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권력은 결국 인간성의 시험대다

  • -이성계 선조, 이안사(李安社)의 파묘에서 읽는 권력의 본질

김두일 선임기자
김두일 선임기자

 역사는 반복된다고들 한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 반복된다. 어느 시대든, 인간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권력과 둘러싼 욕망과 자존심, 체면과 감정은 놀라울 정도로 지금과 닮아 있다.
 
고려 말 전주 토호였다고 전해지는 태조 이성계 선조, 이안사(李安社) 집안 이야기가 그렇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이 설화가 오랫동안 살아남은 이유는 단순한 왕조 탄생 신화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권력과 인간성, 질투와 두려움, 그리고 생존을 둘러싼 아주 오래된 정치의 문법이 숨어 있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이안사 집안은 전주의 유력 토호세력이었다. 어느 날 중앙에서 내려온 그 권력은 이 지방 권력과 갈등을 빚었다. 그 중심에는 한 예쁜 기생을 둘러싼 체면과 감정의 문제가 있었다. 야사이기에 사실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가 품고 있는 구조다. 그것은 단순한 사랑싸움이 아니라 누가 이 지역의 패권을 쥐느냐의 권력 충돌이었다.
 
 중앙 권력은 늘 명분을 갖는다. 왕명을 받들고 질서를 세운다는 정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지방에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신망과 토지, 경제력과 인맥을 움켜쥔 토호세력이 존재했다. 중앙에서 내려온 권력이 종이 위 권력이라면, 토호는 땅 위 권력이었다. 둘의 충돌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토호세력 대 중앙 권력'간의 대립 말이다. 
 
 권력도 시대를 달리해도 놀랍도록 비슷하다. 역사는 종종 거대한 이념보다 인간의 감정에서 움직인다. 자존심은 권력을 자극하고, 체면은 갈등을 키운다. 고려 시대에 '조상 묘에서 왕기(王氣)가 흐른다'는 소문 하나가 집안을 멸문의 위기로 몰아갈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늘의 시선으로 보면 황당한 미신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과학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풍수는 단순한 주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질서였고, 정치 현실을 설명하는 준(準)과학이었다.
 
 수도를 정할 때도, 왕릉을 만들 때도, 사람들은 하늘의 뜻과 땅의 기운을 읽으려 했다. 그런 시대에 "왕이 날 묘"라는 말은 단순한 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적 공격이었고, 때로는 생존을 위협하는 무기가 되었다. 인간의 질투와 권력의 공포가 결합하면 사적인 감정은 어느새 공적인 폭력이 된다.
 
 그래서 이안사 집안의 파묘(破墓)와 피신 이야기는 더욱 상징적이다. 설화가 사실이든 아니든, 그 안에는 한 집안이 생존을 위해 뿌리를 뽑아야 했던 절박함이 담겨 있다. 조상의 묘를 옮긴다는 것은 단순한 이사가 아니다. 삶의 근거와 기억, 집안의 역사 자체를 옮기는 일이다. 그 절박한 선택 끝에 변방으로 밀려난 집안은 훗날 새로운 왕조의 중심에 선다. 눌려난 자가 권력이 되고, 변방이 중심이 되는 역사적 아이러니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가 이런 방식으로 인간을 시험한다는 점이다. 권력은 사람을 감춘 듯하다가 어느 순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평범한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욕망과 품성, 절제와 한계가 권력의 문턱 앞에서 선명해진다.
 
 오늘의 정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의 과거가 소환된다. 오래전 사소한 말 한마디, 젊은 시절의 실수, 인간관계 속 갈등 등 사적인 판단까지 다시 도마 위에 오른다. 어떤 이는 억울하다고 하고, 어떤 이는 이미 오래전 일이라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미숙한 시절이 있고, 누구나 실수하며 살아간다.
 
 문제는 실수 자체가 아니다. 그 사람이 그 시간을 지나 어떤 인간이 되었는가 이다. 권력은 능력 시험이기 이전에 인간성 시험이다. 사람들은 공약집만 읽지 않는다. 위기 앞에서 어떻게 반응했는지, 갈등 속에서 상대를 어떻게 대했는지, 책임을 피했는지 감당했는지, 감정 앞에서 절제할 줄 아는지를 본다. 지도자의 자질은 화려한 연설보다 불편한 순간에 더 잘 드러난다.
 
 돌이켜보면 공동체가 지도자를 선택하는 기준은 시대마다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고려 시대 사람들도 묻고 있었을 것이다. "이 사람에게 권력을 맡겨도 되는가." 오늘의 유권자가 던지는 질문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안사 설화가 오늘까지 살아남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고려 말 전주의 어느 술집에서 한 기생은 놓고 벌어진 체면과 감정의 충돌 말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2026_외국인걷기대회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