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9월 3일 '중국 인민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전쟁 승리의 날' 80주년 행사를 앞두고 중국 본토에서는 난징대학살을 주제로 다룬 애국 영화 한 편이 흥행몰이 중이다. 지난 7월 25일 개봉한 영화 ‘난징사진관(南京照相館)’이다. 영화는 개봉 일주일 만에 8억 위안(약 1555억원)을 돌파하며 최고 30억 위안을 돌파할 것으로 극장가는 내다보고 있다.
영화 ‘고주일척(孤注一擲)'으로 이름을 알린 선아오(申奧)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류하오란(劉昊然), 왕촨쥔(王傳君), 가오예(高葉), 왕샤오(王驍) 등 베테랑 배우들이 출연했다.
영화는 1937년 중일전쟁 중 일본군이 중국 난징을 점령해 중국군 포로와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난징대학살을 배경으로 한다. 일본군의 만행을 피해 지샹(吉祥) 사진관으로 피신한 평범한 소시민이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았다.
주인공 우체부 아창(류하오란 분)은 대학살을 피해 사진관 인턴으로 위장해 일본군 사진작가 이토 히데오의 필름 현상 작업을 돕는다. 이토의 카메라 필름에 담긴 일본군의 잔혹한 만행에 분개한 아창, 그리고 사진관에 함께 몰래 피신해있던 사진관 주인 진씨(왕샤오 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극단 배우 린위슈(가오예 분)까지 목숨을 걸고 필름의 원판을 세상에 공개하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난징! 난징!(원제:南京!南京!)’이나 ‘금릉십삼채(金陵十三釵)’ 같은 기존의 난징대학살을 배경으로 한 영화와 달리 전투 장면이나 학살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사진관에 걸린 액자에 담겨있던 난징 시민들의 일상의 희로애락을 담은 사진은 일본군 만행 사진으로 바뀌고, 중국인에게 ‘친구’라며 다가왔던 일본군이 나중에 쓸모없어진 ‘친구’에게 칼날을 들이대고... 영화는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평범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눈을 통해 역사의 상처를 잔잔하면서도 묵직하게 풀어냈다.
영화는 폭력, 집단학살, 강간 등 참극을 자극적으로 보여주지도, 억지로 항일 애국 영웅을 만들지도 않는다. 절제된 연출은 관객들로 하여금 오히려 역사의 잔혹함을 깊이 느끼게 하며 깊은 울림을 준다.
영화는 대학살을 겪으며 변화하는 주인공의 미묘하고 복잡한 심리도 섬세하게 묘사했다. 처음엔 생존을 위해 일본군을 도와 사진을 현상했던 아창은 일본군의 만행을 목격하며 차츰 진상을 밝혀야겠다는 신념을 갖게 되고, 일본군에 빌붙어 일어 통역을 하며 목숨을 부지하는 매국노 왕광하이(왕촨쥔 분)조차도 일본군에 학살되는 중국인을 보면서 고통스러운 내적 갈등을 겪는다.
영화 말미에 사진관 주인 진씨가 촬영 배경용으로 걸어놓은 만리장성, 황학루, 서호 등 중국 곳곳의 명소를 찍은 거대한 사진을 한 장씩 넘기자 주인공들은 “아름다운 강산, 한 치도 내어줄 수 없다(大好河山, 寸土不讓)”고 외치고, 관객들의 애국심은 고취돼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1938년 난징 화둥사진관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던 중국인 청년이 일본군이 직접 찍은 필름을 현상하면서 그들의 만행이 담긴 사진 16장을 추가로 현상해 몰래 앨범으로 만들었다. 이는 훗날 일본 전범 재판에서 역사적 증거물이 됐다.
선아오 감독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영어로 ‘사진을 찍다’와 ‘총을 쏘다’는 'Shooting'이라는 같은 단어를 쓴다”며 “총알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는 잔혹한 행위 장면과, 카메라에 필름을 장착해 셔터를 누르고 기록하는 장면을 교차시키며 미묘한 연관성을 만들어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장에서 사진은 총알과 같다. 셔터 소리가 총 소리와 함께 울려퍼지며 필름은 마치 총알처럼 침략자의 위선을 꿰뚫는다”고 표현했다.
이 영화는 중국 영화평론 사이트 더우반에서 8.6점이라는 높은 평점을 받으며 누리꾼의 호평을 받았다. 누리꾼들은 “자극적인 장면 없이 절제된 연출만으로도 일본군의 끔찍한 만행을 표현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사진 촬영은 기록 증거로서 진실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후세에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창을 제공함으로써 역사의 진실을 상기시킨다”, “난징대학살이라는 소재는 찍기 어렵고, 쉽게 건드릴 수 없는데, 젊은 감독이 이 집단적인 역사적 상처를 건드린 용기와 결단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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