 여성을 흉기로 살해했다. 전씨는 이전부터 피해자를 스토킹해 고소당했고, 사건 당시에는 재판 중이었으며, 직위 해제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사 내부 전산망에 접속해 피해자의 근무지 정보를 확인한 뒤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유족은 공사가 △전씨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를 소홀히 했고 △개인정보 접근을 차단하지 않았으며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총 10억여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공사는 이에 대해 “전주환의 단독 범행은 사용자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예외적 상황”이라며 책임이 없다고 맞섰다.
1심 재판부는 공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가해자가 피고의 시스템을 통해 피해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은 유감이지만, 범행 자체는 급작스럽고 예외적인 것으로 사용자에게 예견 가능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따라 유족 청구는 모두 기각됐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민사3-3부는 16일 항소심 선고에서 “공사는 직장 내 스토킹 위험에 대한 사전 대응과 정보 관리 체계를 갖췄어야 했다”며, 피해자의 부모에게 각 50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스토킹 고소와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이던 상황에서 가해자가 내부망을 통해 피해자 정보를 확인한 정황은 공사 측의 관리 책임 부재와 연관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리상 ‘예견 가능성’과 ‘주의 의무’ 확대 해석의 흐름
이번 판결은 사용자에게 과연 어느 수준까지의 ‘예견 가능성’과 ‘주의 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지를 다시 묻는 사례다. 1심은 “피해자가 살해될 것이라는 구체적 위험을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보았지만, 2심은 “전주환이 피해자를 스토킹해 고소당하고도 계속 같은 조직에 속해 있었으며, 내부망 접근도 통제되지 않았다”는 점을 중시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판단 변화가 직장 내 스토킹과 보복 범죄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 인식이 강화되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특히 ‘신당역 사건’은 범행 수단의 상당 부분이 ‘조직 내부 시스템’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조직이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의 접근을 차단했는지 여부가 판단의 핵심 쟁점이 됐다.
서울교통공사는 판결 내용을 검토한 뒤 상고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대법원 판단까지 이어질 경우, 스토킹 범죄와 직장 내 안전 의무의 법적 기준을 정립하는 중요한 선례가 될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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