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 BIZ] 트럼프와 기습 포옹으로 '패싱 공포' 뚫은 다카이치…'안보 청구서' 유예 성공

  • 대만 발언 후 미·중 접근에 고립 위기감… '도널드' 찬사와 밀착 연출로 트럼프 리스크 정면 돌파

  • '진주만' 조롱 견디며 대중 안보 확약 실리 챙겨… 11조엔 투자와 자위대 파병 숙제는 '진짜 시험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백악관 홈페이지
지난 19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백악관 홈페이지]



지난 19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워싱턴 DC의 백악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차에서 내리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먼저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주저 없이 다가가 트럼프가 내민 손 대신 기습적인 '포옹'을 선택했다. 예고되지 않은 다카이치 총리의 돌발적인 행보에 노련한 트럼프 대통령조차 순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회담에 앞서 언론에 공개된 모두발언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핵무기 개발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해 이란을 선제적으로 강력하게 비난한 후 "'도널드'만이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한껏 치켜세웠다. 만찬장에서도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상징적 문구인 '재팬 이즈 백(일본이 되돌아왔다)'을 외치며 미일 관계의 밀월을 과시했다.

이러한 장면을 두고 아사히신문은 단순한 환대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다카이치 총리가 주도한 '적극적인 밀착 연출'이었다고 평했다. 특히 통상적인 정상 간의 악수를 넘어서는 파격적인 포옹은 불확실성이 큰 트럼프 정권으로부터 일본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공포를 가리기 위한 외교적 퍼포먼스 차원이라고 분석했다. 이란에 대한 총리의 비난 부분에 대해 일본 정부 관계자는 "전통적으로 이란과 독자적인 외교 관계를 유지해 왔기에 비난 수위를 높일 경우 '일본 선박도 이란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다카이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밀착하는 자세를 분명히 보여주며 이번 회담을 정면 돌파하는 길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모든 것은 지난해 11월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발언에서 비롯됐다. 대만 유사시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한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될 수 있다는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중국의 즉각적인 경제 보복과 전방위 압박을 불렀다. 문제는 당시 미중 간에는 무역 전쟁 휴전 분위기가 무르익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고, 올해 3월 말 베이징 방문까지 약속한 상태였다. 동맹에 대한 가치보다 경제적 이익을 중시한다는 평가가 있는 트럼프 대통령을 감안하면, 일본으로서는 자칫 외교적 고립을 의미하는 '재팬 패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이에 다카이치 총리는 올 초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방중 직전 워싱턴에서의 만남을 약속받았다. 미·중 관계의 변화와 상관없이 미국의 일본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대내외에 공표함으로써 일본의 입지를 확보하려는 사활을 건 행보였다. 그러나 회담을 목전에 두고 중동 사태라는 초대형 변수가 불거졌다. 초기 구상과 달리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등에 호르무즈 해협에 자위대 함정 파견을 요청했고, 설상가상으로 미중 정상회담은 연기됐다. 외교적 안전판을 챙기려던 다카이치 총리는 오히려 파병 요구라는 무거운 청구서를 쥔 채 가장 먼저 트럼프 대통령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일본의 실존적 고민이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위대 파견이 어렵다는 점을 내비쳤다가는 "트럼프 특유의 즉흥적이고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미일동맹 균열을 가시화하고 이것이 전 세계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시나리오는 일본 정부가 직면한 가장 큰 외교적 리스크"이며, "만약 이견이 노출되면 이는 단순한 정책 차이를 넘어 인도·태평양 지역의 억지력에 심각한 공백을 자초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경고했다. 아사히신문도 미일 간 불협화음은 일본 외교의 입지 축소이며 치명적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회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진주만' 발언이 나오는 등 아찔한 순간도 있었지만, 회담을 마친 후 일본 정부 내에서는 대체로 "최악은 면했다"는 안도의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무리한 청구서 대금 지불은 뒤로 미루면서 미일 동맹의 전략적 가치를 과시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은 양국 정상이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인도·태평양 지역뿐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의 안보에 필수적"이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하고, 중국의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에 맞서 미일 동맹의 억지력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 역시 "아시아의 안보 공백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대외적 시그널을 보냈다"고 분석했다. 중국을 앞에 두고 미일 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하고 미국을 아시아에 붙잡아 둠으로써 어느 정도 목표는 달성했다는 평가다.

요미우리신문은 역대 일본 총리들이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을 앞두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공포'를 느껴왔다고 전했다. 최대 동맹국인 미국은 일본의 안보와 경제의 명운을 쥐고 있어 실패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번 상대는 연일 동맹국에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 전쟁 중인 트럼프 대통령이다. 다카이치 총리가 느꼈을 중압감은 상당했을 것이며, 출국 직전 "국민의 생명을 지켜내겠다"며 비장한 말을 남긴 배경이기도 하다.

결국 다카이치 총리는 11조 엔(약 104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라는 막대한 '입장료'를 지불하고서야 미일 동맹의 현행 유지를 약속받은 셈이다. 포옹으로 공포를 가린 채 최악의 파행은 면했지만, 자위대 함정 파견이라는 미완의 청구서는 여전히 총리의 손에 들려 있다. 안도와 불안이 교차하는 미일 동맹의 위태로운 균형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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