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현장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또 하나의 사실이 분명해진다. CES의 본질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기술은 이미 넘쳐난다. 진짜 경쟁은 그 기술을 어떻게 선택했고, 언제 결단했으며, 어떤 위험을 감수했는가에서 갈린다. CES는 기술 박람회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업가정신의 경쟁장이다.
CES가 AI 전시의 장이 되면서 흥미로운 장면도 늘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가전에 AI를 결합해 단순한 ‘신기한 기능’이 아니라, 사용 경험과 유지 비용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강조해 왔다. 반면 어떤 기업들은 화려한 시연에 집중하지만, 실제 사업 구조의 변화까지는 보여주지 못한다. 같은 AI 기술을 쓰더라도 전시의 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CES 현장에서 느껴지는 차이는 성능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플랫폼과 반도체 기업의 접근도 대비된다. 엔비디아는 칩의 성능을 나열하기보다, 개발자와 파트너를 어떻게 묶어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왔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AI를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업무 방식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도구로 제시한다. 이들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CES에서 벌어지는 진짜 격차는 기술 설명이 아니라, 기술을 사업과 조직에 어떻게 연결하느냐다.
· AJP포럼에 거는 기대
이 문제의식은 내년 1월 7일(현지시간) 오후 6시 미국 라스베이거스 플래닛 할리우드 호텔에서 열리는 AJP Global Innovation Growth Summit 2026(혁신성장포럼)에서도 이어진다. CES가 열리는 바로 그 공간에서 개최되는 이 포럼의 의미는 분명하다. 기술을 얼마나 많이 보유했는지가 아니라, 왜 같은 기술을 두고 어떤 기업과 국가는 도약하고 어떤 곳은 정체되는지를 묻는 자리라는 점이다. 포럼의 주제인 ‘AI 글로벌 시대, 다시 설계하는 K-스타트업 모델’은 CES가 던지는 질문과 정확히 겹친다. 기술은 조건이지만, 성장은 선택의 결과라는 인식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이 베트남과 카자흐스탄 등 아시아 각국으로 확산돼, 지역별 현실에 맞는 기업가정신의 언어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세계적 경영학자들의 통찰도 이 지점을 오래전부터 강조해 왔다. 피터 드러커는 혁신을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결정의 문제로 봤다. 기술은 도구일 뿐이며, 조직의 미래를 가르는 것은 언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라는 뜻이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고(故)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 역시 “성공한 기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기술을 몰라서가 아니라, 기존 성공 공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AI 분야에서도 비슷한 경고가 나온다. 인공지능의 위험은 기술이 너무 빨리 발전하는 데 있지 않다. 조직과 제도가 결정을 미루는 데 있다. CES에서 보이는 격차 역시 기술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결단의 속도 문제다.
이제 시선은 한국 기업과 사회로 돌아온다. 우리는 기술 추격에는 강했지만, 첫 선택에는 늘 조심스러웠다. 실패에 대한 사회적 관용은 부족했고, 평가는 빠르되 재도전의 기회는 인색했다. 관리와 통제에는 익숙했지만,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결단에는 인색했다. 그 결과 기술은 보유했지만, 판을 바꾸는 기업가정신은 충분히 축적되지 못했다. CES가 보여주는 격차는 기술 격차라기보다 태도의 격차다.
CES는 미래를 예언하는 행사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태도를 시험하는 무대에 가깝다. 누가 먼저 움직였는지, 누가 불완전함을 견뎠는지, 누가 기존 성공을 스스로 부정할 용기를 가졌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CES는 매년 새로운 AI 기술을 보여주면서도,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기술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기술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준비가 돼 있는가를 묻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CES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느냐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CES가 요구하는 기업가정신을 우리 사회와 조직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가다. 실패를 관리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성장의 비용으로 인식할 수 있는지, 속도와 결단을 제도의 위험 요소가 아니라 경쟁력으로 인정할 수 있는지, 그리고 기업가정신을 구호가 아니라 구조로 만들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CES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다. AI는 이미 거기 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여전히 기업가정신이다. 이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CES는 전시회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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