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컬렉션의 본질은 ‘소장’이 아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취향이 축적된 결과이기 이전에, 한국 근현대 미술의 시간과 결을 압축한 기억의 집합체다. 회화와 조각, 공예와 서예, 근대와 현대가 한 컬렉션 안에서 충돌하고 이어진다. 중요한 점은 이 집합이 완결된 서사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작품들은 하나의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 다른 시대의 감정과 질문을 병치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건희 컬렉션은 ‘보여주는 유산’이 아니라 ‘다시 읽히는 기록’이 된다.
BTS의 ‘아리랑’이 세계와 통했던 이유는 전통을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정의 구조를 있는 그대로 내놓았고, 해석의 여백을 남겼다. 이건희 컬렉션 역시 같은 조건을 갖춘다. 작품들은 한국 미술사를 강의하지 않는다. 관람객은 해설 이전에 시선과 감정으로 먼저 접속한다. 설명은 뒤따를 수 있지만, 필수는 아니다. 이 비강요의 태도가 오늘의 글로벌 문화 환경에서 결정적이다.
그동안 우리는 문화 자산을 ‘보존’의 언어로 관리해 왔다. 무엇이 진품인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누가 관리할 것인가가 논의의 중심이었다.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보존만으로는 문화가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 살아 있는 문화는 반복을 낳는다. 다시 찾게 만들고, 다시 이야기하게 하며, 다시 쓰이게 한다. 이건희 컬렉션이 중요한 이유는 그 반복의 가능성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였다는 데 있다. 개인의 소장이 공공의 기록으로 전환되는 순간, 문화는 비로소 사회적 자산이 된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연결의 문제다. BTS가 ‘아리랑’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작동시켰듯, 이건희 컬렉션 역시 고립된 전시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교육과 연구, 디지털 아카이브, 동시대 창작과의 교차가 이어질 때 비로소 컬렉션은 현재형이 된다. 기록은 닫히는 순간 가치가 줄어든다. 열려 있을 때, 그리고 다시 불러 쓰일 때 자산이 된다.
이건희 컬렉션을 둘러싼 논의가 종종 ‘어디에 둘 것인가’에 머무는 것은 아쉽다.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작동시킬 것인가’다. BTS 이후 한국 문화가 얻은 교훈은 분명하다. 설명보다 신뢰, 주장보다 태도, 관리보다 설계가 필요하다. 컬렉션은 보관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될 때 힘을 갖는다.
이제 질문은 한국 사회를 향한다. 우리는 이 기록을 얼마나 열어둘 준비가 돼 있는가. 해석의 여백을 감당할 수 있는가. 다음 세대가 다시 읽고, 다시 쓰게 할 구조를 만들고 있는가. BTS가 문을 열었다면, 이건희 컬렉션은 그 문 안에 무엇이 놓여 있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문화는 소유될 때가 아니라, 공유되고 반복될 때 세계의 언어가 된다. BTS 이후 이건희 컬렉션이 중요한 이유는 단 하나다. 한국이 이제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어떤 태도로 남길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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