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평론가는 또 해명했다.
그는 자신의 평가가 대중의 감상과 엇갈릴 때마다 감독과의 친분, 정치적 성향, 영화계의 이해관계가 평론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다. 평론의 논리보다 평론가의 숨은 동기를 먼저 추궁하는 일이 반복됐다.
이번에는 영화 '호프'였다. 이동진은 '호프'에 별점 4점을 주고 "기괴한 난장판 속에서 대담하게 질주하는, 영화 전체가 거대한 크레센도"라고 평했다. 이후 '호프'에 대한 관객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면서, 이동진이 왜 이 작품에 높은 점수를 줬는지 의심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나홍진 감독과 친분이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부터 감독의 명성에 눌렸다는 추측, 침체된 한국 영화계를 의식해 점수를 후하게 줬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결국 이동진은 나홍진 감독과 사적으로 교류한 적이 없고, 전화번호조차 모른다고 밝혔다. 한국 영화계의 사정이나 경제적 이해관계가 평가에 영향을 미친 것도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자신에게 '호프'는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강하게 다가온 영화였다는 설명이다.
평론가의 평가에 반론을 제기할 순 있다. 별점의 근거가 설득력 있는지, 장면에 대한 해석이 타당한지 물을 수 있다. 평론 역시 비평의 대상이다.
이상한 건 사람들이 이동진의 분석을 반박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의 배경까지 의심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 영화가 별로였다'는 감상이 '그 영화를 좋게 평가한 사람은 정직하지 않다'는 판단으로 쉽게 넘어간다.
'호프'를 둘러싼 논쟁은 영화의 완성도만을 따지는 게 아니다. 그 밑에는 누가 영화를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인지 가려내려는 경쟁이 흐른다. 취향이 의견에 머물지 않고 안목과 지능, 교양의 등급표로 바뀌면서 싸움이 벌어진다.
▲ 취향은 자아다
조나 버거와 칩 히스는 사람들이 음악이나 헤어스타일처럼 정체성과 밀접한 영역에서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려는 경향을 확인했다. 특히 실용적인 물건보다 문화적 취향에서 차별화 욕구가 강하게 나타났다. 취향이 선호를 넘어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메시지로 쓰일 수 있다는 뜻이다.
영화는 정체성을 담기 쉬운 대상이다. 내가 어떤 서사를 가치 있게 여기고, 얼마나 복잡한 표현을 즐기며, 어떤 감독과 장르에 관심을 두는지 보여준다.
'호프'처럼 해석이 여러 방향으로 갈리고 감독의 전작까지 소환되는 작품에서는 이 기능이 더욱 강해진다. 누군가에게 '호프'는 대담하고 독창적인 장르영화고, 누군가에게는 과잉과 허술함을 거대한 규모로 가린 영화다.
갈등은 감상을 자신의 경험이 아니라 작품의 객관적 실체로 받아들이면서 시작된다.
리 로스와 앤드루 워드는 자신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고 믿는 경향을 '소박한 실재론'으로 설명했다. 나와 다른 판단을 내린 사람을 보면 그가 다른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기보다, 정보를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편향됐다고 추정하기 쉽다. 이러한 경향은 의견 차이를 불신과 상대 진영에 대한 악마화로 키울 수 있다.
'호프'가 재미없었다는 사람에게 영화의 산만함은 취향이 아니라 눈앞에 놓인 결함처럼 느껴진다. 자신에겐 너무나 명백한 단점을 유명 평론가가 지적하지 않으면 이유가 필요하다. '나와 중요하게 보는 기준이 다르구나'보다 '감독 눈치를 봤나'라는 설명이 더 쉽게 떠오른다.
반대편도 다르지 않다.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은 작품의 의미와 장점을 알아본 자신을 통찰력 있는 관객으로 여길 수 있다. 혹평한 사람에게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상징을 읽지 못했다"고 말하는 순간 자신의 감상 역시 객관적 진실이 된다.
한쪽은 상대가 영화에 속았다고 믿고, 다른 한쪽은 상대가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믿는다. 같은 영화를 보면서 서로 다른 요소에 무게를 둔 것이다. 하지만 감상이 자아와 결합하면 차이는 곧 위협이 된다.
▲ 재미없게 본 사람은 왜 호평을 공격할까
'호프'를 호평하는 관객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두고, 타인의 취향을 통제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영화를 재미없게 본 사람이 호평에 더 날카롭게 반응할 수 있는 상황은 생각해볼 수 있다.
