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3회째를 맞은 '한강 잠퍼자기 대회'다. 가벼운 이벤트처럼 들리지만, 매트 위에 누운 참가자들은 7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 자리에 오른 이들이다. 다들 잠에 관해서라면 일가견이 있다는 각오를 품고 왔다.
그 진지함은 챙겨온 소품에서 먼저 드러났다. 'Offline'이라고 적힌 안대, 모기 기피제, 인체공학적 목베개, 몸집만 한 애착 인형까지. 공주 드레스를 차려입은 참가자의 머리맡에는 "왕자가 아니면 깨우지 마세요"라는 푯말이 서 있었고, 텔레토비 4형제 옆에는 예수님 복장을 한 이가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실없는 웃음이 배어 나오는, 다정하고도 기묘한 풍경이었다.
대회 시작 전에는 짧은 소란도 있었다. 아이돌 그룹 온앤오프의 멤버 이션과 승준이 참가자로 등장하자 낮고 조심스러운 탄성과 카메라 셔터 소리가 행사장의 정적을 잠시 깼다. 그러나 대회가 시작되자 팬들도, 아이돌도, 모두 같은 매트 위에 나란히 누웠다. 신분도 나이도 잠 앞에서는 평등했다.
왼쪽엔 학업과 아르바이트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20대 여대생이, 오른쪽엔 야근에 절은 30대 남성이 있었다. 등 아래 바닥은 제법 울퉁불퉁했고, 주어진 건 얇은 폼 매트 한 장이 전부였다. 그래도 묘한 안도감이 먼저 왔다. 사전 행사였던 요가 프로그램의 소란이 잦아들고, 이내 대회장에 무거운 고요가 내려앉았다. 170명이 동시에 눈을 감는 순간, 잔디밭 위로 팽팽한 정적이 흘렀다.
"실격하셨어요." 조금이라도 뒤척이거나 눈을 뜨는 순간, 냉정한 판정이 떨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짐을 싸는 탈락자들이 늘어났다.
살아남은 참가자들은 30분마다 심박수 측정기가 채워져 수치를 기록했다. 대회가 끝날 무렵, 심박수가 가장 안정적으로 낮게 유지된 사람이 우승자가 된다. 가장 원초적인 행위인 '잠'이 수치화된 퍼포먼스로 변모하는 순간이었다.
이쯤에서 드는 의문 하나. 우리는 언제부터 잠을 '잘 자는 법'을 배워야 하는 시대를 살게 됐을까. 잠은 원래 그냥 오는 것이었다. 피곤하면 눕고, 눈을 감으면 찾아오는 것. 그런데 지금은 수면 유도 앱을 켜고, 백색소음을 틀고, 멜라토닌을 먹고, 수면 일기를 써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잠자기 대회에서 심박수를 측정하는 장면은 그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풍경이다.
영화 '왕의 남자'에 감명받아 용포를 입고 참가한 대학생 박준석 씨는 소셜미디어와 숏폼 영상, 스마트폰 알림을 "현대판 수면 3대 도둑"으로 꼽았다. "쉬려고 누워도 폰을 쥐게 되고, 릴스를 넘기다 보면 두 시간이 훌쩍 사라져요. 시험 기간까지 겹쳐서 완전 방전 상태라 오히려 오늘 1등 할 자신 있습니다." 능청스러운 말투 뒤로 진짜 피로가 비쳤다.
기자 오른쪽 자리, 담요를 꼭 끌어안고 누웠던 53번 황두성 씨의 사연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여자친구와 함께 신청했지만, 본인만 덜컥 붙어버렸다는 그는, 여자친구가 챙겨준 담요를 덮고 누워 있었다. "주중 내내 회사 일로 파김치가 되는데, 오늘은 진짜 이기고 싶어요. 밖에서 여자친구가 지켜보고 있거든요." 응원하러 왔다가 경쟁자가 돼버린 여자친구가 잔디밭 바깥 어딘가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중앙대 심리학과 김재휘 교수는 이 현상을 두고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할 수면이 공공의 장소에서 하나의 퍼포먼스가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강이라는 열린 공간이 주는 해방감, 낯선 사람들과 함께 눕는다는 비일상성이 오히려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회 참가자들 중 일부는 "집 침대에서는 못 자는데 여기선 금방 잠들었다"고 했다. 집에서는 내일 할 일이 눈앞에 어른거리지만, 여기서는 그냥 누워 있어도 된다는 '허락'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윤태 교수의 시각은 조금 다르다. "커피 소비량 최고, 수면 시간 최저인 나라에서 정부가 이런 이벤트를 여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청년과 직장인이 일상에서 실제로 쉴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다. 잠자기 대회가 화제가 될수록, 역설적으로 그만큼 많은 사람이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축제처럼 포장된 이 행사가 유쾌한 동시에 어딘가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기자는 중간에 탈락했다. 모기 소리를 흘려들을 수 있었으나, 깃털이 손등에 닿는 순간 반사적으로 발가락을 움츠렸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래도 억울하지 않았다. 취재라는 명분 아래 당당히 눈을 감고 있을 수 있었던 그 시간만으로 충분했다.
생산성이 단 1초도 멈추지 않는 사회. 침대까지 스마트폰이 따라와 기어코 눈을 뜨게 만드는 일상. 이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조차 이벤트와 장비와 명분을 필요로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승자가 누구든 간에, 적어도 매트 위에 누워 있던 등번호 58번 기자에게 그 시간만큼은, '일'이라는 훌륭한 핑계로 허락된 가장 달콤한 낮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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