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드뱅크 설립과 관련한 분담금 납입 마감일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분담 비율에 대한 논의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금융당국이 '업권 자율 결정' 원칙을 고수한 채 한발 빠지면서 업계는 눈치만 보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권의 배드뱅크 분담금 4000억원에 대한 납입 마감일은 8월 말이다. 금융위원회는 이 재원을 바탕으로 9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배드뱅크를 설립하고 이르면 10월부터 본격적인 장기연체채권 매입에 나설 계획이다.
현재 은행연합회, 생명·손해보험협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등 업권별 협회는 출연금 분담 비율을 놓고 지난달부터 협의를 진행 중이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달 들어서는 아예 회의 자체를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배드뱅크 설립 재원은 8000억원 가운데 절반인 4000억원을 금융권이 부담하고 이 중 은행권이 3500억~3600억원을 부담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나머지 금액을 금융사들이 어떻게 나눌지에 대해서는 합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카드업계는 연체채권 규모 대비 부담액이 과도하다고 반발하고 있으며, 보험권 역시 '부실채권 발생 주체가 아닌데 분담금까지 떠맡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기에 금융투자협회는 주식 투자로 부채가 발생하는 금융투자업권은 매입 범위에서 제외하기로 한 것을 근거로 분담비율 논의를 위한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고 있다. 내부적으로 프로그램 참여 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업권은 배드뱅크의 평균 채권 매입가율이 5% 수준인 점을 두고 반발하고 있다. 대부업은 업체별로 자체 채권추심업체를 보유하고 있는데 추심업체의 부실채권 매입가율이 보통 20~30%다. 대부업체들은 실제 시장 가격을 반영해야 한다며 매입 조건 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업권 간 협의가 쉽지 않은 상황인데도 금융당국은 "금융권 기여 여부와 규모는 금융권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정부가 일일이 개입하기보다는 업권 스스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선을 긋고 있다. 연체채권의 정확한 규모와 산정 방식에 대해서도 설명이 부족해 업권별 불신이 확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배드뱅크 운영 주체가 되는 캠코도 분담금 비율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캠코는 지난달 17일 은행권 설명회에 이어 이달 13일에는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배드뱅크 관련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르면 다음 주 여신금융협회에 이어 9월 생·손보협회를 대상으로 업권별 릴레이 설명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배드뱅크 설립 일정과 함께 매입 채권 대상, 계약서 검토 등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이 이뤄지고 있지만 운영 재원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지금과 같은 속도로는 배드뱅크가 9월에 출범하더라도 실제 매입과 프로그램 가동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최종 결정은 금융위가 내릴 사안인데 정확한 지침을 내리지 않고 있다"며 "최소한의 방향성이라도 제시해야 논의에 속도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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