이동진의 평론을 예로 들면 그의 해설은 복잡한 상징과 신화, 장르의 역사, 감독의 세계관을 동반한다. 이런 설명은 작품을 풍부하게 이해하도록 돕기도 하지만, 혹평한 관객에게는 다른 메시지로 다가올 수 있다.
'당신이 재미없었던 건 이 의미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도 해석의 언어가 감상 능력의 서열처럼 유통된다면, 영화를 싫어한 사람은 자신의 취향뿐 아니라 이해력까지 평가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면 공격은 선제적인 지위 방어가 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너희가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붙이고 있다.'
'내가 영화의 가치를 놓친 게 아니라, 너희가 유명 감독과 평론가의 권위에 속고 있다.'
'내가 교양이 부족한 게 아니라, 너희가 문화적 허영에 빠져 있다.'
상대를 허영에 빠진 사람으로 규정하면 자신이 아래에 놓일 가능성을 피할 수 있다. 호평자의 감상을 무효화함으로써 자신의 안목을 지키는 것이다.
호평자 역시 같은 방식으로 반격할 수 있다.
'싫어하는 건 자유지만, 이해도 못하고 욕한다.'
이 말은 작품에 대한 반론처럼 보이지만 상대의 능력을 심판한다. 한쪽은 허세를 공격하고, 다른 한쪽은 무지를 공격한다. 영화에 대한 말은 사라지고 사람에 대한 평가만 남는다.
둘 다 상대가 말한 감상을 믿지 않는다. 상대의 마음속에 더 비열하거나 부족한 동기가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
▲ 이동진의 무게
이동진의 별점은 개인의 감상이면서도 개인의 감상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언론은 그의 별점을 기사로 만들고, 팬들은 한 줄 평을 공유하고, 영화 커뮤니티는 그의 평가를 작품의 위치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는다. 이동진이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의 평가는 사회적으로 큰 무게를 가진다.
권위가 생기면 편리함과 불편함이 함께 생긴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서 전문가의 판단을 참고하는 건 합리적인 선택이다. 우리는 모든 정보를 직접 검토할 시간과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위신 편향은 이를 잘 설명한다. 사람들이 특정 정보, 제품, 의견 등을 평가할 때 객관적인 내용보다 정보를 제공한 사람이나 출처의 사회적 지위, 평판, 인지도에 더 큰 영향을 받아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인지적 편향이다.
이는 시행착오의 비용을 줄이는 효율적 전략이다. 이동진의 평을 참고하는 것도 내가 놓친 장면을 발견하고, 흐릿했던 감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동진의 해석을 읽고 내 생각이 넓어졌다'와 '이동진이 4점을 줬으니 좋은 영화다'는 다르다. 해석을 빌리는 것을 넘어 자신의 감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까지 빌린다.
모호한 작품은 판단하기 어렵다. 재미는 있었지만 결말이 납득되지 않을 수 있고, 장점은 분명하지만 좋은 영화라고 말해도 되는지 망설여질 수 있다. 이때 유명 평론가의 높은 별점은 불확실성을 빠르게 없애준다.
'역시 좋은 영화였어.'
별점은 판단을 돕는 참고 자료가 아니라 판단을 보증하는 인증서가 된다. 이런 추종이 늘어날수록 반대쪽의 반발도 강해진다. 영화를 재미없게 본 사람에게 이동진의 별점은 한 사람의 의견이 아니라, 감상을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문화적 압력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때 심리적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선택과 판단의 자유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그 자유를 되찾기 위해 저항하려는 동기다.
물론 이동진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평가를 따르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별점 4점은 명령이 아니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평론가의 평가가 기사와 커뮤니티, 팬들의 언어를 거치며 사실상의 정답처럼 자리할 경우 일부 관객은 감상의 자유를 침해받는다고 느낄 수 있다. 영화가 재미없었다는 자신의 경험보다 전문가의 분석이 우위에 놓인다고 느끼는 것이다.
가장 쉬운 자유 회복 방법은 평론가의 권위를 끌어내리는 것이다.
'저 사람도 객관적이지 않다.'
'친분이나 이해관계 때문에 저런 평가를 했다.'
'감독의 이름값에 눌렸다.'
평론가의 동기를 의심하면 그의 판단을 검토할 필요가 사라진다. 자신의 감상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권위의 압력만 제거할 수 있다.
출처 폄하의 장점이다. 반대 의견의 논리를 하나하나 반박하지 않아도 된다. 말한 사람의 신뢰성을 무너뜨리면 메시지 전체를 기각할 수 있다.
