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호프'의 주요 내용과 결말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나홍진 감독의 신작 '호프'는 외부의 침입에 맞서 공동체를 지키는 이야기로 출발한다.
비무장지대 인근 호포항에서 정체불명의 존재가 출현하고, 출장소장 범석(황정민)과 마을 사람들은 총을 든다. 관객도 인간의 시선을 따라 그들을 두려워하고, 인간의 생존을 응원한다.
영화는 후반부에 이 구도를 뒤집으려 한다. 인간은 정말 침입에 맞선 무고한 피해자였을까. 괴물로 불린 존재는 왜 이곳에 왔고, 인간은 그들의 사정을 알기 전에 무엇을 했는가. 영화는 외계인의 목적과 상실을 드러내며, 인간과 괴물의 위치를 다시 묻는다.
'호프'가 궁극적으로 겨누는 건 인간과 외계인의 선악 대결이 아니다. 자신의 언어로 타자를 규정하고, 자신의 희망을 지키기 위해 상대의 희망을 파괴하는 존재들의 비극으로 나아간다.
▲ 인간의 편에 서게 만드는 서부극
'호프'의 기본적인 장르 구조는 고전 서부극과 닮았다.
호포항은 문명의 중심에서 떨어진 변경이다. 출장소장 범석은 보안관의 자리에 있고, 총을 든 마을 사람들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자경단이 된다.
고전 서부극에서 마을은 질서와 문명의 공간이다. 반면 황야에서 나타난 존재는 문명을 위협하는 야만과 혼돈으로 묘사된다. 총을 든 영웅은 외부의 적을 제거하고 마을의 평화를 되찾는다.
'호프'도 처음에는 이 문법을 따른다. 외계 생명체는 거대한 몸과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 인간을 압도하는 힘으로 등장한다. 관객이 인간에게 감정을 이입하는 건 자연스럽다. 총을 쏘는 행위는 공격보다 방어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외계 생명체의 사정이 드러나면서 정착민과 침입자의 위치가 뒤집힌다.
인간은 자신의 마을을 지키려는 피해자이면서, 외계의 아이를 짐승으로 오인해 죽이고 그 몸을 점유한 가해자다. 인간에게 외계인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침입자지만, 외계인에게 인간은 아이를 살해하고 시신을 감춘 괴물이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의 모습에서는 이들에게도 가족과 관계, 언어와 목적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호프'는 관객을 인간의 편에 세운 뒤, 그 자리가 정말 정의의 자리였는지 되묻는다.
▲ 호랑이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초의 오역
범석은 정체불명의 흔적을 보고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믿는다. 인간이 미지의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죽은 소와 거대한 흔적, 낯선 울음소리를 본 사람들에게 가장 그럴 듯한 설명은 호랑이다.
인간은 외계인의 진짜 이름을 모르지만, 그들을 죽여야 할 이유는 너무 빨리 알아낸다. 자신을 문명이라고 믿지만, 자신보다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는 공포와 공격성에 이끌리는 동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상당 시간 외계인의 언어를 번역하지 않는다. 관객은 인간과 함께 그들의 소리를 듣지만 의미를 알지 못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언어가 아니라 울음이나 포효처럼 들린다. 외계인의 행동 역시 이유를 가진 선택이 아니라 괴물의 난폭한 본능처럼 보인다.
그들에게 언어가 없었던 건 아니다. 관객에게 자막이 제공되지 않았을 뿐이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의미가 없다는 판단으로 바꾼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면 대화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여기고, 대화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제거해야 할 위협으로 분류한다.
외계인의 언어가 번역되는 순간 앞선 장면들의 의미도 달라진다. 관객이 괴물의 소음으로 들었던 것에는 상실과 관계, 믿음과 희망이 담겨 있었다.
'호프'는 관객을 인간의 무지 안에 가둔 뒤,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쉽게 상대를 의미 없는 존재로 취급했는지 돌아보게 한다.
▲ 외계인의 눈물이 괴물에게 얼굴을 돌려준다
범석의 인식이 흔들리는 계기는 외계인의 눈물이다.
괴물이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우는 모습을 본다. 그 순간 외계인은 인간을 공격하는 생명체에서 무언가를 잃고 슬퍼하는 존재로 바뀐다.
