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도 정부의 사관학교 통합 추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막지는 못했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는 정부의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과 육군사관학교 서울 외 지역 이전 계획에 반대하는 약 2천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이날 집회는 국민의힘 한기호·임종득 의원과 육·해·공군 사관학교 동문회, 사관생도 학부모, 예비역 군인, 시민단체 등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참석자 수는 주최 측 예상을 넘어섰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집회 이후 대표단은 국회의장실에 결의문을 전달했으며, 이어 국방부를 찾아 안규백 국방부 장관에게도 결의문을 제출했다.
참석자들은 정부가 추진 중인 사관학교 통합과 육군사관학교 이전 계획을 “졸속적이고 충분한 검토가 없는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즉각 철회를 촉구했다.
육·해·공사 총동창회가 문제와 관련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정부는 육·해·공군 사관생도를 통합 선발한 뒤, 1~2학년 동안 공통 교육을 실시하고 3~4학년 과정에서 각 군별 전문 교육을 받도록 하는 이른바 ‘2+2’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 국방부는 이르면 이달 중 최종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사관학교 개편을 단순한 학교 통합이 아니라 미래전 인재 양성 체계를 다시 짜는 문제로 보고 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최근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에서 AI와 드론, 양자기술 등 첨단 기술이 전장의 성격을 바꾸고 있다며, “드론 전장을 설계하고 AI 기반 작전체계를 구상할 수 있는 장교”를 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과 같은 교육 방식으로는 2040년 이후 군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안 장관은 사관학교 입학 성적 하락도 개편 필요성을 보여주는 신호로 봤다. 현재의 사관학교가 우수한 인재들에게 자신의 비전과 잠재력을 펼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각 군의 전문성은 유지하되, 생도들이 사관학교 단계부터 함께 배우고 훈련하며 합동성을 체질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사관학교의 교육 목표와 커리큘럼, 교수진, 시설과 인프라 전반을 손질하고, 민간 대학과의 연계 등을 통해 교육 수준을 높이는 방안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각 군 사관학교 총동창회 관계자들도 궐기대회에서 이 같은 우려를 강조했다. 육군 장교는 지상에서 병력을 지휘하고 전투를 이끌 수 있는 야전 지휘 역량을, 해군 장교는 바다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 함정 운용과 해상작전을 이해하는 감각을, 공군 장교는 항공우주작전의 속도와 기술적 특성을 몸에 익히는 교육을 입학 초기부터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사관학교 교육이 단순히 교실에서 지식을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각 군의 문화와 임무 의식을 체득하는 시간이라고 본다. 해군 장교가 바다를 보고 느끼며 성장해야 하고, 공군 장교가 항공우주작전의 사고방식을 일찍부터 익혀야 하듯, 각 군의 정체성은 짧은 기간의 후반기 교육만으로 형성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해외 사례를 둘러싼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캐나다와 호주처럼 통합형 또는 공통 교육 중심의 장교 양성 체계를 운용하는 국가들이 있지만, 반대 측은 병력 규모와 안보 환경이 한국과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다고 본다. 한국은 북한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분단국가인 만큼, 임관 직후 곧바로 각 군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성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통합 사관학교가 정치적 목적에 활용된 대표적 실패 사례로 베네수엘라를 거론하기도 한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 추진된 사관학교 통합이 군사적 효율성보다는 군에 대한 정치적 통제 강화와 연결됐다는 주장이다. 일부 예비역들은 중앙집권적 군 구조를 가진 북한조차 공군 장교 양성을 위한 별도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육·해·공군 사관학교 동문회 대표도 이번 구상을 “성급한 정책”이라고 규정하며, 합동성 강화나 우수 인재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고 재정적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가 안보는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정치적 논란의 희생양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집회에서 채택된 결의문에는 장교 양성 체계 개편이 정치적 고려가 아니라 충분한 연구와 국민적 공감대, 군 전문가와 예비역, 교육계, 사관생도 학부모 등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의를 바탕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결의문은 “국가 안보는 결코 정책 실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장교 양성 체계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집회 추진위원장을 맡은 이양구 위원장은 정부 구상이 군 합동작전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생도들을 함께 교육한다고 해서 합동성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라며 “합동성은 각 군이 먼저 자신의 전문성을 갖춘 뒤에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군 교육 체계에서도 합동성 교육은 각 군별 전문성을 쌓은 뒤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각 군은 고유의 전통과 전문성을 지켜가며 장교를 양성하고, 이후 합동군사대학이나 합동참모대학에서 합동성을 배운다”며 “육군대학, 해군대학, 공군대학이 각각 있고, 일정 계급에 오른 뒤 합동참모대학에서 합동성을 강화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실제 합동작전 근무는 대부분 합참이나 연합사 등 중령급 이상 장교들이 담당하는 영역”이라며 “그 아래 제대에서는 각 군별 작전이 중심인 만큼 사관학교 단계에서부터 합동성 교육을 앞세우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육군사관학교를 서울 밖으로 이전할 경우, 이미 우수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관학교의 매력도가 더 떨어질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대전의 군 교육·훈련 시설인 자운대가 공통 교육과정 운영 후보지 중 하나로 거론되고 있다.
이 위원장은 “정부가 지원율 하락을 걱정한다면 직업군인, 특히 초급 장교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며 “그것이 우수 인재를 끌어들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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