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 감독님께서 이 영화를 오래 썼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믿음이 있었죠. 하지만 두 시간을 꽉 채울 만큼 제가 효과적인 연기를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따랐어요. 현장에서 늘 '나만 잘하면 된다'는 말을 달고 사는데, 이번 작품도 마찬가지였어요. 제 몫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습니다."
시나리오를 처음 받아들었을 때는 의외의 감정이 들었다. 기자 캐릭터로 자신을 떠올린 감독의 선택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책을 받고 '이 캐릭터에 나를 떠올리셨다고?' 싶었어요. 저의 어떤 면을 보고 이런 역할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까 궁금했죠. 저 스스로는 저에 대한 믿음이 없는데, 감독님이 그렇게까지 확신한다면 해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런 호기심이 출발점이 됐어요."

"연기할 때 (백선주의 심리를) 딱 부러지게 정해놓지는 않았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죠. 특종을 원했을 수도 있고, 개인적 처지가 작용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 마음이 이상하다거나 모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실 인간은 어느 정도 모순적이지 않나요? 하하."
촬영 후반부로 갈수록 캐릭터와 감정적으로 맞닿는 순간도 많았다. 영화 말미, 호텔을 걸어 나오는 백선주의 뒷모습을 연기하던 때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그 장면을 찍을 때 '이건 대체 어떤 감정일까' 싶었어요. 무섭고 막막했죠. 순차적으로 촬영한 덕분에 후반부에는 캐릭터에 더 깊게 잠겨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무슨 정신으로 연기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나중에 보니 그 상황에 몰입해 있었을 때만 나올 수 있는 모습이더라고요."

조여정은 함께 호흡한 정성일에 대한 신뢰도 강조했다. 드라마 ·99억의 여자’ 이후 6년 만의 재회는 이번 작업에 큰 힘이 됐다.
"당시에도 만나는 신이 많지는 않았지만 밀도가 높았어요. 이번 작품도 오빠가 한다고 해서 믿고 따라간 것도 있어요. 선주에게 영훈이 중요한 만큼, 저 역시 연기할 때 의심이 없었죠. 만나보니 역시나였어요.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잘 맞아 다른 데 신경 쓸 필요 없이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죠."
대사 분량이 많았던 만큼 준비 과정도 치열했다. 그는 긴 대사를 소화하는 데서 오는 부담을 웃으며 털어놓았다.
"하겠다고 했으니 해야죠. 제 선택이니까요. 저나 오빠나 버튼만 누르면 처음부터 끝까지 달달 말할 정도로 외워갔어요. 같이 연습하려고 날짜를 맞췄는데 제가 깜빡해버려서 미안했던 기억도 있네요. 그래도 서로 잘 해내줘서 고마웠어요."

그의 최근작 '좀비딸'은 손익분기점을 훌쩍 넘은 55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조여정은 관객들의 호응이 무엇보다 큰 보람이었다고 말했다.
"'손익분기점만 넘으면 좋겠다' 했는데 550만까지는 정말 예상 못했어요. 관객들이 제 작품을 즐겨주셨다는 게 가장 감사했죠. 이번 작품도 그 기운을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배우로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매 작품마다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고 했다.
"저는 매번 오늘이 정점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낙담하지 않기 위해서예요. 사실 제 필모그래피는 저 스스로도 신기해요. 매번 다른 작품들로 채워나가는 게 기분 좋고, 앞으로도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