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인터넷은 '로그인' 했는데 …인류는 아직 '로딩 중'

  • 인터넷 출현 56 주년…인류에게 던지는 숙제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1970년 보잉 747기가 나온 이래 인류는 서울과 뉴욕을 14시간 만에 주파했다. 이름 그대로 ‘꿈의 여객기’라고 불리는 보잉 787 드림라이너 기종이 2011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서울~뉴욕 간 소요 시간은 여전히 그 속도 그대로 변함이 없다. 즉 지난 55년간 속도에는 아무 개선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보잉 747과 같은 시기인 1969년에 탄생한 인터넷은 같은 기간 동안 그 속도가 무려 10억배나 빨라졌다. 이는 기계공업 기술과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10억배를 체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전통적 기계와 컴퓨터의 작동 속도 차이를 서울~뉴욕 주파 속도로 한번 따져 본다면 조금은 피부로 느껴 볼 수 있으리라 본다. 즉 컴퓨터라면 인천공항 활주로를 이륙하자마자 단 1분 내에 뉴욕 케네디 공항 활주로에 도착해야 말이 된다. 14시간 대 1분, 이는 750배 차이다. 인터넷이 얼마나 빠른지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올 10월은 인터넷 탄생 꼭 56주년 되는 달로 1969년 10월 29일에 출현했다. 미국 서부 단 두 개 지점 (노드)이 메시지 교신 작업에 들어가 'LO’라는 두 글자를 주고받자마자 그 인터넷 시스템은 그대로 고장 났다. 그 두 글자는 ‘LOGIN”이라는 단어의 첫 부분이었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당시는 컴퓨터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작동 중지되는 일이 잦아 재부팅(한 번 재부팅에도 수십 분 혹은 수시간씩 소요)하느라 하루 시간의 거의 절반을 소비했다. 당시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으나 요즘은 수십 년이 지나도 인터넷이 단 1초도 중단되는 일은 결코 없다. 요즘은 270억개 노드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상태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몇 군데쯤 동시에 고장이 나도 시스템 전체적으로는 끊김 없이 정상 작동한다. 23개 노드로 늘어난 1971년 자료에 의하면 당시 전 세계 인터넷 사용자는 오직 전산학 전문가 200명 내외였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56억명에 달하고 있다. 세계 인구 82억명 중 14세 이하 인구 25%와 70세 인구 7%만 제외하고 나면 15세에서 69세에 속하는 전 세계 인구 56억명이 전부 다 인터넷을 쓴다고 보면 된다.

각국 간 빈부 차이는 엄청나지만 인터넷 활용도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현재 최대 부유국은 룩셈부르크, 싱가포르, 아일랜드 순이다. 모두 1인당 GDP 13만 달러 이상이며 이들은 5G를 쓴다. 최빈국은 남수단(716달러), 브룬디(1015달러), 북한(1200달러) 순이며 이들은 3G로 통한다. 3G로도 사실상 못하는 일은 없다. 따라서 인터넷 보편화 현상은 아프리카, 동남아, 중남미 등 세계 어디에서도 국민 소득수준과 전혀 무관하게 대등하다. 아프리카 현지 경험을 하나 소개하면 오히려 후진국이 인터넷 강대국을 때로는 초월하여 모바일인터넷을 더 잘 사용하고 있다. 3000년 전 생활 모습을 지금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케냐의 마사이마라. 거기로 가는 울퉁불퉁한 비포장길 모퉁이 장소에서 바나나 한 뭉치를 스마트폰 모바일로 결제하는 장면을 목격하면 순간적으로 여기가 서울인지 아프리카 오지인지 전혀 구분이 안 될 때가 종종 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로서도 큰 충격으로 받아들일 것 같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대중 교통 정체 시 늘 운전자 앞에 등장하는 길거리 상인들이 단돈 몇백 원을 놓고 모바일 결제를 시도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후진국에선 오히려 이런 결제가 빈번하다는 사실을 보면 선진국과 후진국 간에 인터넷 활용도를 비교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실제로 모바일 머니 시장이 국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케냐가 무려 20%에 달하나 우리는 불과 10% 미만으로 나타날 정도로 차이가 난다. 이는 은행을 통한 전통적 금융 결제가 보편화돼 있지 않은 후진국에서는 신종 모바일 결제 방식이 선진국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뿌리내렸다는 결정적 방증이다. 전 국토가 차마고도인 특수 지형으로 인해 육상 교통이 발달할 수 없는 네팔 같은 나라에서 육로보다는 소형 항공편 위주 비행이 보편화된 것처럼 ATM 등 은행 결제가 열악한 나라에서는 장소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인터넷 결제가 대안이라는 사실을 잘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이걸 보면 후진국은 자신들 처지에 비관할 것이 아니라 모바일 비즈니스에 특화된 산업을 육성함으로써 선진국과는 차별화된 그들만의 장단기 국가 발전 계획을 세우는 일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인터넷은 다양한 비전통적 접근방식을 허용하는 무대다. 비전통적 결제 방식의 선두주자 위치에 있는 건 사실은 비트코인이다. 국내에서 일하는 후진국 노동자들이 금전을 본국으로 송금할 때 은행을 통하지 않고 거의 다 비트코인으로 보낸다. 그러면 수수료도 발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송금 속도도 최장 단 10분이면 된다. 이것도 느리다고 하여 초 단위로 앞당겨 비트코인을 대체할 수 있는 속도 강점의 이더리움 등 무려 수천만 개에 달하는 수많은 대체 코인 또한 성시를 이루고도 있다. 가상화폐 혹은 암호화폐의 강점은 인터넷 결제를 통해 기존 제도권 금융거래에 못지않은 안전성을 보장함은 물론 더 나아가서 금융 결제의 속도 면에서 기존 제도 금융권을 훨씬 뛰어넘는 성능을 발휘하는 것이다. 