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워싱턴서 트럼프와 '운명의 담판'…함정 파견·탈중국 공급망 정조준

  • 트럼프 '함정 파견' 요청 후 첫 대면 정상으로 세계 주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일본 방문 당시 요코스카 미 해군 기지에 있는 미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함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일본 방문 당시 요코스카 미 해군 기지에 있는 미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함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AP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18일 저녁 워싱턴 DC로 출국했다. 1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리는 이번 회담은 지난해 10월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 이후 약 5개월 만에 열리는 것으로, 지난 2월 중의원 선거 압승으로 정권 기반을 다진 다카이치 총리가 맞이한 사실상의 첫 번째 '안보 시험대'다. 특히 이번 회담이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중동 호르무즈 해협에 함정 파견을 요청받은 국가 정상 중 다카이치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먼저 대면 담판에 나서기 때문이다. 미국의 거센 요구와 일본 국내의 법적 제약 사이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내놓을 답변의 수위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번 회담의 최대 현안은 단연 자위대 함정의 호르무즈 해협 파견 여부다. 다카이치 총리는 출국 직전인 1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일본 법령의 범위 내에서 필요한 대응을 검토하겠다"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할 수 있는 일은 하겠지만,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다고 확실히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 내에서는 위험도가 낮은 '조사·연구' 목적의 파견 방안이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다. 이는 '완전한 정전 합의'를 파병의 전제 조건으로 명시해 즉각적인 파병에는 선을 긋되, 전투 종료 후라면 법적 테두리 내에서 기여할 수 있다는 유연함을 보여줌으로써 국익과 동맹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중동 이슈가 미국의 시급한 관심사라면, 대중국 전략 조율은 일본이 이번 회담에 사활을 걸고 임하는 최우선 의제다. 특히 대만 유사시 관련 발언으로 중국의 거센 압박을 받고 있는 일본으로선, 당초 3월 말 방중을 앞두고 있던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중 간 경제적 관계 개선 여부와 상관없는 '변함없는 지지'를 확약받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였다.

중동 사태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일정은 연기됐으나, 이번 회담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5% 요구'에 맞서 이미 2% 목표를 조기 달성했다는 점을 적극 부각하고, 미국의 차세대 공중미사일 방어체계인 '골든돔(Golden Dome)' 참여 의사를 밝혀 안보 기여도를 증명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중국, 러시아에 대한 억지력을 높이는 동시에 희토류 수출 규제 등 중국의 자원 무기화에 대응한 미일 공동 투자로 안보와 경제 실리를 동시에 챙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이번 회담에서 "일본의 머리 위에서 미중 간의 거래가 이뤄지는" 이른바 '재팬 패싱'을 막기 위해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실제로 이번 회담에서 양국은 중요 광물의 '탈중국'을 가속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 계획과 일본 기업들이 대거 참여하는 미국 내 광물 공동 개발 사업 가동에 합의할 전망이다. 미쓰비시머티리얼이 인디애나주에서 추진하는 폐자석 재활용 제련 사업을 비롯해 미쓰이물산과 미쓰비시상사가 참여하는 미국 내 리튬·구리 광산 개발 등 4개 사업이 우선 인증 대상으로 선정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중국의 자원 무기화와 저가 공세에 대응해 특정 가격 이하로 자원값이 하락할 경우 정부가 차액을 보전해 주는 '최저가격보장' 제도를 도입하는 등 실질적인 공급망 안정화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에 대응해 일본이 약속한 대규모 투자 계획도 이번 회담을 통해 구체화될 전망이다. 특히 지난 2월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로 투자 합의의 명분이 약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기존 약속을 차질 없이 이행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2차 투자 프로젝트에는 JDI의 미국 내 공장 건설을 비롯해 히타치GE벨노바가 주도하는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건설과 알래스카산 원유 증산을 위한 설비 투자 협력, 그리고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를 통한 대미 무역 불균형 해소 방안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다만 일본 정부 내에는 이번 회담이 자칫 '이란 일색'으로 흐르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미일 동맹의 견고함을 보여주기 위해 공들여 준비해 온 여러 협력 안건들이 중동 사태라는 돌발 변수에 묻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 결국 이번 회담은 다카이치 총리가 트럼프 행정부의 거센 요구에 슬기롭게 대처하면서도, 격화되는 중일 갈등 속에서 일본의 구상을 얼마나 관철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국내법의 제약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대규모 투자와 방위비 증액, 차세대 방어체계 협력이라는 카드를 통해 동맹의 균열을 막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의 전략적 입지를 지켜내야 하는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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