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식품 기업들이 1억 명의 인구를 보유한 베트남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점찍고 현지 생산 시설 확충과 제품 현지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연평균 6%대의 높은 경제성장률과 두터운 젊은 소비층을 기반으로 현지 지배력을 높이는 동시에 글로벌 수출 거점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식품기업들은 1990년대 후반부터 앞다퉈 베트남에 진출하며 사업 규모를 키워왔다. 기업들이 베트남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압도적인 성장 잠재력 때문이다. 2025년 베트남의 경제성장률은 약 8.02%로 잠정 집계됐으며, 1인당 GDP는 5026달러 수준을 기록해 중상위 소득 국가에 속했다. 특히 중산층 비중이 2030년 75%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단순 수출을 넘어 현지 생산 시설을 통한 시장 점유율 확대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
1994년 법인 설립으로 베트남에 첫발을 내디딘 대상은 바이오·전분당 사업을 넘어 종합식품기업으로의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6년 현지 육가공 업체 ‘득비엣푸드’를 인수하며 국내 식품업체 최초로 베트남 육가공 시장에 진출했고, 이후 김 제품을 중심으로 현지 시장 점유율 1위를 유지하며 사업 기반을 넓혀왔다. 떡볶이와 김치양념 등 K-푸드 라인업도 강화하는 추세다. 지난해 대상의 베트남 매출은 2359억 원으로, 2018년 대비 두 배 가까운 성장세를 보였다. 이러한 성장세에 힘입어 대상은 최근 하이즈엉과 흥옌 공장 증설에 300억 원을 투입해 생산 능력을 대폭 끌어올렸다.
오리온은 2005년 법인 설립 이후 20년 가까이 현지화에 집중하며 입지를 다졌다. 현지 정서인 'Tinh(띤)'을 활용한 마케팅과 전래동화에서 착안한 '봉방', 쌀과자 '안(An)' 등 맞춤형 제품을 앞세워 2024년 매출 5145억 원을 기록, 처음으로 5000억 원 고지를 넘어섰다. 오리온은 베트남을 '포스트 차이나' 전략의 핵심지로 낙점하고 총 13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 중이다. 하노이 옌퐁공장 증설과 2026년 예정된 제3공장 건립을 통해 현지 생산 능력을 9000억 원 수준까지 높일 계획이다.
라면 업계의 공세도 거세다. 1인당 라면 소비량이 81개(2024년 기준)로 세계 1위인 베트남 시장 공략을 위해 팔도는 2024년 남부 떠이닌성에 제2공장을 완공했다. 팔도는 이를 통해 제1공장을 포함해 연간 7억 개의 라면 생산 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향후 제2공장 설비를 지속적으로 확충해 생산 및 수출 거점으로 활용하고, 다른 동남아 국가 진출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복안이다.
오뚜기 역시 호치민시 빈증과 북부 박닌성에 제조 공장 두 곳을 운영하며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연평균 18% 이상의 고성장을 지속하며 지난해 매출 890억 원을 달성했다. 현지 식습관을 반영한 '미니 진라면'과 '오빠라면'을 포함해 770여 종의 품목을 생산 중이며, 최근에는 할랄 인증을 획득해 무슬림 시장으로의 수출 확대에도 나섰다.
주류 분야에서는 하이트진로가 승부수를 던졌다. 베트남은 하이트진로의 최초 소주 수출국으로, 현재 국내에서 베트남으로 수출되는 소주의 약 60%가 하이트진로 제품이다. 하이트진로는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올해 완공을 목표로 타이빈성에 해외 첫 생산공장을 건설 중이다. 축구장 11배 크기의 이 공장은 스마트팩토리 형태로 설계돼 연간 최대 500만 상자의 소주 생산이 가능할 전망이다. 현지 생산을 통해 물류 효율과 원가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베트남 증류주 판매량 1위인 진로의 지배력을 동남아 전역으로 확산시킨다는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베트남은 한국과 문화적 정서가 유사하고 식품 소비 기반이 탄탄해 진출 장벽이 낮다"며 "현지 생산 거점을 통한 원가 경쟁력 확보와 밀착형 마케팅이 글로벌 확장의 전초기지로서 베트남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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