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교수/국제전략학]
언제나 그렇지만 한반도 주변의 국제 정세는 늘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미·중 간 전략 경쟁도 한 치의 양보 없이 지속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해결이 난망이고, 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을 둘러싼 중동 정국도 계속 불안하다. 인도와 파키스탄, 태국과 캄보디아의 무력 충돌까지 더해지면서 지구촌 곳곳이 국지전의 몸살을 앓고 있다. 가히 ‘관세 제국주의’라고 할 만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폭주도 계속되는 가운데 중국은 물론이고 인도와 브라질 등은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 신흥국 연합체인 브릭스(BRICS)의 저항도 계속되고 있고, 미국의 우방인 멕시코·캐나다는 물론 유럽연합이나 일본 등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특히 한국은 이미 우리에게 지속적인 핵 위협을 가하는 매우 호전적인 북한을 마주하고 있다. 2023년 12월 남북한 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선언하면서 한국과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단절을 강화하고 있다. 또 러시아와 군사동맹 복원을 통해 러시아 전장에 인민군을 파병해 다양한 실전 경험을 쌓고 있으며, 군사 과학기술 협력을 통해 전력 강화에 혈안이다. 미사일이나 정찰 위성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두 척의 5000톤급 구축함을 진수시켜 위협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우리 서해 지역에서 중국 해군력 증강이나 회색지대(Grey zone) 전술을 통한 영향력 확대는 한국의 안보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극도의 혼란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의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하는 국익 기반의 실용 외교’가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8월 25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은 향후 한·미 동맹 관계의 재정립은 물론 전체 동북아 안보 환경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진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된다. 한국은 해군력 재건이나 조선업 부활을 강조하는 미국을 겨냥해 ‘마스가(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정책을 내세웠고, 미화 1500억 달러(약 208조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할 계획도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불확실성이 여전하지만 일단 대미 무역 흑자국의 마지노 관세인 15%로 대미 관세 협상을 타결해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한국의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과의 정상회담은 안보를 미국에 의지하는 한국의 안전과 양국 간의 우정 및 민주주의 가치 공유라는 익숙한 명제들이 있다. 하지만 작금의 국제 정세에서 나타나는 전략 경쟁과 무역 질서의 변화 속에서 전통적 안보 보장이라는 한·미 동맹 구조의 재조정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미국은 변화하는 지역 안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한·미 연합군의 역할과 책임의 재조정을 목표로 한 ‘한·미 동맹 현대화’를 제기하고 나섰다. 미국은 중국을 '진전되고 있는 위협(pacing threat)'으로 간주하면서 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한 실존적 위협에 집중하는 것처럼 한·미 동맹이 미국의 핵심 안보에 기여하기를 원한다.
이와 관련해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피하기 어려운 두 가지 의제가 기다리고 있다. 결국 한·미 동맹 관련 ‘안보 패키지’ 논의에 본격 시동이 걸릴 수밖에 없는데 하나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된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주한 미군의 분담금 증액 문제가 될 것이다.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는 지정학적 충성심을 보여 달라는 압력과 함께 주한미군 주둔과 공유 인프라 유지에 대한 한국의 기여도를 크게 높일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이 14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동맹국들을 향해 ‘모두 집단 방어의 부담을 짊어지고 이에 기여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요청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이번 정상회담은 인도-태평양 전역에서 전략적 재조정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열린다. 한국의 새 정부는 한반도 평화 관리의 방편으로 ‘9·19 군사합의 복원’이나 ‘대북 확성기 철거 등 선제적 유화 조치에 나섰다. 그러나 북한의 대답은 냉랭하다. 여기에 확인되지 않은 ‘시진핑 체제 위기설’까지 나도는 중국은 ‘9·3 전승절’ 행사에 이 대통령 초청을 타진 중이다. 이재명 정부는 미·중 관계를 관리하면서 강대국 간 얽힘을 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균형 잡기는 미국에서는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대미 경사로 간주된다.
그러나 사실 이는 한국의 지정학적 제약에 대한 불가피성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미국 방문에 앞서 일본과 정상회담을 하는 것도 인·태 지역에서 한·미·일 공조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출이기도 하다. 또 중국에는 적어도 북한과 대결 구도를 형성하지 않겠다는 노력을 보여주면서 북핵 해결에 일정한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과 미·중 양국 간에는 안보를 둘러싼 우선순위 격차가 존재하는 것도 분명하다. 한국은 여전히 북한 핵과 미사일의 위협이 우선이지만 미국은 대중 견제가, 중국은 한·미·일 공조의 대중 압박 기조가 우선이다. 이 점에서 관련국들과 북핵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의 격차를 여하히 줄일 수 있느냐에 ‘국익 중심 실용 외교’의 본질이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번 한·미, 한·일 정상회담, 그리고 10월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이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에서 한국의 헤징(hedging)이 소극적 중립이나 회피가 아니라는 점을 각인시킬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이번 한·미 정상회담이 이분법적 문제 제기가 아닌 한국의 전략적 필요성에 따른 것임을 설파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한국외대 교수 ▷대만국립정치대 동아연구소 중국 정치경제학 박사 ▷한중사회과학학회 명예회장 ▷HK+국가전략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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