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철도 르네상스의 시대, 한국은 왜 보이지 않는가

박선태 전 주페루공사 현 페루 트루리요 국립대학 명예교수
[박선태 전 주페루공사, 현 페루 트루리요 국립대학 명예교수]

중남미가 철도의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멕시코·콜롬비아·페루·칠레를 직접 방문해 확인한 현장은 분명했다. 각국은 철도를 국가 성장전략의 핵심 인프라로 되살리고 있었지만, 그 현장 어디에서도 한국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중남미, 철도의 귀환

멕시코는 1,554km 규모의 트렌 마야(Tren Maya)를 개통했고, 인트라오세아닉 회랑(Corredor Interoceánico)도 완공해 정식 운영에 들어갔다. 수도–케레타로(Querétaro) 고속철 건설도 본격화되었으며, 최근에는 멕시코·벨리즈·과테말라 세 나라 대통령이 삼국을 연결하는 국제 철도 건설 계획을 공동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교통망 확장이 아니라 역내 경제권 재편을 겨냥한 전략이다.

콜롬비아의 구스타보 페트로 정부는 총 94조 페소(약 240억 달러, 한화 약 32조 원)를 투입해 5,000km 이상을 신설·복원하는 6대 철도망 정책을 내놓았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인터오세아니코 철도, 부에나벤투라–팔미라 노선, 보고타–중앙 회랑 연결선이 핵심이다. 이는 높은 물류 비용을 줄이고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는 대형 경제 프로젝트다.

페루도 철도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리마 지하철 3·4호선 발주를 준비하고 있으며, 리마–이카 간 근교철도와 Chancay 항–Barranca 신규 철도 건설을 추진 중이다. 더 나아가 안데스와 아마존을 관통해 브라질과 연결하는 대륙횡단 철도까지 구상하며 세계 물류 중심으로의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칠레는 20세기 후반 철도의 쇠퇴를 뒤로하고 부흥의 길을 걷고 있다. 2024년 산티아고–쿠리코 고속열차 개통으로 남미 최속 여객 서비스를 선보였고, 기존 TerraSur 노선은 현대화로 재도약했다. 동시에 2025년 Melitrén(산티아고–멜리피야), Santiago–Batuco 통근철도, 발파라이소–리마체 확장 사업이 진행되며 철도는 국가 교통정책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럽·중국의 선점

이 거대한 시장을 선점한 것은 유럽과 중국이다. 유럽은 PPP(민관협력) 구조와 운영 경험을 무기로 한다. 반면 중국은 건설·차량·차관을 묶은 “Build+Finance+Operate” 패키지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CRRC는 보고타 메트로 1호선 차량을 공급했고, 차이나 하버는 같은 노선의 컨세션업체로 참여해 현재 시공 중이다. 더 나아가 중국 기업은 보고타 메트로 2호선 사업에서도 최종 후보 2개 업체 중 하나로 선정됐다. 중국은 이 패키지를 앞세워, 페트로 정부가 추진하는 콜롬비아 6대 철도망 프로젝트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한국

그러나 한국은 보이지 않는다. 철도는 외교·ODA 의제에서 뒷전이고, 체계적인 정보·연구·인력도 부족하다. 건설사는 시공에, 엔지니어링사는 설계·감리에 국한돼 있으며, 현지 기업과의 컨소시엄이나 로펌 네트워크 부재도 한계다. 이런 구조로는 입찰 테이블에조차 오르기 어렵다.

기회의 문, 아직 열려 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중남미 관계자들은 KTX 운영 경험, 도시철도 관리 능력, AI 기반 유지보수 기술 등 한국의 경쟁력에 큰 관심을 보였다. 특히 콜롬비아 정부 관계자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 경험, 지식공유사업(KSP)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협력 확대를 기대했다. 기회의 문은 아직 열려 있지만, 준비하지 않으면 곧 닫힐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명확하다. 첫째, 철도를 대중남미 외교·ODA 핵심 의제로 격상해야 한다. 둘째, 정보·연구·인력 체계를 마련해 시장 분석역량을 축적해야 한다. 셋째, EPC·운영·스마트 유지보수·교육·현지화를 결합한 한국형 패키지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넷째, APEC 같은 다자무대에서 “한–중남미 철도 협력 포럼”을 제안해 국제적 모멘텀을 확보해야 한다.
중남미는 지금 철도의 르네상스를 살고 있다. 멕시코는 국제 네트워크를, 콜롬비아는 국가 교통 체계 전면 재편을, 페루는 세계 물류 중심 도약을, 칠레는 지속가능한 교통 혁신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준비 없는 한국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이 역사적 열차에 동행할 것인지, 또다시 뒤처질 것인지는 이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전 주콜롬비아공사 ▷국가철도공단 글로벌대사 ▷콜롬비아Dentons 법무법인 고위고문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