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리마 지하철 1호선의 혼잡과 마비 위기는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사고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충분히 예견되었고, 수차례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때 결단하지 못한 결과가 오늘날의 비상 상황으로 폭발한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보지 않으면 해법 또한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리마 대도시권 인구는 약 1천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 거대한 도시권을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중량급 도시철도는 사실상 1호선 하나뿐이다. 2호선은 아직 제한적인 구간만 운영 중이고, 3호선과 4호선은 수년째 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 구조에서 1호선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도시의 생명선이다. 출퇴근 통근, 저소득층의 생계 이동, 버스와 BRT를 잇는 환승 수요까지 모두 떠안고 있다. 이 한 노선이 흔들리면 리마 전체의 일상과 경제가 동시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독립 규제기관인 Ositrán이 리마 지하철 1호선을 공식적으로 ‘비상 상황’으로 선언한 것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이는 정치적 수사나 선거용 표현이 아니라, 시스템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객관적 진단이다. 연간 이용객 수는 2012년 약 3천만 명에서 최근 2억 명을 넘어섰고, 증가 속도는 연 10에서 11퍼센트에 이른다. 출퇴근 시간대의 긴 대기열과 극심한 과밀은 일상이 되었으며, 더 이상의 수요를 흡수할 물리적 여력은 사실상 소진된 상태다.
이 상황을 흔히 예산 부족의 문제로 설명하지만, 그것은 문제의 절반만 본 것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역량과 리더십의 부족이다. 1호선의 수요 폭증은 이미 수년 전부터 데이터로 충분히 예측 가능했고, 전문가와 감독기관의 경고도 반복되었다. 그 시점에 3호선과 4호선 착수가 이루어졌다면 오늘의 혼잡은 훨씬 완화되었을 것이다. 수요는 자연스럽게 분산되었을 것이고, 인구와 주거의 공간적 분산 역시 함께 진행됐을 것이다. 그러나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
입찰을 추진하다가 중단했고, 필요성을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라, 미래 비용을 도시와 시민에게 전가한 결정이었다. 더 아이러니한 사실은, 그때 집행되지 못하고 남아 있던 재원이 이후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모두 소진되었다는 점이다. 위기를 대비하지 못한 국가는 위기가 닥치자 장기 자산을 만들 기회를 잃고 단기 소모에 그 자원을 써버렸다. 그 결과 오늘의 리마는 교통 인프라에서도, 재정 여력에서도 선택지가 크게 줄어든 상태에 놓였다.
여기에 중남미식 민관협력 제도의 구조적 한계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민관협력은 초기 건설과 운영 안정성에서는 장점이 있지만, 수요가 예상을 초과해 폭증할 경우 신속한 확장에는 매우 취약하다. 계약에 명시되지 않은 확장은 반드시 부속계약을 거쳐야 하고, 이는 정치적·재정적·법률적 절차를 동반한다. 민간 운영사는 계약 범위를 넘어서는 투자를 자율적으로 할 수 없고, 정부는 계약 개정을 미루는 동안 문제를 관리하는 데 급급해진다. 성공한 노선일수록 더 빠른 확장이 필요한데,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제도는 속도를 잃는다.
요금 정책 역시 이 구조적 한계와 맞물려 있다. 리마 지하철 요금은 시장 가격이 아니라 사회적 요금이다. 저소득층 의존도가 높고, 교통비는 곧 생계비다. 중남미 정치 현실에서 대중교통 요금 인상은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라 정치적 위기의 도화선이 되어 왔다. 그래서 정부는 요금을 올릴 수 없고, 설령 인상하더라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확장 비용을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수요는 폭증하는데 수입 구조는 묶여 있고, 확장은 지연되는 모순이 고착화된 것이다.
문제는 지금 이 혼잡이 아무리 심각해도 당장 손을 쓸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시민들은 왜 이렇게 붐비는데 열차를 더 늘리지 않느냐고 묻지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냉혹하다. 지금의 1호선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계약의 문제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현행 계약 범위 안에서는 신규 열차 발주도, 전력과 신호 시스템 증설도, 이를 위한 입찰 개시조차 불가능하다. 모든 확장은 내년 6월로 예정된 부속계약 체결 이후에야 가능하다.
