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대통령이 외국의 아이돌 그룹을 위해 공식 서한을 보내는 장면은 흔치 않다. 멕시코 대통령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한국의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멕시코 추가 공연 개최를 요청하며 한국 정부에 서한을 보낸 일은, K-컬처가 이제 문화 현상을 넘어 외교적 자산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요청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BTS의 멕시코시티 공연을 원하는 청년층 수요는 약 100만 명에 달하지만, 실제 공급되는 티켓은 15만 장에 불과하다. 수요와 공급의 극심한 불균형은 사회적 불만으로 이어졌고, 이는 팬클럽 ‘아미(ARMY)’의 조직적인 항의와 정부 개입으로까지 확산됐다. 멕시코 정부가 공연 기획사와 협의에 나선 데 이어, 결국 이재명 대통령에게 공식 요청 서한을 보낸 것은 이 사안이 단순한 공연 차원을 넘어 청년 정책, 문화 접근권, 나아가 외교적 메시지의 영역으로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주목할 점은 멕시코 정부의 문제 인식이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BTS를 “멕시코 청년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화적 존재”로 규정하며, 추가 공연이 어렵다면 대형 스크린 설치 등 대안적 방식까지 언급했다. 이는 문화 소비를 사적 오락이 아닌 공적 관심사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문화가 사회 통합과 세대 소통의 매개라는 인식 없이는 나오기 어려운 발언이다.
이번 사례는 K-컬처 외교의 위상이 어디까지 확장됐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과거 문화 교류가 정부 간 협정이나 전통 예술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대중문화가 외교 의제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BTS의 월드투어 일정 하나가 외국 정부의 공식 행동을 촉발시키는 현실은, 한국 문화 콘텐츠의 글로벌 영향력이 정치·외교적 차원에서도 실질적인 무게를 갖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다만 원칙도 분명해야 한다. 정부가 특정 민간 공연의 성사 여부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연 일정과 규모는 아티스트와 기획사의 판단 영역이다. 그러나 문화 교류의 폭을 넓히고, 공공 상영이나 문화 행사 연계 등 외교적·제도적 지원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충분히 검토할 만하다. 문화의 힘은 자율성에서 나오되, 그 확산을 돕는 환경은 공공이 조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멕시코 대통령의 BTS 공연 요청은 ‘이례적 요구’라기보다, K-컬처가 이미 세계 곳곳에서 공공재에 가까운 위상을 획득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한국 사회가 이 장면을 단순한 자부심으로 소비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문화 강국에 걸맞은 책임과 전략으로 이어갈 수 있을지 성찰해야 한다. 문화는 우연히 강해지지 않는다. 지속 가능한 외교 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원칙과 시스템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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