이동진이 나홍진 감독과 커피를 마신 적이 있는지, 전화번호를 아는지까지 해명해야 했던 이유다. 논쟁의 중심이 영화의 장단점에서 평가자의 순수성으로 옮겨갔다.
▲ 이동진을 공격하는 사람과 추앙하는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한쪽은 이동진의 권위를 부정하고, 다른 한쪽은 이동진의 권위에 기댄다. 행동만 보면 정반대지만, 둘은 같은 불편함에서 출발할 수 있다. 내 감상이 틀릴 수도 있다는 불확실성을 견디기 어렵다는 점이다.
공격하는 사람은 평론가의 신뢰성을 떨어뜨려 자신의 판단을 지킨다. 추앙하는 사람은 평론가의 권위를 빌려 자신의 판단을 확정한다.
한쪽은 '이동진이 틀렸으니 내가 맞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쪽은 '이동진과 같으니 내가 맞다'고 생각한다. 어느 쪽이든 영화와 자신의 관계보다 이동진과 자신의 거리가 판단의 근거가 된다.
▲ 시네필의 허영과 시네필을 조롱하는 허영
영화 평가를 둘러싼 논쟁에는 문화적 구별 짓기도 숨어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이 개인의 순수한 선호만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적 지위와 집단의 경계를 구분하는 자원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제적 자본뿐만 아니라 내면화된 문화적 취향(아비투스)와 교육이 문화 자본으로 작용해 기득권을 세습하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어려운 영화를 즐기고 복잡한 상징을 해석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허영이 아니다. 영화에서 발견한 의미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일도 자연스럽다. 하지만 해석이 '나는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봤다'는 자기 증명으로 바뀌면 문제가 달라진다.
상징과 신화, 영화사의 맥락을 설명하는 언어가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관객을 나누는 자격증이 된다. '호프'를 좋아했다는 말보다 '호프'를 이해했다는 말이 앞에 놓인다. 영화에 대한 애정은 점차 자신이 평범한 관객과 다르다는 증거로 쓰인다.
거들먹거리는 시네필의 모습을 과장한 조롱 밈이 반복해서 만들어지는 이유도 이 이미지 때문이다. 영화를 즐기는 사람보다 어려운 용어와 감독의 이름을 이용해 우월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시네필을 조롱하는 쪽에 허영이 없는 건 아니다.
'재미없는 건 그냥 재미없는 것이다.'
'나는 어려운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
'유명 감독이 찍었다고 무조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이 말에는 문화 엘리트의 권위에 속지 않는 현실적이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자기상이 담길 수 있다. 복잡한 해석을 허세로 규정하면서 자신은 본질을 꿰뚫어 보는 사람의 자리를 차지한다.
한쪽은 '나는 이 영화를 이해했다'며 우월감을 얻고, 다른 한쪽은 '나는 이 영화의 허세를 간파했다'며 우월감을 얻는다. 하나는 문화적 속물주의고 다른 하나는 반속물주의처럼 보이지만, 상대를 발판 삼아 자신의 안목을 증명한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이속에서 '호프' 논쟁은 '호프를 좋아하는 사람'과 '호프에 속지 않은 사람'이라는 집단정체성으로 번졌다. 영화를 평가하는 일이 어느 순간 자신이 속할 집단을 고르는 일이 된 것이다.
▲ 영화는 해석해도 타인의 마음까지 해석할 수는 없다
"나는 재미있었다"는 말은 반박하기 어렵다. 그 관객이 실제로 느낀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는 재미없었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논쟁거리로 삼을 수 있는 부분은 어떤 장면이 왜 효과적이었는지, 서사의 빈틈이 의도된 모호함인지 설명 부족인지, 상징이 작품 안에서 충분히 뒷받침되는지 등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작품에 대한 논쟁을 건너뛰고 상대의 마음부터 해석한다.
'호프'를 둘러싼 논쟁에서 사람들이 지키려 한 건 영화에 대한 의견만이 아닐 수 있다. 자신이 영화를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믿음, 유명한 권위에 속지 않는 사람이라는 믿음, 남들이 놓친 의미를 알아보는 사람이라는 믿음이다.
평론도 정답을 배급하는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이 영화를 본 방식과 근거를 전해 다른 관객의 감상을 넓히는 일이다. 동의하지 않아도 되고, 반박해도 된다. 다만 별점에 반대하기 위해 평론가의 인격과 동기까지 발명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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