더 절망적인 것은 그 이후의 시간표다. 부속계약 체결 후에야 입찰 준비와 공고, 평가, 이의 제기 절차가 시작된다. 계약 체결 후에야 열차 제작이 착수되고, 도시철도 차량은 주문 후 납기까지 최소 2년에서 3년이 소요된다. 전력과 신호 공사 역시 동시에 진행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이 모든 과정을 감안하면 정상 절차를 따른다는 전제하에 실질적인 개선 시점은 2029년에서 2030년 이후가 된다. 즉, 향후 4년에서 5년 동안 아무것도 늘리지 못한 채 혼잡을 견디라는 것이 현재의 공식 시나리오다.
이 지점에서 정상적인 공개입찰을 고집하자는 주장은 현실을 외면한 이상론에 가깝다. 대형 인프라 입찰은 절차가 길 뿐 아니라 단계마다 중단과 소송 위험이 상존한다. 비상 상황에서 정상 절차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공정함을 지키는 선택이 아니라 지연을 제도화하는 선택이다.
또 하나 분명한 점은 이 사업이 분할 발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리마 지하철 1호선의 병목은 차량, 신호, 전력, 운영이 따로 존재하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시스템으로 얽혀 있는 문제다. 열차만 늘려도, 신호만 바꿔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 사업은 반드시 단일 책임, 단일 패키지, 즉 턴키 방식으로 추진돼야 한다.
현재 논의되는 1호선 수송 능력 확대, 신규 열차 도입, 신호와 전력 증설, 역사 개선, 안전 설비 확충을 모두 포함한 총사업비는 약 25억 달러에서 27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는 하루 수송 능력을 현재 약 60만 명 수준에서 100만 명에서 120만 명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최소한의 투자다. 이 정도 규모의 사업은 요금 인상이나 단기 재정 투입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으며, 장기 국제금융과 패키지형 사업 구조가 필수적이다.
안전 문제 역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리마 지하철 1호선은 승강장 안전 강화를 위해 스크린도어 도입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심한 과밀 상황에서 승강장 추락과 접촉 사고 위험은 상존하며, 스크린도어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 안전 장치다. 이는 단순한 시설 보강이 아니라 신호체계와 열차 운행의 정밀한 통합을 요구하는 고급 시스템 사업이다.
아울러 페루 정부는 최근 Chosica와 리마 도심을 잇는 기존 철로를 활용해, 미국 Calton사가 기증한 열차로 여객 서비스를 재개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는 단기적으로 통근 수요를 일부 흡수하려는 응급 조치이지만, 동시에 기존 철도와 도시철도를 어떻게 연계하고 통합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여기에 1호선 객차의 노후화 문제까지 고려하면, 전장화와 리모델링, 신호와 통신의 현대화, 운영 통합은 더 이상 분리된 과제가 아니다.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하면, 한국과의 국가 대 국가 협력과 턴키 방식은 페루 입장에서 매우 현실적인 해법이 된다. 한국은 차량 제작, 신호와 전력 시스템, 운영과 유지보수, 금융 조달까지 철도 전 생태계를 갖춘 국가다. 특히 기존 노선의 용량 증대, 노후 차량 리모델링, 신호체계 통합과 같은 문제 해결형 사업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는 데 강점을 가진 한국에 매우 유리하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페루가 정한 방식과 일정에 수동적으로 따라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지금 리마 지하철 1호선은 정상적인 행정 절차를 기다릴 수 있는 국면이 아니라 명백한 위기 관리 국면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단순한 참여 희망자가 아니라 위기 극복의 협조자이자 해법을 함께 설계하는 공동 파트너로서 선제적으로 제안할 수 있다. 턴키 방식의 통합 해법, 단계별 용량 증대 시나리오, 국제금융을 결합한 재원 구조를 패키지로 제안하고 협의를 요청하는 접근은 페루 정부 입장에서도 정치적·제도적 부담을 줄여주는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 문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리더십의 문제다. 내년 4월 예정된 페루 대선에서 리마 지하철 1호선 문제는 가장 큰 선거 이슈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리마 시민의 일상과 직결된 이 문제에 대해 누가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하느냐가 유권자의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리마 지하철 1호선의 위기는 교통 공약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도시 기능의 유지, 사회 안정, 정치적 신뢰의 문제다. 오늘의 혼잡은 오늘의 시민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오늘의 해결은 지금의 지도자만이 할 수 있다. 리마 지하철 1호선은 지금, 또 하나의 검토가 아니라 책임 있는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필자 주요 이력
▲중남미전문가(전 외교관, 페루 투르히요 국립대명예교수) ▲국가철도공단 글로벌대사 ▲ 중남미철도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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