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빗썸과 업비트 등 주요 가상자산거래소가 ‘코인 대여 서비스’를 내놓았다. 사실상 ‘코인 공매도’ 성격을 띤 이 서비스는 출시 직후 강제 청산과 시세 폭락을 불러오며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그제야 금융당국이 행정지도와 현장 점검에 나섰고, 서비스는 결국 제동이 걸렸다. 투자자 보호 장치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서비스가 출시되며 벌어진 일이다.
가상자산 산업은 지금 부흥기를 맞고 있다.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지면서 거래소는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공정위원회는 매년 자산 총액 5조원 이상 기업을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하는데, 빗썸은 지난 5월 92개 집단 가운데 90위에 올랐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이미 2022년에 대기업으로 지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여전히 자율규제에 의존하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가 쏟아지고, 사고가 터져야만 당국의 지도가 뒤따르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
코인 대여 서비스 제동 후 금융당국은 지난 5일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닥사·DAXA)와 함께 마련한 ‘가상자산 대여 서비스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사업자는 이용자가 닥사 주관의 온라인 교육, 적격성 테스트 이수 여부 등을 이행했는지 확인해야 하며, 이용자의 대여 경험과 거래 이력 등을 바탕으로 개인별 대여 한도를 단계적으로 설정하도록 했다. 가격 변동으로 강제 청산 우려가 발생하면 사전에 고지해야 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협의체 차원의 자율규제안에 그쳤다.
그 사이 현장에서는 제도와 규제 사이의 간극이 드러나기도 했다. 빗썸은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을 구축하기 전 신규 영업을 중단하라는 권고가 내려졌음에도 기존 서비스를 이어갔다. 레버리지 비율을 4배에서 2배로 낮췄다고 하지만 서비스 자체는 유지됐다. ‘중단 권고’가 ‘금지 조치’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이, 투자자들은 불확실성을 감수해야만 했다.
기존 자율 규제안 가운데에서도 시행 이후 실제로 준수되고 있는지 여부가 불분명한 규정들도 존재한다. 예컨대 닥사가 만든 자율규제안 중 표준광고규정에는 신규 상장 지원 공지에 준법감시인 필수 표기가 의무화돼 있다. 그러나 업비트의 상장 지원 공지에는 해당 사항이 빠져 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자율 규제다 보니 어떤 곳은 넣고, 어떤 곳은 빼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자조 섞인 반응을 보인다.
이렇듯 대기업을 양성해 낸 산업임에도 규율의 책임성과 중요성을 인지하는 수준은 여전히 신생 업권에 그친다. 빗썸이 당국의 신규 영업 중단 권고에도 서비스를 이어간 사례가 보여주듯, 당국의 권고나 자율 규제는 어겨도 그만인 형식에 그치고 있다. 덩치는 컸지만, 규율을 지키는 태도는 어린아이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이런 태도는 곧 무책임으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이제는 성장한 산업에 걸맞은 규제와 책임 있는 운영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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