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37년째 멈춘 담배 정의

  • 합성 니코틴 전자담배, 청소년 쉽게 구입

  • 국회 논의 지연 속 청소년 보호 대책 뒷전

  • 미국·영국·호주는 합성 니코틴 규제 강화

담배를 담배라 부르지 못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 바로 합성 니코틴 이야기다. 합성 니코틴이 법적으로 담배가 아닌 '유사 담배'로 불리는 이유는 담배 정의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어서다.

1988년에 제정된 담배사업법을 보면 '연초의 잎'을 원료로 한 제품만 담배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화학적 과정을 거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합성 니코틴은 법률상 담배가 아니다. 즉 37년 동안 각종 신종 담배가 생겨났으나 법이 변화를 따라오지 못하는 셈이다.

이런 허점은 청소년 흡연 문제로 이어진다. 합성 니코틴 전자담배는 일반 담배와 달리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고, 무인 자판기나 피시방 등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 심지어 제품을 화장품이나 소품처럼 꾸며 눈속임도 수월하다. 실제로 질병관리청 자료를 보면 중·고등학생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2020년 이후 증가세다. 남학생은 2.7%에서 3.8%로, 여학생은 1.1%에서 2.4%로 늘어났다. 저렴한 가격도 한몫한다. 합성 니코틴 제품은 궐련형 담배 절반 수준. 지갑 사정이 빠듯한 청소년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실은 더 노골적이다.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에는 '24시간 무인 전자담배'라고 적힌 매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매장 앞 액상형 전자담배 자동판매기 앞에는 앳된 얼굴을 한 이들이 서성거린다. 신분증 인증 절차가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무인 자판기 특성상 타인 신분증이나 위조 신분증으로 우회할 수 있어서다.

국회도 합성 니코틴 규제 필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여야 모두 합성 니코틴을 담배로 분류해야 한다는 데 공감해왔다. 올해 초에는 관련 개정안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의원이 합성니코틴 전자담배 소매업자들의 '생존권' 문제를 앞세워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법안은 심사 무턱조차 넘지 못했다. 최근에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담배사업법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을 함께 논의하려 했지만, 안건 조율이 불발돼 회의 자체가 무산됐다.

논의가 지연될수록 청소년 보호 대책도 뒤로 밀리고 있다. 소상공인 생계 문제를 무시하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한 세대의 건강을 외면하고 소상공인 이익만을 앞세우는 것은 균형을 잃은 판단이다. 국제 흐름만 봐도 그렇다. 미국은 2022년 담배 정의에 합성 니코틴을 포함시켜 식품의약국(FDA) 규제를 받게 했다. 영국은 내년 10월부터 액상형 전자담배에 소비세를 부과한다. 호주는 지난해 7월부터 니코틴 함유 여부와 관계없이 전자담배 전 제품을 약국에서만 판매하도록 했다. 주요 선진국이 청소년 보호를 위해 합성 니코틴을 규제하는 가운데, 우리만 법적 공백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오는 9일 합성니코틴을 담배로 규제하는 법안에 대한 국회 논의가 재개된다고 한다. 소매업자 생존권 문제 논의도 중요하지만, 청소년 건강권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국민 건강·국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국회의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홍승완 산업2부 기자 사진아주경제DB
홍승완 산업2부 기자 [사진=아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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