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하 칼럼] 고착화된 원화 약세…'적정 환율'을 회복 하려면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한국 경제가 다소 낯선 상황을 맞고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은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고 무역수지도 큰 폭의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과거 같으면 원화 가치가 상승하고 환율은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 안팎에서 움직이며 금융시장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이 현상은 과거의 '무역 중심 환율'에서 '자본 이동 중심 환율'로 외환시장의 구조가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예전에는 수출이 늘어나면 국내에 달러 공급이 증가하여 자연스럽게 원화가 강세를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외환시장은 상품거래보다 금융거래 규모가 훨씬 크다. 우리나라의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더라도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투자가 크게 늘어나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을 매도하면 달러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게 된다. 결국 무역수지보다 국제 자본의 흐름이 환율을 좌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최근 원화 약세에는 여러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첫째는 달러 강세이다. 미국 경제가 예상보다 견조한 모습을 보이면서 달러는 세계 대부분의 통화 대비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둘째는 해외투자의 확대이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가와 개인들의 해외주식 투자 증가로 달러 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셋째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 차익실현이다. 최근 국내 증시가 크게 상승하면서 외국인들은 상당한 규모의 차익을 실현하였고, 그 과정에서 원화를 달러로 바꾸어 해외로 송금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 이동이 무역흑자의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하고 있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엔·달러 환율 역시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엔화 약세가 지속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제조업 중심의 수출국이며 미국 달러 강세의 영향을 동시에 받고 있다. 만약 원화만 약세였다면 수출경쟁력이 크게 약화되었겠지만 엔화도 함께 약세를 보이고 있어 상대적인 가격경쟁력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반면 대만달러는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반도체 산업의 압도적인 경쟁력과 지속적인 외국인 자금 유입, 대규모 외환보유액, 그리고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외환시장 관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특히 대만은 해외투자 자금의 유출 규모가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작아 자본수지 측면에서 유리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환율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단기적으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달러 강세가 지속되는 한 원화의 급격한 강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다만 1,500원대 중반 환율은 우리 경제의 기초여건에 비해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실제로 정부도 현재 환율이 경제 펀더멘털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적정한 원·달러 환율은 어느 수준일까. 물론 적정환율은 하나의 숫자로 결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생산성, 물가, 경상수지, 국제수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대체로 1,300원 안팎에서 1,400원 미만 정도가 기업 경쟁력과 물가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비교적 바람직한 수준이라고 판단된다. 1,500원을 지속적으로 넘는 환율은 수입물가 상승과 에너지 가격 부담을 통해 결국 국내 물가를 자극하고 국민의 실질소득을 감소시키게 된다.
 
이러한 적정환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의 금리 인하 또는 달러 강세 완화가 필요하다. 동시에 우리 경제의 성장률 회복과 안정적인 재정운영, 지속적인 경상수지 흑자 유지가 이어져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자산에 대해 신뢰를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환율은 경제 펀더멘털뿐 아니라 시장의 신뢰가 함께 결정하는 가격이기 때문이다. 다만, AI 로봇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 경제가 강한 성장세를 견조하고 있고, 미국 연방준비위가 금리를 인하를 가능성은 단기적으로 크지 않다.
 
외환 당국의 역할도 중요하다. 최근 우리나라는 원·달러 현물시장을 사실상 24시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매우 의미 있는 변화이다. 해외 투자자들이 한국 거래시간이 아니더라도 국내 시장에서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되어 역외시장의 가격 왜곡이 줄어들고, 시장의 유동성과 투명성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장기적으로는 원화의 국제화와 선진국 금융시장 편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거래시간 확대만으로 환율 수준 자체를 낮추기는 어렵지만 시장의 효율성과 가격발견 기능을 높이는 데는 분명한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미국이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론적으로는 원화 금리가 높아지면서 해외 자금 유입이 증가하고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금리 차이만으로 환율이 결정되지는 않는다. 미국 경제의 성장세와 달러 강세가 계속된다면 한국의 금리 인상 효과는 상당 부분 상쇄될 수도 있다. 따라서 금리정책 하나만으로 환율을 안정시키기는 어렵다.
 
결국 앞으로의 환율정책은 환율의 절대 수준보다 과도한 변동성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환율은 시장이 결정하되 정부는 급격한 쏠림 현상만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시에 자본시장 경쟁력을 높여 외국인 투자를 확대하고, 국내 투자자금이 국내에서도 충분한 투자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금융시장과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고환율 시대는 이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경제환경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환율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가 높은 환율에도 흔들리지 않는 체질을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가장 강력한 환율 안정 정책이며 지속 가능한 성장의 출발점이다.

김용하 필자 주요 이력 

△성균관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전 한국경제연구학회 회장 △전 한국재정정책학회 회장 △현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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