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테사 제인 앤슬러다.”
소리꾼 이자람은 1인극 ‘프리마 파시’ 무대에 오르기 전 암흑 속에서 이 말을 몇 번이고 되새긴다. 30년 넘게 판소리의 길을 개척해 온 이자람에게 연극, 특히 1인극은 도전이다.
이자람은 최근 서울 종로구 혜화에서 진행한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어렵다”고 토로했다.
“판소리는 30년 넘게 인이 박힐 정도로 들어온 말들이죠. 변형도 할 수 있을뿐더러 제가 쓴 작품들은 외울 필요도 없고요. 그런데 이번 연극은 테사가 수지 밀러란 사람의 말을 내뱉는 것을 제 몸을 빌려서 하는 것이에요. 제 몸의 찌꺼기가 없도록 하는 게 어려워요. 이 몸을 잘 통과해서 나올 수 있도록 잡생각이나 자의식을 없애는 것, 그게 어려워요."
이자람에게 '프리마 파시'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도전하는 1인극(연극)이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면서 변화가 생겼다. “관객을 만나자마자 '이건 정말 큰일이구나'란 걸 깨달았어요.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이 이야기가 무대에 오르는 게 보통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죠. 예술을 넘어, 어딘가에 영향을 끼치려는 목적과 의도가 있는 공연이란 걸 무대에서 느꼈어요.”
특히 9회차 공연에 들어서, 테사의 ‘패배’가 그것을 딛고 일어나는 힘을 보여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승리는 하지 못하죠. 하지만 어깨로 밀면서 일어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자람은 이 연극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다. 사실 연습 기간 일상에서 패배감을 느낄 정도로 '프리마 파시'는 소화하기 힘든 작품이다. "성폭력 사건이 벌어지는 7장을 하고 나서 후반부로 넘어가야 하는데, 7장부터 하기 힘들더군요. 계속하기 싫다고 했어요. 울기도 했죠. 많이 무서웠던 것 같아요. 열흘정도 헤맸죠.”
하지만 이제는 인생의 전복과 일어섬을 함께 생각한다. "인생이 무너지고, 거기서 스스로 다시 일어서는 경험은 운 좋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거죠. 여기서 후반부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삶을 전복할 만한 사건에서 엉덩이를 떼면서 (일어나) 저 너머의 앞을 보는 것 말이에요."
이자람은 묻는다.
"소리꾼 이자람을 다시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죠. 연극 세계에서 저는 정말 초라하거든요. 판소리 세계에서는 '나는 초라하다'고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지만 말예요. 그렇기에 어렵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같아요. 소리꾼 이자람에게 이렇게 묻는 거죠. ‘네가 서 있는 땅이 정말 단단하긴 해?’”
공연은 11월 2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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