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국가보안법, 폐지가 아니라 개정이 답이다

  • 폐지법안의 헌법적 문제점

장영수
장영수
장영수(헌법학)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민형배⋅김준형⋅윤종오 의원 등 31인이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을 발의하였다. 16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이후 여섯 번째 발의이며, 특히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최용규 의원 등 150인이 발의했을 당시에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찬반 논쟁이 매우 뜨거웠다. 그러나 결국 국가보안법을 존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수많은 폐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존치되고 있는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끝날 수는 없다. 국가안보를 위한 형벌법규의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폐지 이후에는 이를 위해 별도의 법률이 필요하게 될 것인데, 그렇게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가 문제이다.
둘째, 이 문제와 맞물려 있는 것이 국가보안법의 문제 조항들이 상당히 개정 또는 폐지되었다는 점이다. 즉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그 조항들을 담는 다른 법을 만드는 것보다는 국가보안법을 잘 다듬고 정비해서 국가안보를 위한 법으로서 기능하게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견해가 다수였던 것이다.
셋째, 과거 국가보안법을 비판하면서 인류사에 유례가 없는 야만적 입법이라는 비판이 많이 있었으나 정작 세계 각국의 입법을 보면 국가의 안보를 위해 유사한 법률을 두고 있는 예들이 무수히 많다. 우리나라 국가보안법만이 특수한 사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그러면 이런 사정에 큰 변화가 있어서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이 발의된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폐지 법안의 입법 이유를 보면 민주화 이전의 국가보안법 오남용의 문제점, 냉전체제의 해체와 남북 유엔 동시 가입(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1992년) 이후의 존속 근거 상실,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점, 국제기구의 권고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논거는 2004년 당시에도 주장되었던 것이며 그 설득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지금까지 존치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국가 수호를 위한 법률이다. 국가 수호의 의무는 국방의 의무로 대표되는 국민의 기본의무 중 하나일 뿐만 아니라 헌법 제68조 제2항에서 '대통령은 국가의 독립⋅영토의 보전⋅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를 진다'고 규정한 것처럼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의무이기도 하다.
국가를 누구로부터 수호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특별한 제한이 없다. 외국의 공격이건, 내부의 반란이건 대한민국의 존립을 위협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국가의 수호가 필요한 것이다. 더욱이 1950년 6⋅25전쟁 이후 남북한이 적대적 대치를 계속하고 있으며, 북한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점은 또한 헌법 제3조와 제4조의 해석으로부터 도출되는 것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것처럼 '북한이 남북한의 유엔 동시 가입, 소위 남북합의서의 채택⋅발효 및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등의 시행 후에도 대남 적화 노선을 고수하면서 우리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전복을 획책하고 지금도 각종 도발을 계속하고 있음이 현실인 점에 비추어 국가의 존립⋅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국가보안법의 해석⋅적용상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고 이에 동조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하는 것 자체가 헌법이 규정하는 국제평화주의나 평화통일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국가보안법 폐지는 정당한 것으로 볼 수 없다.
 
국가보안법을 형법으로 흡수하면 된다는 주장도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모든 것을 형법에 담기 어렵기 때문에 수많은 특별형법이 있고, 이를 통해 일반형법과 특별형법의 역할 분담 속에서 전체 형벌체계가 구성되고 있는데, 왜 다른 특별형법과 달리 국가보안법만 일반형법에 흡수해야 하는지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못하고 있다.
이는 특별형법의 장점을 포기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일반형법의 체계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국가보안법을 일반형법에 흡수하게 되면 죄형법정주의에 따른 규율의 명확성이 크게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반공법이 폐지되고, 주요 내용이 국가보안법으로 흡수되었을 때 체계상 혼란이 적지 않았다. 만일 국가보안법의 주요 내용이 모두 일반형법에 흡수될 것이라면 굳이 체계상 혼란을 감수하며 일반형법에 흡수시킬 이유가 없으며, 국가보안법의 주요 조항들의 일부를 배제할 것이라면 그 자체가 또 다른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선진 외국의 사례들을 보더라도 국가보안법과 유사한 특별형법을 두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며, 일반형법에서 모든 사항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이러한 비교법적 검토를 통해서도 일반형법으로 흡수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점이 확인된다.
 
더욱이 민주화 이후에 여러 차례 국가보안법 개정이 있었고, 이를 통해 국가보안법에 의한 인권 침해 요소들이 많이 개선되었다. 이는 국가보안법의 여러 조항에서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라는 요건을 추가한 점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점을 모르고 한 행위까지 처벌하지는 않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국가보안법의 위헌성 검토를 통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판시된 조항을 포함하여 여러 조항들이 삭제되었다. 제7조 제2항을 비롯하여 제8조 제2항과 제4항, 제9조 제5항 등이 삭제되었고, 제10조 불고지죄와 관련하여 불고지 대상범죄를 축소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과거에 비해 국가보안법 폐지가 부적절하다는 논거가 될 것인데 이 시점에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이 왜 발의되었는지 의문이다. 국면 전환용 입법 발의인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다수 여당의 힘으로 이를 밀어붙이기 위한 것인지….
이제는 정부와 여당에서도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어떤 일들이 발생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미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한 이후 간첩이 안 잡힌다는 이야기가 파다한데 이제는 국가보안법까지 폐지해서 반국가단체 및 이적단체의 활동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는다는 것을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불안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