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1심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는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헌정사에서 전직 국가원수가 내란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은 것은 전두환 이후 두 번째다. 이 판결의 무게는 단지 형량의 크기에 있지 않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스스로를 비춰 보는 거울이 됐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특정 권력자의 역사가 아니라 이름 없는 시민의 역사였다. 전쟁과 분단, 산업화와 민주화의 굽이마다 나라를 지켜낸 힘은 민초의 노동과 양심, 자유를 향한 의지였다. 그 역사 위에 세워진 공화국에서 최고 권력자가 헌정 질서를 스스로 흔들었다는 판단이 내려졌다는 사실은 뼈아프다. 이는 단순한 형사 판결이 아니라 공화국의 자기 성찰이다.
그러나 역사는 단죄에서 멈추지 않는다. 형벌은 과거를 정리할 뿐, 미래를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사형이냐 무기징역이냐는 법정의 판단 영역이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질문은 왜 이런 사태가 가능했는가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경계의 끈을 늦추었는가.
첫째는 유권자의 각성이다. 민주주의에서 주권자는 국민이며, 권력자는 위임받은 대리인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로 지역 감정과 진영 논리에 기대어 선택해 왔다. 선진 민주국가의 경험은 분명하다. 미국은 리처드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권력 감시 제도를 대폭 강화하며 대통령도 법 위에 설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프랑스는 전직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에게 실형을 선고하며 사법의 독립을 천명했다. 이들 국가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의 몰락이 아니라 제도의 보완이었다. 선거는 감정의 분출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냉정한 심사여야 한다. 검증된 경험과 절제된 권력관, 법치에 대한 확고한 존중이 없는 인물에게 국정을 맡겨서는 안 된다.
둘째는 법조의 성찰과 혁신이다. 사법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최후의 보루다. 그러나 독립은 선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독일은 나치 시대의 비극을 겪은 뒤 헌법재판소를 중심으로 기본권 보호 체계를 정교하게 다듬었다. 연방헌법재판소는 국가 권력의 행위를 엄격히 심사하며 “인간의 존엄은 침해될 수 없다”는 원칙을 실질적으로 구현해 왔다. 법은 단순한 조문이 아니라 가치의 체계다. 법조 교육 또한 기술이 아니라 철학과 책임을 가르쳐야 한다. 로스쿨과 연수 과정에서 권력의 한계, 인간 존엄, 자유의 본질을 체화하지 못한다면 사법은 형식만 남게 된다.
셋째는 정치 문화의 선진화다. 판결을 둘러싼 논쟁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헌정 질서를 위협한 행위를 미화하거나 공동체의 상처를 부정하는 태도는 민주주의의 토양을 메마르게 한다. 영국은 국왕조차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전통을 오랜 시간에 걸쳐 확립해 왔다. 미국에서도 현직 대통령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원칙은 반복적으로 확인돼 왔다. 법의 지배는 인물의 지지율과 무관하다.
민주주의는 열광이 아니라 절제 위에, 충성심이 아니라 원칙 위에 선다.
이제 대한민국은 법의 선진화로 나아가야 한다. 선진국의 기준은 경제 규모나 군사력이 아니라 권력이 위기를 맞았을 때 제도가 얼마나 냉정하게 작동하는가에 달려 있다. 수사기관의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군과 경찰의 정치적 중립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며, 권력 남용을 사전에 차단하는 통제 장치를 촘촘히 마련해야 한다. 공직자 윤리와 이해충돌 방지 제도 역시 실질화해야 한다. 법은 사후 처벌에 그치지 않고 사전 예방의 체계로 기능해야 한다.
5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라면 이제 더 성숙해야 한다. 위기는 늘 있었다. 그러나 위기를 교훈으로 삼은 국가는 도약했고, 정쟁으로 소비한 국가는 추락했다. 이번 사건을 제도 개혁과 시민 의식의 성숙으로 연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특정 인물의 나라가 아니다. 이 나라는 시민의 땀과 양심 위에 서 있다. 오늘의 판결은 단죄의 종결이 아니라 법 선진화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기본·원칙·상식, 진리와 정의, 자유의 가치 위에서 권력을 통제하고 제도를 보완하며 시민의 책임을 강화할 때 비로소 선진 공화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이 헌정의 거울 앞에 선 대한민국이 선택해야 할 길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