눈물은 인간과 외계인의 생김새, 언어와 문명의 차이를 넘어선다.
우는 존재에게는 잃어버린 것이 있다. 잃어버린 것이 있다면 그에게도 관계와 기억, 지키고 싶은 미래가 있다. 괴물에게도 슬픔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인간이 붙인 '괴물'이라는 이름은 불완전해진다.
범석은 외계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다만 자신이 상대를 잘못 판단했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감지한다. 이 장면에서 '호프'의 질문도 달라진다. 그 존재를 너무 빨리 괴물이라고 판단한 건 아닌지.
▲ 목수는 하늘에서 온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영화 후반부의 죽음과 부활의 바람은 기독교적 이미지를 불러오는데, 그 중심에는 목수 양배(음문석)가 있다.
기독교 문화에서 목수는 요셉과 예수를 연상시킨다. 요셉은 하늘의 뜻으로 태어난 아이를 보호했고, 예수는 목수의 아들로 불렸다.
'호프'는 이 익숙한 형상을 뒤집는다. 영화 속 목수는 하늘에서 온 아이를 보호하지 않는다. 낯선 생명체를 짐승으로 오인해 죽이고, 그 몸을 자신의 냉동 창고에 감춘다.
양배의 창고는 하늘에서 온 아이가 인간 세계에 내려앉는 '뒤틀린 마구간'이자, 죽은 존재가 부활을 기다리는 무덤이 된다.
예수의 탄생 서사에서 목수 요셉은 낯설게 찾아온 아이를 받아들이지만, '호프'의 목수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아이를 짐승으로 규정하고 제거한다. 보호자의 자리가 가해자의 자리로 뒤집힌 것이다.
영화는 이런 성서적 이미지를 암시에만 맡겨두지 않는다. 외계인 조르(알리시아 비칸데르)는 히브리서 11장 1절을 직접 읊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아직 눈앞에 나타나지 않은 부활을 현실처럼 믿는 외계인들의 희망과 맞닿는다. 인간이 보이는 현재를 지키려 한다면, 외계인은 보이지 않는 귀환을 포기하지 않는다.
▲ 희망이 폭력이 되는 순간
영화의 가장 깊은 대립은 서로 다른 미래를 바라는 존재들의 충돌이다.
인간은 눈앞에 있는 마을과 가족, 생명을 지키려 한다. 사건이 끝나고 외계인이 사라져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인간의 희망은 보이는 현재를 보존하는 데 있다.
외계인은 이미 죽은 존재에게 시선을 둔다. 사라진 존재가 다시 살아날 가능성, 무너진 관계와 질서가 회복될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이 마을을 지키려면 외계인을 제거해야 한다. 외계인이 죽은 아이를 되찾고 자신들의 희망을 지키려면 인간을 공격해야 한다. 한쪽의 희망이 실현되는 순간 다른 쪽의 미래는 무너진다.
여기서 '호프'는 긍정적인 구호가 아니라 역설이 된다.
희망은 존재를 움직이고 살아가게 만든다. 하지만 자신의 희망만을 절대적인 선으로 믿는 순간, 상대는 그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보인다. 타인의 희망은 이해해야 할 미래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위협이 된다.
▲ '호프'는 신학적 서부극이다
'호프'는 고전 서부극의 형식으로 관객을 인간 공동체의 편에 세운다. 이후 침입자와 피해자의 위치를 뒤집으며,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문명이라고 믿는 근거를 흔든다.
호랑이는 미지의 존재에게 인간이 붙인 최초의 오역이다. 번역되지 않은 외계인의 언어는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타자를 얼마나 쉽게 의미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지 보여준다. 외계인의 눈물은 괴물로 보였던 존재에게 관계와 상실의 얼굴을 돌려준다.
여기에 하늘에서 온 아이를 죽인 목수와 무덤이 된 창고, 죽은 존재의 부활을 포기하지 못하는 외계인, 히브리서의 믿음과 희망이 겹친다.
그런 의미에서 '호프'는 서부극의 장르적 함정 위에 죽음과 부활의 질문을 올린 신학적 서부극이다.
영화가 끝내 묻는 것도 누가 더 옳은지가 아니다. 자신의 언어로 상대를 규정하고, 자신의 희망만을 지키려 할 때 우리는 타자의 얼굴에서 무엇을 지워버리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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