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상고심에서 2심을 부분 파기환송하면서 SK그룹은 경영권이 흔들릴 위기를 넘겼다. 총수 개인의 가정사가 그룹 전반에 충격을 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게 된 것이다. 인공지능(AI)과 고부가가치 반도체 중심의 성장 전략을 지속하면서 석유화학·배터리 등 위기 사업에 대한 리밸런싱(자산 재조정)도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을 전망이다.
16일 재계에 따르면 대법원이 최 회장 측의 상고를 일부 받아들여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하는 결정을 하자 SK그룹 내에선 안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원심이 확정될 경우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0억원의 재산분할과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해야 했는데, 최 회장의 재산 대부분이 지주사인 SK㈜(17.90%)와 SK실트론(29.4%), SK케미칼(3.21%) 등 계열사 주식으로 이뤄져 있어 1조3800억원에 달하는 현금을 마련하기에는 여력이 없다.
현재 최태원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SK㈜ 지분율은 25.46% 정도다. 만약 최 회장이 재산분할을 위해 보유한 지분 일부를 매각하게 되면 지난 2003년 소버린 사태처럼 해외 투기자본이 SK그룹 경영권을 노리는 이슈가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국가 기간 산업뿐 아니라 AI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진입해 '역대급' 실적을 낼 것으로 기대되는 SK하이닉스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법원 파기환송으로 최 회장이 추진해 온 AI와 반도체를 통한 SK그룹 신성장 전략과 석화·배터리 사업 리밸런싱도 차질 없이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최 회장은 2030년까지 AI·반도체에 82조원을 투자하는 '미래 성장 전략'을 직접 제시한 바 있다. 지난 6월 빅테크인 아마존웹서비스와 협력해 7조원 규모 울산 AI 데이터센터 구축에 착수했고, 이달 1일에는 오픈AI와 D램 웨이퍼 기준 월 최대 90만장 규모의 메모리 공급 협약을 맺기도 했다.
최 회장은 판결 직후 미국 출장길에 올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700조원 규모 세계 최대 AI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 협력에 대한 논의를 한다. SK그룹이 스타게이트 구축에 필요한 D램과 낸드 등을 공급하는 것 또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AI 데이터센터를 직접 구축한 후 이를 소프트뱅크와 오픈AI에 임대하는 방안 등을 제시할 전망이다. 이어 18일(현지시간)로 예정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주최 마러라고 리조트 골프 회동에 참석해 한·미 관세·통상 정책에 대한 의견을 낼 것으로 예측된다.
이와 함께 이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지원 사격에 나선다. APEC CEO 서밋 의장을 맡아 전 세계 경제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경제 현안 관련 논의를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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