반면 전통 은행송금 방식으로는 최소 72시간, 주말 끼면 최장 120시간 걸린다. 이걸 비트코인 기준으로 보면 꼭 750배속 차이다. 즉 서울~뉴욕 교통 소요 시간과 똑같은 맥락의 속도 비교가 발생하는 대목이다. 인터넷의 속도 위력이 비트코인에서 충분히 증명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발전 계획을 실행하는 건 인터넷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결국 사람이다. 산업발전과 적시의 인력공급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미국이라는 한 나라에 인재를 양성해내는 대학교가 무려 4000개나 존재하지만 54개국에 이르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대학교가 불과 2400개뿐이라는 점을 본다면 후진국의 최대 과제는 고등인력 양성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나라가 그랬다. 우리는 기점은 약간 차이가 있으나 1967년 자동차, 1968년 철강, 1973년 선박, 1978년 핵발전, 1980년 반도체 산업이 태동된 바 있다. 이때에 적기에 발맞춰 대학은 적정 고등 인력들을 배출함으로써 국내 산업계 수요를 성공적으로 충족시켜줬다. 특히 전산학과가 국내 최초로 1970년 대학에 설립됨으로써 1980년대 초부터 활발해진 국가 및 기업 정보화에 있어서 인력충원의 길을 제때에 맞춤형으로 터주었다. 컴퓨터가 발달된 미국에서도 대학에 전산학과가 설립된 시점이 1964년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가 얼마나 정보화에 앞서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인터넷은 1969년 작품이다. 바로 그 익년에 전산학과가 한국에 설립됐다고 하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를 단순한 천운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한강의 기적이 비로소 이루어지기 위한 제반 초기 조건을 제때에 갖췄다는 놀라운 뜻이 된다. 마치 방정식을 풀기 위해서는 방정식 자체만 있어서는 불가능하고 초기 조건까지 주어져야만 해법의 실타래가 술술 풀리듯 말이다. 우리나라가 초기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던 점 중 또 하나는 카이스트라는 세계 최우수 대학원이 1970년에 때맞춰 설립됐다는 점이다. 카이스트는 7개 이공계 학과를 필두로 국가 산업체가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는 관련 산업계에 최우수 고급 인력을 매년 성공적으로 공급함으로써 한강의 기적의 탯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카이스트 전산학과는 아시아 유일하게 세계 10위 내에 당당히 든다. 50년 역사에 달하는 카이스트는 한강의 기적과 궤적을 완전히 똑같이 해 온 국가 발전사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카이스트를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속에 넣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따라서 어떤 후진국이 한강의 기적을 본국에서 재현해보려면 인력 양성이 최대 관건이다.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아프리카에 설립된 케냐과학기술원이다. 이름을 늘어 놓으면 Kenya Advanced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로, 약칭하면 그대로 KAIST가 된다. 사실상 그 모태는 우리 카이스트다. 케냐과기원 설립 문안에도 'Kenya-AIST is modeled after the Korea’s KAIST'로 돼 있다. 한강의 기적을 케냐가 본국에서 재현해보고자 만든 대학원이 바로 케냐과기원이다. 카이스트의 세밀한 지도를 지난 6년여에 걸쳐 받았다. 카이스트 주도 학교 설계로 시작하여 건물이 완공됐고 연구 실험장비 일체가 설치됐으며 교과과정도  설계된 상태에서 교수채용에 들어가 있다. 50년 전 카이스트 모습 그대로 케냐 현지에서 출범하는 것이다. 지금 케냐에서는 케냐과기원을 모르는 국민이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모든 시선이 거기에 가 있다. 마사이마라에서 '마사이'는 부족 이름이며 '마라'는 강 이름이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나온 그 강. 과연 케냐에 마라강의 기적이 한강의 기적처럼 일어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장담하기 이르다. 그러나 그 답은 한강의 기적에서 봤듯이 케냐 인력공급이 국가 산업계 요구 시점과 과연 여하히 맞아떨어질 것인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만일 그 둘이 잘 맞아떨어진다면 케냐는 물론 아프리카 대륙이 긴 잠에서 깨어나는 척 기적을 연출할 수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는 아시아 다음의 거대 대륙이다. 면적으로 보나 인구로 보나 북미, 중남미를 몽땅 합친 규모보다 크고 미국과 유럽을 합친 규모를 뛰어넘는 세계 2대 대륙이다. 그런 기적이 암흑과 혼돈의 땅, 아프리카에서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전통과 비전통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데 있어서 중추 역할을 하는 인터넷을 아프리카 국가 발전 비전과 그들 특유의 산업에 과연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게 잘 된다면 선진국과 후진국 간 경계 또한 좁혀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문제는 아프리카 어느 나라도 이런 노선에 걸맞은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나라가 현재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케냐 같은 나라에도 이런 자립갱생의 비전은 찾아볼 수 없다. 세상에는 이율배반적인 모순이 많다. 이런 국가 비전까지 남이 대신 만들어주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 때도 있다. 인터넷 56주년을 맞이하여 인류 전체에게 던져진 숙제라고 생각한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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